일곱 번째 ‘수(受)’의 지분에서 중요한 실천은 ‘느낌’과 ‘감정’을 관찰하는 사념처(四念處) 수행의 두 번째 ‘수념처(受念處)’ 수행이다. 느낌에 끌려가고, 집착하게 되면 그 느낌은 곧바로 애욕과 집착으로 나아가지만, 느낌이 일어날 때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판단 없이 관찰하게 된다면 그 느낌은 더 이상 애욕과 집착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일어나는 모든 느낌을 이처럼 그저 허용해주고, 알아차려 주되, ‘내 느낌’이라고 생각해 붙잡지 않으면, 느낌이 일어나면서도 느낌에 속지 않게 된다. 느낌이라는 수의 지분이 소멸되는 것이다.
일곱 번째 ‘수(受)’의 지분에서 중요한 실천은 ‘느낌’과 ‘감정’을 관찰하는 사념처(四念處) 수행의 두 번째 ‘수념처(受念處)’ 수행이다. 느낌에 끌려가고, 집착하게 되면 그 느낌은 곧바로 애욕과 집착으로 나아가지만, 느낌이 일어날 때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판단 없이 관찰하게 된다면 그 느낌은 더 이상 애욕과 집착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일어나는 모든 느낌을 이처럼 그저 허용해주고, 알아차려 주되, ‘내 느낌’이라고 생각해 붙잡지 않으면, 느낌이 일어나면서도 느낌에 속지 않게 된다. 느낌이라는 수의 지분이 소멸되는 것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