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마음은 내가 아니야 - 식온무아
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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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럭키2024-10-14 23:19
여름에 더워서 에어컨을 켜면 시원하고
겨울에 추워서 보일러를 켜면 따뜻하고
반면에 여름에 보일러를 켜면 땀이 줄줄 나고
반면에 겨울에 에어컨을 켜면 오한이 슬슬 오고
비추어지는 실상은 주체적인 아트만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운행하는 것이 아니고
법계의 이치에 따라 그저 비추어지는 것 아닌가요?
인연생 인연멸.
만약 순간순간 끊임없이 변하지도 않고 주체적인 고정된 실체의 아트만이 있다고 한다면..
에어컨을 켜든 안 켜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 아트만의 뜻에 따라 시원할 수 있어야 하고
보일러를 켜든 안 켜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 아트만의 뜻에 따라 따뜻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 존재는 더우면 있는 그대로 더운 것을 알아차리며
반면에 추우면 있는 그대로 추운 것을 알아차립니다.
더울때 시원해라 하면 안 시원해지고
추울때 따뜻해라 하면 안 따뜻해집니다.
그런데 시원하든 따뜻하든 말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것은 무엇인지요..
그저 있는 그대로 비추고 있는 그것은 무엇인지요..
그저 모를 뿐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맡아지지도 않고 맛도 없고 느낌도 없고 생각도 없고..
그저 선지식께 법문을 청할 뿐입니다.
바른 가르침 수희찬탄 합니다.
겨울에 추워서 보일러를 켜면 따뜻하고
반면에 여름에 보일러를 켜면 땀이 줄줄 나고
반면에 겨울에 에어컨을 켜면 오한이 슬슬 오고
비추어지는 실상은 주체적인 아트만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운행하는 것이 아니고
법계의 이치에 따라 그저 비추어지는 것 아닌가요?
인연생 인연멸.
만약 순간순간 끊임없이 변하지도 않고 주체적인 고정된 실체의 아트만이 있다고 한다면..
에어컨을 켜든 안 켜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 아트만의 뜻에 따라 시원할 수 있어야 하고
보일러를 켜든 안 켜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 아트만의 뜻에 따라 따뜻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 존재는 더우면 있는 그대로 더운 것을 알아차리며
반면에 추우면 있는 그대로 추운 것을 알아차립니다.
더울때 시원해라 하면 안 시원해지고
추울때 따뜻해라 하면 안 따뜻해집니다.
그런데 시원하든 따뜻하든 말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것은 무엇인지요..
그저 있는 그대로 비추고 있는 그것은 무엇인지요..
그저 모를 뿐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맡아지지도 않고 맛도 없고 느낌도 없고 생각도 없고..
그저 선지식께 법문을 청할 뿐입니다.
바른 가르침 수희찬탄 합니다.
이와 같이 ‘분별해서 아는 작용’인 식온은 고정되고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연 따라 조건에 의해 생겨나고 사라지는 연기적인 것이다. 식온무아(識蘊無我)인 것이다. 식온은 눈귀코혀몸뜻이 색성향미촉법을 만난다는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이처럼 식은 연기적인 조건발생일 뿐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우리 안에 ‘의식하는 존재’, ‘의식하는 나’가 있다고 여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식은 색수상행에 머물고 커 가며 성장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지속적으로 머물면서 성장하는 실체적인 자아로써의 ‘의식의 주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식이 성장하고 커간다고 하니, 그것을 보고 의식의 주체로써의 영속적인 식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 식, 즉 마음을 참나, 아트만(Ātman)처럼 영속적이고 고정불변의 어떤 실체로써 받아들이면 안 된다. 특히, 이 식을 아트만처럼 잘못 알아듣고, 고정된 윤회의 주체로 여겨 이번 생에서 죽고 다음 생에 태어나면서 윤회를 반복할 때마다 계속 이어지는 어떤 실체로 여기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이해가 바로 브라만교에서 주장하는 아트만이고, 불교는 이러한 실체적인 아트만 사상을 타파하기 위해 무아(無我)를 설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