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유위적(行) 괴로움의 소멸
2024-10-21
조회수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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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2024-10-22 09:08
옳고 그름에 연연했던 스스로의 잣대를 자각합니다. 차암 끝없이 힘이 들었던 과정이엇고 지금도 찐드기를 향해 "헐~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는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라고.." 중얼거릴 때도 있지만.. 곧 그래서 내가 문제임을 이젠 확실하게 인지합니다.
이렇게 영글어 가는구나 하고 혼자 또 헛발질도 합니다^^ ㅍㅎㅎㅎ
그래도 열공 끝공 불끈정진 입니당~^^♡♡♡
감사합니다아~~♡♡♡🙆♂️🙆♀️🙆
이렇게 영글어 가는구나 하고 혼자 또 헛발질도 합니다^^ ㅍㅎㅎㅎ
그래도 열공 끝공 불끈정진 입니당~^^♡♡♡
감사합니다아~~♡♡♡🙆♂️🙆♀️🙆
iris2024-10-21 22:45
말씀처럼, 의도는 가지되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는 태도가
가장 수승한 것 같습니다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는 우리는 불평하지만
사실, 신은 가장 좋은 걸 준비하고 계시며
업의 조정이 순간순간 가장 최선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가장 수승한 것 같습니다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는 우리는 불평하지만
사실, 신은 가장 좋은 걸 준비하고 계시며
업의 조정이 순간순간 가장 최선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KK럭키2024-10-21 21:44
양극단을 여의라는 부처님 말씀과 양극단을 답하라는 혜능대사 말씀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모두가 양극단을 여읠 줄도 알고 답할 줄도 아는 중도적 지혜가 본래 구족되어 있습니다.
분별망상이 올라올 때 이미 중도적 지혜가 온전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 분별망상을 알아차린 놈 누구인지요..
그 분별망상이 일어난 곳은 어디인지요..
온전히 드러나 있음에도 도저히 볼 수 없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분별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모를 뿐.
제법실상, 법계 흐름에 따라 그저 비추어질 뿐입니다.
바른 가르침 수희찬탄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양극단을 여읠 줄도 알고 답할 줄도 아는 중도적 지혜가 본래 구족되어 있습니다.
분별망상이 올라올 때 이미 중도적 지혜가 온전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 분별망상을 알아차린 놈 누구인지요..
그 분별망상이 일어난 곳은 어디인지요..
온전히 드러나 있음에도 도저히 볼 수 없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분별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모를 뿐.
제법실상, 법계 흐름에 따라 그저 비추어질 뿐입니다.
바른 가르침 수희찬탄 합니다.
‘행온의 괴로움’은 특정한 의도, 욕구, 의지를 고집하게 될 때 그로 인해 괴로운 것이다.
예를 들어 적어도 A대학 정도를 가야 한다고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그보다 못한 대학에 갔을 때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스스로 만들어 낸 행온의 괴로움일 뿐이다. 즉 내가 스스로 ‘A대학’이라는 생각과 목표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일 뿐이다. A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이 다 괴로운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반드시 진급해야 한다는 의도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이라면, 진급에서 떨어졌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크게 괴로울 것이다. 어떤 특정한 여인과 반드시 결혼해야겠다는 의도에 대한 집착이 크면 클수록 그 여인과 결혼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도 커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한 가지 의도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면, 그것 이외의 다른 의도나 가능성은 가치를 상실하게 되고 만다. 의도 즉 행온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이 회사에 취직해도 좋고 저 회사에 취직해도 좋다. 모든 직업에 대해 활짝 열린 가슴으로 받아들이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그 앞에 놓인다.
그러나 한 가지 특정한 의도에만 집착하고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그것 아니면 절대 안 되는 줄 알고, 심지어 그것을 못 하면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찍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행온에 집착하는 데서 오는 어리석음이다.
행온은 무아다. 어떤 의도일지라도 내 스스로 그 의도에 집착함으로써 괴로워질 뿐이지, 본래부터 절대적으로 이것만이 옳은 의도는 없다.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없는데, 절대적으로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