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조사가 우리 같은 보통 사람과 다를 수가 있겠는가?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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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본래마음인, 공적영지심은 성인이라고 해서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범부라고 해서 더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에게 더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깨닫지 못한 우리들에게 더 작게 있는 것도 아니다. 

 

성인의 지혜라고 해서 더 빛나는 것도 아니고, 범부의 마음에 숨어 있다고 해서 더 어두운 것도 아니다. 


이미 성인이라 해서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범부라고 해서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면, 어찌 부처와 조사가 우리 같은 보통 사람과 다를 수가 있겠는가?

 

다만 우리들 보통 사람과 성인이 다른 것이 있다면, 다만 자기의 본래 마음을 확인하고 잘 지켜 보호하는 것일 뿐이다. 

 

그대가 만약 이런 말을 듣고 믿어서 의심이 단박에 없어지고, 대장부의 뜻을 내어 참되고 바른 견해를 일으켜서, 직접 그 맛을 보고 스스로 긍정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이것이 바로 마음 닦는 사람의 깨달은 자리이니, 이를 해오처(解悟處)라고 부른다. 

 

해오(解悟)란 요해각오(了解覺悟), 해탈오득(解脫悟得)의 준말인데, 곧 진리를 깨달아 아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때로는 증오(證悟)와 비교하여, 해오는 ‘이해하는 깨달음’이고, 증오는 ‘확실히 증득한 깨달음’이라 하여 해오를 조금 낮은 경지로 보기도 한다. 

 

다만 이 해오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기만 하다면 거기에는 깨달음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다. 


단순히 알음알이로 이해된 것을 해오라고 하지는 않는다. 


쉽게 말하면, 머리로 이해된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쑥 내려가 소화된 깨달음이다. 

 

이 돈오견성을 해오처라고 한 것은, 이렇게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그 뒤에 점수, 보임이라는 수행의 과정이 남았기 때문이다.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업습과 분별에 휘둘리며 끌려다니는 시간을 보내면서 본격적인 점수, 수행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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