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알지 못하는 마음이 곧 이것

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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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무업이 마조를 참례하였다. 


마조는 그의 훤칠한 용모와 종소리같이 우렁찬 목소리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불당은 높고 당당한데 그 안에 부처가 없구나."


무업이 절을 하고 꿇어앉아 물었다.


"삼승의 교학은 대강이나마 공부하였습니다만, 늘 듣기로 선문에서는 바로 이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니, 그것은 정말 모르겠습니다."


"다만 알지 못하는 마음이 곧 이것이고, 다시 다른 물건은 없다네."


무업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와 비밀리에 전한 심인(心印 마음도장)입니까?"


그러자 마조가 말했다.

"이 스님은 정말 시끄럽구나. 우선 갔다가 다른 때 오게."


"스님!"


무업이 머리를 돌리자 마조가 말했다.


"이것이 무엇이냐?"


무업이 곧 깨닫고는 절을 하니, 마조가 말했다.


"이 둔한 사람아, 절은 해서 뭐하나?"


≪마조어록≫ 중에서


불당 안에 부처가 없을 리가 없거늘, 무업이 자꾸 부처가 없다고 허망한 망상을 품고 있음을 빗대어 이른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본래 깨달아 있으므로 본각(本覺)이지만, 이 분주무업 선사처럼 스스로 아직 깨닫지 못하였다는 허망한 망상 분별을 지니고 살다가 그 분별을 내리고 비로소 다시 본래 부처였음을 깨닫기 시작할 때를 일러 시각(始覺)이라 한다.


이어서 마조는 "다만 알지 못하는 마음이 곧 이것"이라 말하지만 무업은 여전히 알아듣지를 못하고 조사가 서쪽에서 와 비밀리에 전한 심인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자 마조는 무업을 돌려보낸다. 


하지만 바로 그 때, 뒤돌아 가는 무업을 다시 “스님!” 하며 불러 세우는 마조의 한 마디에 무업은 고개를 휙 돌려 돌아보게 되고, “이것은 무엇이냐?”하고 다시 묻는 말 앞에 그 자리에서 분별을 내리고 곧장 깨닫게 된다. 


스승과 제자의 이심전심 줄탁동시 끝에 마침내 이렇게 깨달음의 기연을 이루어 낸 것이다.


분주무업은 무엇을 써서 마조스님의 말을 들었으며, 무엇으로 고개를 돌리고 무엇으로 절을 하였던가? 


그저 곧장 이것이다. 


저 무업선사 뿐 아니라 누구나 다 쓰며 살고 있는 이것 하나 뿐인 소식이다. 


깨달음이란 바로 이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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