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래 우리는 도를 가지고 있었다. 도를 가지고서 도를 찾아 온 것이다.
한 생각이 올라온다.
바로 그것이 곧바로 도다.
파도가 곧바로 바다인 것과 같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 생각이 올라왔을까?
그 생각의 출처가 어디인가?
그 생각은 어디에서 생겨났고, 또 어디로 돌아가는가?
색즉시공(色卽是空), 생각이 올라온 바로 그 자리에 자성, 불성, 깨달음, 마음, 도가 있다.
큰 도는 눈앞에 밝게 드러나 있지만, 중생이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불성은 본래 타고난 천진한 자연 그대로의 본래의 성품이니, 이미 있는 것이어서, 다시 닦아서 만들 필요가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열반을 얻고자 노력하고 애쓰고 집착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생사(生死)가 곧 실상(實相)이요, 지금 이대로의 삶 그대로가 완전한 실상이다.
한 생각 올라오는 것도 실상이고, 숨을 쉬는 것도 실상이며,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이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그대로 실상 아님이 없다.
중생이 곧 부처요, 어리석음이 곧 지혜다. 파도가 곧 바다다.
그 둘은 전혀 둘이 아니다.
어찌하여 밖에서 보물을 찾고자 하는가?
자기 안에 본래 자성이라는 밝은 보배구슬이 있다.
바른 길과 삿된 길이 둘이 아니다.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다.
범부와 성인은 둘이 아니다.
그 모든 양 극단이 곧 하나의 부처다.
일불승(一佛乘)이며, 불이법(不二法)이다.
미혹과 깨달음이 하나이고,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다.
이 우주 삼라만상의 일체 모든 존재와 존재가 벌이는 한바탕 꿈판이 전부 낱낱이 법 아닌 것이 없고, 실상 아님이 없다.
그러나 그 법은 얻고 잃을 것이 없다.
본래부터 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따로 얻고자 할 것도 없고, 얻을 수 있는 법도 없다.
삶은 지금 이대로 자재하여 저절로 무여열반(無餘涅槃)일 뿐이다.
중생의 생각에서만 환영의 괴로움이 펼쳐질 뿐, 그 괴로움의 본체를 보면, 텅 비어 공하고, 모든 것은 문제 그대로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본래 자재한 무여열반이었음이 확인된다.
글쓴이:법상
본래 우리는 도를 가지고 있었다. 도를 가지고서 도를 찾아 온 것이다.
한 생각이 올라온다.
바로 그것이 곧바로 도다.
파도가 곧바로 바다인 것과 같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 생각이 올라왔을까?
그 생각의 출처가 어디인가?
그 생각은 어디에서 생겨났고, 또 어디로 돌아가는가?
색즉시공(色卽是空), 생각이 올라온 바로 그 자리에 자성, 불성, 깨달음, 마음, 도가 있다.
큰 도는 눈앞에 밝게 드러나 있지만, 중생이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불성은 본래 타고난 천진한 자연 그대로의 본래의 성품이니, 이미 있는 것이어서, 다시 닦아서 만들 필요가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열반을 얻고자 노력하고 애쓰고 집착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생사(生死)가 곧 실상(實相)이요, 지금 이대로의 삶 그대로가 완전한 실상이다.
한 생각 올라오는 것도 실상이고, 숨을 쉬는 것도 실상이며,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이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그대로 실상 아님이 없다.
중생이 곧 부처요, 어리석음이 곧 지혜다. 파도가 곧 바다다.
그 둘은 전혀 둘이 아니다.
어찌하여 밖에서 보물을 찾고자 하는가?
자기 안에 본래 자성이라는 밝은 보배구슬이 있다.
바른 길과 삿된 길이 둘이 아니다.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다.
범부와 성인은 둘이 아니다.
그 모든 양 극단이 곧 하나의 부처다.
일불승(一佛乘)이며, 불이법(不二法)이다.
미혹과 깨달음이 하나이고,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다.
이 우주 삼라만상의 일체 모든 존재와 존재가 벌이는 한바탕 꿈판이 전부 낱낱이 법 아닌 것이 없고, 실상 아님이 없다.
그러나 그 법은 얻고 잃을 것이 없다.
본래부터 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따로 얻고자 할 것도 없고, 얻을 수 있는 법도 없다.
삶은 지금 이대로 자재하여 저절로 무여열반(無餘涅槃)일 뿐이다.
중생의 생각에서만 환영의 괴로움이 펼쳐질 뿐, 그 괴로움의 본체를 보면, 텅 비어 공하고, 모든 것은 문제 그대로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본래 자재한 무여열반이었음이 확인된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