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 점문, 열등한 근기의 정혜(3)

202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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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에 장애를 가져오는 대표적인 분별이 바로 혼침과 도거다. 도거는 마음이 들뜨고 산란한 것이고, 혼침은 그와 반대로 마음이 푹 가라앉고 혼미한 것을 말한다. 도거는 붕 떠 있는 마음이고, 혼침은 축 처진 가라앉은 마음이다.

만약 마음이 들뜨고 산란한 도거(掉擧)가 치성한 사람의 경우에는, 먼저 선정의 이치대로 산란한 마음을 거두어서 마음이 바깥 인연의 경계를 따르지 않고 본래의 공적함에 계합하게 해야 한다. 마음이 산란하고 쉽게 들뜨는 사람은 선정 수행을 통해 마음이 반연을 따라 얽매이지 않도록 수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본래의 공적함에 계합할 수 있다.

만약 마음이 흐리고 혼미한 혼침(昏沈)이 더욱 심할 때는 지혜로써 법에 따라 공을 관하여 미혹 없이 비추어 본래의 영지에 계합하도록 해야 한다. 마음이 붕 떠 있고 혼란스러운 사람에게는 선정 수행의 고요함이 도움이 되겠지만, 반대로 마음이 축 처져 있고 가라앉고 흐리며 혼미한 사람에게는 거울처럼 소소영령하게 비추어 보는 지혜의 관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혼침과 도거는 공부인에게 일어나기 쉬운 대표적인 분별심이다. 이를 조복한다는 것은 곧 일체의 분별심을 조복받는 것이다. 수행인에게 많은 분별을 조복받기 위해서 도거가 많은 이에게는 선정 즉 사마타 수행이 필요하고, 혼침이 많은 이에게는 지혜 즉 위빠사나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괴로움의 원인인 분별심을 타파하기 위해 사마타와 위빠사나, 선정과 지혜, 지관, 정혜를 닦는 것을 뜻한다.

앞에서는 자성 속에 정혜가 이미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음을 설했지만, 여기에서는 본래 갖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편을 일으켜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별도로 행하는 것이 근기가 낮은 중생들에게는 도움이 됨을 설하는 것이다.

남방불교의 수행처들에서는 수행처들마다의 다양한 수행 가풍과 수행 방법이 다르다. 어떤 곳은 사마타 수행 위주의 수행처가 있고, 또 어떤 곳은 위빠사나 위주의 수행처가 있으며, 같은 사마타나 위빠사나라고 할지라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또 온갖 종류의 구체적인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다. 지눌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중생들은 오랜 업습으로 인해 둔근기의 수행자일 수밖에 없다보니, 사마타와 위빠사나라는 수상문의 방편 수행이 나름의 성과를 얻게 될 수 있다.

그러니 선불교를 공부하는 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수행만을 옳다고 여기며 타인의 수행법을 폄하할 일이 아니다. 근본을 올바른 중도에 둘 수 있다면, 방편에서는 다양한 수행법들이 나름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법에는 공적과 영지가 둘이 아니고, 선정과 지혜가 둘이 아니지만, 방편의 측면에서는 선정으로 도거를 다스리고 지혜로 혼침을 다스림으로써 그 둘이 함께 사라지게 된다. 이처럼 혼침과 도거의 양극단의 분별이 선정과 지혜, 공적과 영지로 인해 함께 없어지면 다스리려는 노력도 끝이 나게 된다. 처음에는 선정과 지혜로 도거와 혼침을 다스린다고 하지만, 결국 이 법의 자리로 돌아오면 둘이 평등하게 정혜등지가 되어 양극단의 분별이 쌍으로 사라지니, 닦으면서도 닦음이 없어 모든 유위의 노력이 끝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경계를 마주하더라도 순간순간 근본으로 돌아간다. 매 순간 경계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법의 자리가 뚜렷하다. 외부 경계와 인연에 끌려갈 일이 생기더라도 마음 마음이 도에 계합해서 걸림 없이 정혜를 쌍으로 닦게 된다. 처음에는 정과 혜를 인연에 맞게 닦았지만, 이제는 정과 혜가 저절로 쌍으로 닦이게 되니 비로소 일 없는 사람, 즉 무사인(無事人)이라 할 만하다. 이것이 바로 정혜등지를 실천하는 것이며, 불성을 밝게 본 사람의 공부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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