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 삼자성상(三自性相) - 능가경(楞伽經)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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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세 가지 자성의 모양을 잘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 자성상인가? 첫째는, 망계자성(妄計自性, 망령되이 헤아리는 자성, 遍計所執性)이며, 둘째는 연기자성(緣起自性, 인연 따라 연하여 일어나는 자성, 依他起性)이고, 셋째는 원성자성(圓成自性, 원만한 성품의 자성, 圓成實性)이다.

망계자성은 상으로부터 생긴다... 이름에 계착하는 상(名)과 사물의 모양(事相)에 계착하는 상, 이 두 가지를 망령되게 헤아리는 성품에서 생긴다...

대혜여, 의지하는 바와 연기하는 바에서 일어나니 이것이 연기자성이다.

어떤 것이 원성자성인가?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는 상이 일체 분별을 떠나 바른 깨달음을 얻은 지혜의 진여이다. 이것이 원성자성의 여래장심이다.

 

✔ 유식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삼성설이 『능가경』에서는 망계자성(변계소집성), 연기자성(의타기성), 원성자성(원성실성)으로 나온다. 망계자성 즉 변계소집성은 분별망상에 의해 만들어진 허망한 것들을 말한다. 연기자성 즉 의타기성은 인연을 만나 생겨난 것들을 말한다. 원성자성 즉 원성실성은 원만하게 스스로 완성된 참된 성품을 말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진 것이거나, 아니면 망령된 우리의 헛된 분별망상 때문에 있다고 여겨진 것들뿐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원성실성이 있다.

망계자성은 허망하게 생겨난 것으로,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서 허망하게 상(모양)으로 그려낸 것이다. 우리는 허망하게 만들어낸 모양에 이름을 붙여서 헤아리고, 모양을 헤아린다. 명상(名相)에 집착하는 것이다. 대상에 이름과 모양을 붙여서 허망하게 분별심으로 대상을 실체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든 것들을 변계소집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생겨난 모든 상(相)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상무자성이라고 한다.

연기자성은 인연 따라 생겨난 것들, 의존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일체 모든 것들은 인연 따라 생겨나지 않은 것이 없다. 인연생기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질 유한하고, 비실체적인 것일 뿐이다. 인연생 인연멸하는 것에는 실체가 없다. 그래서 인연 따라 생겨난 모든 것은 사실 진짜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생무자성이라고 한다.

원성자성은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지 않고, 분별에 의해 허망하게 생겨난 것이 아닌 일체 분별을 떠난 원만한 본래 성품이다. 그러나 물론 이 또한 본래성품이라는 특별한 자성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승의무자성이라고 한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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