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 뜰 앞의 잣나무 - 조주종심 조주어록(趙州語錄)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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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인도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경계로써 사람을 가르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나는 경계로써 사람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달마가 인도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 달마가 인도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 하고 묻는 것은 ‘법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그 당시의 하나의 정형구다. 이에 조주는 ‘뜰 앞의 잣나무’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 답을 들은 이는 말의 뜻을 따라가 뜰 앞에 서 있는 잣나무라는 경계를 답하는 줄 잘못 알았다.

선에서의 화두(話頭)나 공안(公案)에서는 경계를 말하더라도 그것이 경계를 말한 것이 아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듯, 색이 있는 바로 그곳에 공이 있는 것처럼, 경계를 말하지만 경계를 말한 것이 아니라 바로 색과 둘이 아니게 함께 있는 공이라는 참된 진실을 가리킨 것일 뿐이다.

그래서 조주는 나는 경계를 말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달마가 인도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이 때 제자는 깨달았다.

똑같이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라고 답했지만 어리석은 이는 그 말의 의미를 머리로 헤아려 뜰 앞에 서 있는 잣나무라는 경계를 따라가기에 법의 당처(當處)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경계를 따라가지 않을 때는 ‘뜰 앞의 잣나무’에서 법(法)이 드러난다.

잣나무 까지 갈 것도 없이 ‘뜰’이라는 한 마디 말이 나오자마자 곧장 법이 드러난다. 마삼근(麻三斤)도 마찬가지고, 마른 똥막대기(乾尿橛)도 마찬가지다. 손가락을 하나 들어도 마찬가지다.

법은 이미 드러나 있다. 스승은 이미 드러나 있는 법을 다만 가리킬 뿐이다.

이 때 머리로 헤아리면 법은 물 건너가고 제자는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그러나 걱정 말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뜰 앞의 잣나무를 헤아릴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그 말을 듣고 이렇게 하지도 못하고 저렇게 하지도 못하고, 뭘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으니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야 한다. 생각이 꽉 묶여야 한다. 그것이 화두의 목적이다.

답은 내야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동안 해 왔던 방식, 즉 질문을 듣고 그 답을 찾으려는 모든 인위적인 노력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이런 질문에 꽉 막히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면 그야말로 나무토막 같고, 힘이 축 빠지면서 저절로 생각이 힘을 잃게 된다. 그런 시간이 오래 오래 지속되다가 결국 한 번 완전히 분별이 콱 막히게 되면, 바로 그 때 스승이 가리키는 법이 드러나게 된다.

뜰 앞의 잣나무라서 법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시절인연이 무르익게 되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어떤 말이 되었든, 행동이 되었든, 보고 듣는 그 어떤 것에서도 툭 트이는 날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경계가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시절인연의 기연(機緣)이 드디어 좋은 때를 만났을 뿐이다.

그러니 무슨 말을 듣고 깨달았는지, 어떤 화두를 들다가 깨달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다가 깨달았는지 그것을 탐구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낙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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