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 참마음이 온 세상의 바탕길(2)

202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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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보통 ‘마음’이라고 하면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중생심이고, 둘째는 진여심(眞如心)이다. 중생심은 식(識), 분별하는 마음, 분별심을 말한다. 진여심은 『수심결』에서 설명하는 참마음, 본래면목, 자성, 불성이라고 부르는 본래의 마음, 즉 무분별심(無分別心)을 말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중생심, 분별심만을 쓰고 살아왔다. 중생의 분별심은 대상을 둘로 나누고 비교 분별하여 인식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진실하지 못하다. 한 사람이 크다거나 작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진실로 표현한 인식일 수 없다. 더 큰 사람보다는 작고, 더 작은 사람보다는 크기 때문이다. ‘크다’라거나 ‘작다’라는 인식은 진실하지 못하고, 실체적 진실이 아니다. 임시방편으로 ‘크다’, ‘작다’라고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은 말이고 방편일 뿐 진실은 아니다.

이처럼 중생의 분별심은 진실하지 않고, 실재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늘 써 오던 이 중생의 분별심 이전에 있는 무분별심이라는 진실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일체 모든 대상, 삼라만상, 모든 것은 분별해서 보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볼 수 없다. 내 식대로 분별하고 비교해서 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대상을 보자마자 ‘아는 마음’이 있다. ‘분별해서 아는 마음’ 이전에,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분별없이 ‘아는 마음’이 먼저 있다. 어떤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가 새소리인지 사람 목소리인지, 누구의 목소리인지 분별해서 아는 마음 이전에 ‘소리’ 자체를 아는 마음이 있다.

갓 태어난 아기나 고양이는 소리를 분별해서 아는 능력이 없음에도, 어떤 소리가 들리면 ‘듣자마자 곧장 아는 마음’이 있다. 소리 자체를 듣고 그냥 안다. 이 순수한 앎이 있고 나서 분별이 시작된다.

이 분별없이 아는 마음을 ‘첫 번째 자리의 마음’, ‘무분별심’이라고 하고, 그 아는 마음 이후에 비교하고 분별해서 아는 의식적인 마음을 ‘두 번째 자리의 마음’, ‘분별심’이라고 불러보자. 이 첫 번째 자리가 바로 진여심, 자성, 본래면목이고, 두 번째 자리가 중생심, 의식, 분별심, 분별 망상심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두 번째 자리에 떨어진 분별의 마음만을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사실 이 첫 번째 자리의 마음, 즉 무분별심, 대상을 보자마자 있는 그대로 아는 마음이 먼저 있지 않으면 두 번째 자리의 분별이 일어날 수 없다. 첫 번째 자리의 마음이 있으므로, 그 위에서 두 번째 자리의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첫 번째 자리의 마음, 즉 무분별심은 마치 모든 분별의 배경과도 같고 바탕과도 같아서 텅 비어 보이지 않지만 모든 분별심이 일어나고 사라지도록 늘 바탕 자리에 여여하게 있다.

그래서 불교 경전에서는 이 첫 번째 자리를 ‘바다’에 비유하고, 두 번째 자리를 ‘파도’에 비유하곤 한다. 바다 위에서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듯, 모든 파도는 결국 바다와 둘이 아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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