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 조주어록(趙州語錄)
2025-11-14
조회수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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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럭키2025-11-15 21:49
이미 밥상은 온 천지에 차려져 있습니다.
어디서든 숟가락이 쥐어져 있습니다.
입은 언제나 늘 벌려 있습니다.
이 밥이 어디서 난 쌀인지 설익지는 않았는지 냄새는 괜찮은지 등등 온갖 분별은 일단 내버려 두고..
그냥 먹으면 됩니다.
맛을 보면 됩니다.
선지식께 법을 청할 뿐입니다.
어디서든 숟가락이 쥐어져 있습니다.
입은 언제나 늘 벌려 있습니다.
이 밥이 어디서 난 쌀인지 설익지는 않았는지 냄새는 괜찮은지 등등 온갖 분별은 일단 내버려 두고..
그냥 먹으면 됩니다.
맛을 보면 됩니다.
선지식께 법을 청할 뿐입니다.
행복2025-11-15 08:31
언제나 내몸을 기준으로 안과 바깥이 있고
내가 바깥 경계와 접촉하는 식으로
인식합니다
눈을 감고
막 태어난 간난아이가 되어
느껴봅니다
간난아이는 세상의 그 어떤 정보도
입력되지 않은 순수의식 상태입니다
경계는 없으며 텅빈 허공 전체와 하나입니다.
처음으로 어떤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아이에겐 소리가 바로 자기입니다
이처럼
보는것이 자기이고 접촉하는 것이 자기이고
온통 자기만 만납니다
그 아이에게 둘은 없으며 통째로 하나인 자기만 경험합니다
내가 바깥 경계와 접촉하는 식으로
인식합니다
눈을 감고
막 태어난 간난아이가 되어
느껴봅니다
간난아이는 세상의 그 어떤 정보도
입력되지 않은 순수의식 상태입니다
경계는 없으며 텅빈 허공 전체와 하나입니다.
처음으로 어떤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아이에겐 소리가 바로 자기입니다
이처럼
보는것이 자기이고 접촉하는 것이 자기이고
온통 자기만 만납니다
그 아이에게 둘은 없으며 통째로 하나인 자기만 경험합니다

달마가 인도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경계로써 사람을 가르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나는 경계로써 사람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달마가 인도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바른 사람이 삿된 법을 설하면 삿된 법도 사람을 따라 바르게 되지만, 그릇된 사람이 정법을 설하면 그 정법도 그 사람을 따라서 그릇되게 된다.
✔ 달마가 인도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 하고 묻는 것은 ‘법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그 당시의 하나의 정형구다. 이에 조주는 ‘뜰 앞의 잣나무’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 답을 들은 이는 말의 뜻을 따라가 뜰 앞에 서 있는 잣나무라는 경계를 답하는 줄 잘못 알았다. 선에서의 화두(話頭)나 공안(公案)에서는 경계를 말하더라도 그것이 경계를 말한 것이 아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듯, 색이 있는 바로 그곳에 공이 있는 것처럼, 경계를 말하지만 경계를 말한 것이 아니라 바로 색 뒤에 드러나 있는 공이라는 참된 진실을 가리킨 것일 뿐이다.
그래서 조주는 나는 경계를 말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달마가 인도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이 때 제자는 깨달았다.
똑같이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라고 답했지만 어리석은 이는 그 말의 의미를 머리로 헤아려 뜰 앞에 서 있는 잣나무라는 경계를 따라가기에 법의 당처(當處)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경계를 따라가지 않을 때는 ‘뜰 앞의 잣나무’에서 법(法)이 드러난다. 잣나무 까지 갈 것도 없이 ‘뜰’이라는 한 마디 말이 나오자마자 곧장 법이 드러난다. 마삼근(麻三斤)도 마찬가지고, 마른 똥막대기(乾尿橛)도 마찬가지다. 손가락을 하나 들어도 마찬가지다. 법은 이미 드러나 있다. 스승은 이미 드러나 있는 법을 다만 가리킬 뿐이다.
이 때 머리로 헤아리면 법은 물 건너가고 제자는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그러나 걱정 말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뜰 앞의 잣나무를 헤아릴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그 말을 듣고 이렇게 하지도 못하고 저렇게 하지도 못하고, 뭘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으니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야 한다. 생각이 꽉 묶여야 한다. 그것이 화두의 목적이다. 답은 내야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동안 해 왔던 방식, 즉 질문을 듣고 그 답을 찾으려는 모든 인위적인 노력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이런 질문에 꽉 막히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면 그야말로 나무토막 같고, 힘이 축 빠지면서 저절로 생각이 힘을 잃게 된다. 그런 시간이 오래 오래 지속되다가 결국 한 번 완전히 분별이 콱 막히게 되면, 바로 그 때 스승이 가리키는 법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뜰 앞의 잣나무라서 법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시절인연이 무르익게 되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어떤 말이 되었든, 행동이 되었든, 보고 듣는 그 어떤 것에서도 툭 트이는 날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경계가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시절인연의 기연(機緣)이 드디어 좋은 때를 만났을 뿐이다. 그러니 무슨 말을 듣고 깨달았는지, 어떤 화두를 들다가 깨달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다가 깨달았는지 그것을 탐구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낙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