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반야(般若) - 반야, 불이중도의 이해

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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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는 곧 무분별지라고 했는데요, 이것은 앞으로 나올 『반야심경』을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며, 불교의 핵심이 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조금 더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가 중도(中道), 불이법(不二法), 불이중도(不二中道)입니다. 즉 반야지혜가 곧 중도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이며, 불이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불이법은 둘로 나누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세상을 바라볼 때 언제나 대상을 둘로 나누어 놓고 그 두 가지를 비교해야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자식이 학교에서 성적을 90점을 받아왔다면 그것만을 가지고 부모님은 자식이 공부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학급 평균은 몇 점인지, 다른 친구들이 몇 점을 맞았는지, 자식이 몇 등인지를 알아야만 내 자식이 공부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를 선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그것 자체만을 가지고는 알 수 없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알음알이를 불교에서는 둘로 나누어서 안다고 해서 ‘분별심’이라고 합니다. 경전에서는 ‘식(識)’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바로 이러한 분별심 때문에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대상을 차별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럼으로 인해 괴로움이 생기게 되었다고 봅니다.

둘로 나눠 놓고 좋거나 나쁜 것, 옳거나 그른 것, 잘나고 못난 것, 적과 아군 등으로 나누어 놓게 되면 좋은 것, 옳은 것, 잘난 것은 더 많이 가지고 싶어 집착하게 되고, 반대인 것은 싫어서 거부하게 됩니다. 좋고 싫은 것이 있으면 좋은 것에는 집착하고, 탐심(貪心)을 일으켜 붙잡으려 하지만, 싫은 것은 거부하고 밀쳐내려고 하며 화나 짜증 등의 진심(嗔心)을 일으킵니다. 탐심과 진심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치심(癡心)은 바로 이렇게 둘로 나누어 놓는 마음입니다. 이게 바로 초기경전에서 해탈 열반을 탐진치 삼독의 소멸이라고 하셨던 바로 그 탐진치 삼독(三毒)입니다. 즉 삼독의 소멸이 곧 열반이라고 할 때, 이 말은 곧 분별심 즉 이법(二法)으로 나누어 놓는 마음만 없으면 곧 깨달음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분별해서 둘로 나누어 놓는다는 것 자체가 어떤 대상에 대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크다거나 작다거나 하는 등의 상(相)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분별하는 모든 대상은 상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고 하여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면 바로 여래를 본다고 한 것입니다.

결국, 바로 이 둘로 나누는 분별심이 우리의 깨달음을 막는 유일한 장애물인 것입니다. 바로 이 둘로 나누는 분별망상만 없으면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언제나 드러나 있는 실상반야, 법의 성품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승찬스님은 『신심명』에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둘로 나누어 선택하지만 않으면 된다.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해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내 머릿속의 해석과 판단과 분별 속의 삶만을 살아오느라 이 눈앞에 드러나 있는 생생한 진짜 삶을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을 보더라도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내 생각으로 해석하고 분별한 생각 속의 한 사람을 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불법을 바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분별하지 말라고 하고, 극단에 치우치지 말라고 하고, 중도적으로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중도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둘로 나누어 놓고 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그런 극단을 버리고, 다만 대상을 비교, 차별, 분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볼 것을 주문합니다.

그래서 지공화상은 『대승찬』에서 “큰 도는 항상 눈앞에 있지만, 보기는 어렵다. 애써 분별하여 모양을 취하지 않으면 잠깐 사이에 저절로 도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분별하여 분별상을 취하지만 않으면 곧장 도를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좋거나 나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중도이고, 불이법이며, 불이중도의 지견입니다. 그것이 바로 반야라는 무분별지이지요.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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