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체 만유(萬有)는 시간, 공간적으로 모든 것[一切]에 의지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 공간적으로 보았을 때 현재 나와 연관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시간적으로 따지면,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그 위의 모든 조상님들, 그리고 또 그 위 조상님들… 이렇게 나가다 보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형제 아님이 없습니다. 나로부터 20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약 209만 명, 30대를 소급해서 올라가면 약 21억이 넘는 조상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엄격히 따져보면, 이들 중 한 명만 빠져도 ‘나’라는 존재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고조할아버지 한분만 안 계셨어도 지금의 나는 없었듯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30대 앞에 계셨던 21억의 조상님 가운데 한 분만 계시지 않았더라도, 혹은 사고사를 당하셨더라도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런 그물코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연기적인 시야를 조금 더 확장해 역사 속의 일체 모든 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나와 연관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과 나는 뗄 수 없는 상호 연관된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들이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으니 그들도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나’라는 존재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시간의 고리 일체가 나와 통해 있고, 내 속에 함장 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의 역사가 지금 이 순간, 내 속에 ‘나’라는 모습으로 생동감 있게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속에 일체의 모든 역사와 일체 모든 존재가 전부 한바탕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 모든 시간과 역사가 지금의 나와 지금의 이 순간과 둘이 아닌 것입니다.
공간적으로 따져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내가 옷을 입고, 신발, 양말을 신고 다니며,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습니다. 나를 살아있을 수 있게 해 주는 그 모든 것들은 완전히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전체가 지금의 나를 나일 수 있도록,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옷이 지금 내 몸에 걸쳐지기까지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의 노고와 피땀이 들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느질하는 이, 옷감을 만드는 이, 옷을 만드는 과정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연결되어 도움을 주었을까요? 그 외에도, 유통과정에서의 도매상, 소매상, 옷가게 주인 등 무수히 많은 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도왔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티셔츠를 입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먹는 밥도 마찬가지지요. 단지 내가 내 돈 내고 먹으니 내 것이고, 나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연결성을 모르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내가 밥을 먹기 위해서는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농부들의 피땀이 필요하고, 그 농부가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비료 만드는 사람, 삽 만드는 사람, 쟁이 만드는 사람, 곡식이 잘 자랄 수 있는 모든 조건, 즉 땅, 씨앗, 물, 태양 등등의 많은 것이 연관되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일례로 태양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요? 아마도 얼마 안 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곧 폐허가 되고 말 것입니다. 물이 없어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내가 잘나서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위의 모든 조건들, 수많은 사람들과 상호 긴밀한 연관 관계 속에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의상조사 법성게의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이란 바로 이런 사실을 노래한 것입니다. ‘한 티끌 속에 온 우주를 머금었으며 하나가 곧 전체고 전체가 곧 하나다’라는 화엄의 법계연기의 가르침인 것이지요. 이처럼 이 우주법계는 전체와 하나가 완전히 서로 돕고 도우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시간, 공간적으로 ‘나’라는 존재는 일체 모든 만유(萬有), 만생(萬生), 유정물(有情物)과 무정물(無情物), 모든 자연과 연관 되어서 공생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 혼자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나 혼자서는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나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지요. 일체의 사소한 미물과도, 하다못해 곤충, 짐승, 물, 태양 등과도 나는 연관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태양, 부모, 친구 등의 조건들은 나와 관계가 깊으니까 더 중요하고, 곤충, 역사의 인물, 산과 들은 나와 연관이 적으니 덜 중요하다는 생각들도, 조금만 깊이 생각, 사유해 보면 그렇지 않으며, 모두가 하나로 똑같이 나의 다른 모습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곧 우주이고 우주가 곧 나인 것입니다.
이렇듯 시간, 공간적으로 일체 모든 존재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인연생(因緣生)입니다.
글쓴이:법상
일체 만유(萬有)는 시간, 공간적으로 모든 것[一切]에 의지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 공간적으로 보았을 때 현재 나와 연관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시간적으로 따지면,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그 위의 모든 조상님들, 그리고 또 그 위 조상님들… 이렇게 나가다 보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형제 아님이 없습니다. 나로부터 20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약 209만 명, 30대를 소급해서 올라가면 약 21억이 넘는 조상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엄격히 따져보면, 이들 중 한 명만 빠져도 ‘나’라는 존재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고조할아버지 한분만 안 계셨어도 지금의 나는 없었듯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30대 앞에 계셨던 21억의 조상님 가운데 한 분만 계시지 않았더라도, 혹은 사고사를 당하셨더라도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런 그물코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연기적인 시야를 조금 더 확장해 역사 속의 일체 모든 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나와 연관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과 나는 뗄 수 없는 상호 연관된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들이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으니 그들도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나’라는 존재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시간의 고리 일체가 나와 통해 있고, 내 속에 함장 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의 역사가 지금 이 순간, 내 속에 ‘나’라는 모습으로 생동감 있게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속에 일체의 모든 역사와 일체 모든 존재가 전부 한바탕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 모든 시간과 역사가 지금의 나와 지금의 이 순간과 둘이 아닌 것입니다.
공간적으로 따져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내가 옷을 입고, 신발, 양말을 신고 다니며,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습니다. 나를 살아있을 수 있게 해 주는 그 모든 것들은 완전히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전체가 지금의 나를 나일 수 있도록,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옷이 지금 내 몸에 걸쳐지기까지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의 노고와 피땀이 들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느질하는 이, 옷감을 만드는 이, 옷을 만드는 과정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연결되어 도움을 주었을까요? 그 외에도, 유통과정에서의 도매상, 소매상, 옷가게 주인 등 무수히 많은 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도왔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티셔츠를 입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먹는 밥도 마찬가지지요. 단지 내가 내 돈 내고 먹으니 내 것이고, 나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연결성을 모르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내가 밥을 먹기 위해서는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농부들의 피땀이 필요하고, 그 농부가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비료 만드는 사람, 삽 만드는 사람, 쟁이 만드는 사람, 곡식이 잘 자랄 수 있는 모든 조건, 즉 땅, 씨앗, 물, 태양 등등의 많은 것이 연관되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일례로 태양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요? 아마도 얼마 안 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곧 폐허가 되고 말 것입니다. 물이 없어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내가 잘나서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위의 모든 조건들, 수많은 사람들과 상호 긴밀한 연관 관계 속에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의상조사 법성게의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이란 바로 이런 사실을 노래한 것입니다. ‘한 티끌 속에 온 우주를 머금었으며 하나가 곧 전체고 전체가 곧 하나다’라는 화엄의 법계연기의 가르침인 것이지요. 이처럼 이 우주법계는 전체와 하나가 완전히 서로 돕고 도우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시간, 공간적으로 ‘나’라는 존재는 일체 모든 만유(萬有), 만생(萬生), 유정물(有情物)과 무정물(無情物), 모든 자연과 연관 되어서 공생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 혼자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나 혼자서는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나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지요. 일체의 사소한 미물과도, 하다못해 곤충, 짐승, 물, 태양 등과도 나는 연관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태양, 부모, 친구 등의 조건들은 나와 관계가 깊으니까 더 중요하고, 곤충, 역사의 인물, 산과 들은 나와 연관이 적으니 덜 중요하다는 생각들도, 조금만 깊이 생각, 사유해 보면 그렇지 않으며, 모두가 하나로 똑같이 나의 다른 모습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곧 우주이고 우주가 곧 나인 것입니다.
이렇듯 시간, 공간적으로 일체 모든 존재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인연생(因緣生)입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