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 색즉시공
2026-01-31
조회수 199
13
8
행복2026-02-01 05:36
그림속 겨울풍경은 지금의 유럽느낌이네요
순회법회 잘다녀오셔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코에 냄새 맡아지고
할 때 ...볼 뿐ㆍ 들을 뿐ㆍ 냄새 맡아질 뿐.
볼때는 보는것만 있게하고, 들을때는 듣는것만 있게하고 ,냄새 맡아질 때는 맡아진것만 있게하고.
보는 주체가 있으므로 보이는 대상이 있고
듣는 주체가 있으므로 들리는 대상이 있고
맡는 주체가 있으므로 맡아지는 대상이 있는것.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은 둘이 아닌 하나
듣는 주체와 들리는 대상은 둘이 아닌 하나
맡는 주체와 맡아지는 대상은 둘이 아닌 하나.
여기서 주목할것은 보는 주체ㆍ듣는 주체ㆍ맡는 주체이다
늘 이렇게 하는 주체가 있어서 이순간도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쓰고 있다
주체없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고 글을 쓸 수 없다
온갖 대상을 드러나게 하는 주체에 주목해야한다
마치 영화관에서 영사기가 비추는 빛과 함께 온갖 영화속 내용이 펼쳐질때,,, 텅빈 스크린위에 빛이 없다면 영화내용이 드러날 수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동굴속에
한줄기 빛이 들어올 때 동굴안에 온갖 모양들이 드러나듯이
빛처럼, 스크린처럼 모든것을 행하고 드러나게 하는 그주체가 있음에 주목하자
온갖 대상이 색이라면 대상을 드러나게 하는 주체가 공. 색과공은 하나. 색이 있는건 공이 있다는 것.
공이 있으므로 색이 있는것.
색즉시공 공즉시색
지혜의 법문 감사합니다 🙏
순회법회 잘다녀오셔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코에 냄새 맡아지고
할 때 ...볼 뿐ㆍ 들을 뿐ㆍ 냄새 맡아질 뿐.
볼때는 보는것만 있게하고, 들을때는 듣는것만 있게하고 ,냄새 맡아질 때는 맡아진것만 있게하고.
보는 주체가 있으므로 보이는 대상이 있고
듣는 주체가 있으므로 들리는 대상이 있고
맡는 주체가 있으므로 맡아지는 대상이 있는것.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은 둘이 아닌 하나
듣는 주체와 들리는 대상은 둘이 아닌 하나
맡는 주체와 맡아지는 대상은 둘이 아닌 하나.
여기서 주목할것은 보는 주체ㆍ듣는 주체ㆍ맡는 주체이다
늘 이렇게 하는 주체가 있어서 이순간도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쓰고 있다
주체없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고 글을 쓸 수 없다
온갖 대상을 드러나게 하는 주체에 주목해야한다
마치 영화관에서 영사기가 비추는 빛과 함께 온갖 영화속 내용이 펼쳐질때,,, 텅빈 스크린위에 빛이 없다면 영화내용이 드러날 수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동굴속에
한줄기 빛이 들어올 때 동굴안에 온갖 모양들이 드러나듯이
빛처럼, 스크린처럼 모든것을 행하고 드러나게 하는 그주체가 있음에 주목하자
온갖 대상이 색이라면 대상을 드러나게 하는 주체가 공. 색과공은 하나. 색이 있는건 공이 있다는 것.
공이 있으므로 색이 있는것.
색즉시공 공즉시색
지혜의 법문 감사합니다 🙏


강아지송아지2026-02-02 20:01
냥이가 불지른 거 아니래요 오해 마시길 ㅎㅎㅎ
혀가 있으니까 맛을 보고
귀가 있으니까 듣는 다는 말이죠 ...?
똑같은 우주 속에서
누구는 부처의 삶을 살고
누구는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고요 ㅠㅠ
혀가 있으니까 맛을 보고
귀가 있으니까 듣는 다는 말이죠 ...?
똑같은 우주 속에서
누구는 부처의 삶을 살고
누구는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고요 ㅠㅠ

행복2026-02-02 21:50
@강아지송아지
냥이 표정이 비장하네요
제 느낌인가요!^^
제가 뭘 알아서 댓글을 단것 아님을요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지금도 자아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고...스승님 말씀처럼 바보가 될 염려는 없을듯합니다 ㅠ
잘 해나가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리엑션 좋은 성실한 학생역할에 집착하는중입니다
왠지 대답을 해줘야 될 것 같아서요..🫣
말씀하신 혀나 귀는 도구일뿐
혀의 작용을 통해 맛을 느끼고
귀의 작용을 통해 소리를 듣는
주체가
무엇인가 ? 하고 질문을 하라는 거죠
걸을 때도 무엇이 이렇게 다리로 걷고 있는가?
혀ㆍ귀 ㆍ다리가
하는것이 아니고 그 무엇인가가 하고 있다는 ...
귀가 주체라면 소리가 있지만 못들을 때도 있고
피부가 주체라면 피부통증이 있다가도 딴 생각할때는 느끼지 못할때도 있고
....이런식으로 이뭣고? 무엇이 하고 있는가?
빛을 쏴줄때 스크린위에 영상이 드러나듯이
빛= 주체=마음
이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제 느낌인가요!^^
제가 뭘 알아서 댓글을 단것 아님을요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지금도 자아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고...스승님 말씀처럼 바보가 될 염려는 없을듯합니다 ㅠ
잘 해나가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리엑션 좋은 성실한 학생역할에 집착하는중입니다
왠지 대답을 해줘야 될 것 같아서요..🫣
말씀하신 혀나 귀는 도구일뿐
혀의 작용을 통해 맛을 느끼고
귀의 작용을 통해 소리를 듣는
주체가
무엇인가 ? 하고 질문을 하라는 거죠
걸을 때도 무엇이 이렇게 다리로 걷고 있는가?
혀ㆍ귀 ㆍ다리가
하는것이 아니고 그 무엇인가가 하고 있다는 ...
귀가 주체라면 소리가 있지만 못들을 때도 있고
피부가 주체라면 피부통증이 있다가도 딴 생각할때는 느끼지 못할때도 있고
....이런식으로 이뭣고? 무엇이 하고 있는가?
빛을 쏴줄때 스크린위에 영상이 드러나듯이
빛= 주체=마음
이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강아지송아지2026-02-03 06:33
iris2026-02-03 22:49
행복님, 보현행원품의 선재동자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가리지 않고
늘 배움에 열려있는 자세가 참 좋아 보여요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셔서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가리지 않고
늘 배움에 열려있는 자세가 참 좋아 보여요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셔서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먼저 색즉시공을 살펴보겠습니다. 색이 지금 이 자리에서 여지없이 공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곧바로 공하다는 것이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일체 모든 물질적 대상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텅 비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써서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되지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물리학적인 과학의 설명을 빌어 본다면 꽉 차 있다고 믿는 모든 물질이 사실은 그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살펴보면 텅 빈 허공의 상태라거나, 입자와 파동의 관계, 홀로그램 등 다양한 양자물리학의 실험들을 빌어와서 공하다는 것을 설명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실제 이렇게 매 순간 직접 쓰고 있는 이 몸과 물질적인 모든 대상들이 다 텅 비어 있다고 실감되지는 않겠지요. 왜 실감되지 않을까요?
이 가르침은 우리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범주가 다르지요. 이것은 깨달음의 영역입니다. 깨달음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색즉시공이라는 의미입니다. 몰록 깨닫는 돈오 견성을 체험한 자에게는 그저 당연한 가르침이라는 것이지요.
깨닫는다는 것은 곧 지금 이대로의 현실세계가 곧장 공하다는 사실, 텅 비어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음을 온 존재로써 곧장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세계를 설하는 『반야심경』에서도 ‘무소득’이라고 하여 ‘얻을 것이 없다’고 하였고, 『금강경』에도 ‘조그마한 법이라도 얻을 만한 것이 없으므로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이 깨달음의 자리에는 텅 비어 공하여 그 어떤 것도 얻을 것이 없고,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육조스님은 이를 ‘한 물건도 없다’고 하여, ‘본래무일물’이라고 했습니다.
임제스님은 ‘구할 수 있는 부처도 없고, 이룰 수 있는 도도 없고, 얻을 수 있는 도도 없다’고 했고, 대혜스님은 ‘전해줄 수 있는 법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백장스님도 ‘부처는 구함이 없는 사람이니, 구하면 도리에 어긋난다’고 함으로써 진리의 자리에는 그 무엇도 구할 것도 얻을 것도 없는 텅 빈 공임을 설하고 있습니다. 황벽스님은 ‘이 마음은 나고 죽는 것도 아니고, 색깔이나 형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보통 선에서는 이 참된 진리를 이름하여 ‘마음’이니, ‘법’이니, ‘본래면목’이니, ‘불성’이니 수많은 이름으로 붙였지만 그 이름은 다만 가명일 뿐, 그 이름에 걸맞는 무엇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즉 중도로써 설명하였지요.
이처럼 깨달음의 진리에 계합하게 되면 무언가를 얻거나, 구하거나, 이루는 것이 아니라 본래 아무 것도 없었다는 공의 가르침을 확인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색즉시공의 소식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중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에 ‘색’만을 보고 살았습니다. 물질적인 색깔과 모양만을 보고 살았지요. 그러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보아오던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색’을 보면서도 그 색 위에서 색이 아닌 ‘공’을 보는 것입니다. 색과 공은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아니라 둘이 아닌 불이법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우리 중생은 색만을 보고, 깨달은 자는 거기에서 공을 보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흔히 삶은 이대로 완전하며, 우리는 지금 이대로 부처라고 설합니다. 진리는 눈 앞에 곧장 드러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의 소식입니다. 우리 눈에는 색만 보이지만 사실은 공이 환히 드러나 있음에도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눈앞에 환히 드러나 있다고 해서 당처(當處)라고도 하고, 각하(脚下)라도도 합니다. 조고각하(照顧脚下)란 자신의 발 아래를 비추어 보라는 말로, 깨달음이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발 밑에 가장 가까이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본분각하(本分脚下)라고도 하지요.
또한 목전(目前)이라고도 해서 깨달음이란 목전에 뚜렷하고 형상 없이 홀로 밝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경봉선사께서는 오도송에서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바로 목전에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또 승조스님은 촉사이진(觸事而眞)이라고 해서 눈에 부딪치는 것이 모두 참된 진실이라고 했고, 석두스님은 촉목회도(觸目會道)라고 하여 눈에 부딪치는 것마다 도를 만난다고도 했습니다. 또한 도오스님은 촉목보리(觸目菩提)라고 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깨달음 아님이 없다고 했고, 마조스님의 입처즉진(立處卽眞)과 임제스님의 입처개진(立處皆眞) 등도 모두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에 참된 진실, 깨달음, 공이 드러나 있음을 설하는 것입니다.
또 이를 『유마경』에서는 직심(直心)이라고 해서 당장에 곧장 이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 말합니다. 『육조단경』에서는 “일행삼매(一行三昧)는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모든 곳에서 항상 하나의 직심을 행하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즉 직심이란 주객이 나뉘지 않는 곧장 이 마음으로, 즉 쉽게 말하면 생각이나 망상, 분별심이 개입되지 않은 텅 빈 마음, 공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본래 마음은 깨끗하고 텅 비어 공하지만 우리의 허망한 생각과 분별망상이 그 참마음을 뒤덮어 현실을 왜곡되게 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육조단경』에서는 ‘허망한 생각 때문에 진여를 뒤덮은 것일 뿐, 단지 허망한 생각만 없으면 본성은 본래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즉 우리는 허망한 분별망상심 때문에 있는 그대로 드러나 있는 공을 보지 못하고, 눈 앞의 색만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중생들이 공이라는 진리를 보지 못하고 색만을 보는 이유는 바로 반야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반야지혜는 무분별지인데, 우리는 무분별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분별지로만 세상을 보기 때문에 공을 못 보고 색만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이유는 바로 색즉시공을 깨닫기 위함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일체 모든 대상에서 색만을 보고 그 색깔과 모양만을 보면서 이렇거니 저렇거니, 좋으니 나쁘니 하면서 분별하며 사는 삶에서, 문득 홀연히 돈오하여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을 곧바로 보는 것입니다. 모든 색이 드러나는 그 배경 바탕의 본래 자리에 있는 공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공부이고 수행인 것입니다. 색즉시공을 깨닫는 것이지요.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