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2026-03-02
조회수 167
17
5
iris2026-03-02 23:00
인연 따라 허망하게 생겨났다 사라지는 비실체적인 것
나라는 것은 없다
깨달은 부처의 눈으로 볼 때,
육근이 청정해져서 오염됨 없이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글 감사합니다❤️
정견으로 볼 때, 남도 없고 죽음도 없고, 나나 너나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인 마음이요 한 몸입니다
몸뚱아리는 원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몸에 집착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본래가 무아 무소유인 것입니다
진여불성은 무엇인가?
우리 중생의 눈에는 안보이지만, 성자의 안목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 진여불성은 훤히 빛나는 광명인 것입니다
훤히 빛나는 광명세계인 것입니다
광명도 그냥 우리 중생이 보는 눈부신 광명이 아니라
청정광명입니다
나라는 몸에도 진여불성이 충만해 있고 옆에 사람 몸에도 불성이 충만해 있습니다
또 나와 남사이의 공간도 역시 진여불성은 충만돼 있습니다
빈틈없이 광명인 불성인 것입니다
간격도 죽음도 남도 없는 우주에 빈틈없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 광명의 생명자체의 대명사가 바로 부처님의 명호입니다
이러한 정견을 가져야 진리의 참다운 불자입니다
-청화스님
나라는 것은 없다
깨달은 부처의 눈으로 볼 때,
육근이 청정해져서 오염됨 없이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글 감사합니다❤️
정견으로 볼 때, 남도 없고 죽음도 없고, 나나 너나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인 마음이요 한 몸입니다
몸뚱아리는 원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몸에 집착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본래가 무아 무소유인 것입니다
진여불성은 무엇인가?
우리 중생의 눈에는 안보이지만, 성자의 안목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 진여불성은 훤히 빛나는 광명인 것입니다
훤히 빛나는 광명세계인 것입니다
광명도 그냥 우리 중생이 보는 눈부신 광명이 아니라
청정광명입니다
나라는 몸에도 진여불성이 충만해 있고 옆에 사람 몸에도 불성이 충만해 있습니다
또 나와 남사이의 공간도 역시 진여불성은 충만돼 있습니다
빈틈없이 광명인 불성인 것입니다
간격도 죽음도 남도 없는 우주에 빈틈없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 광명의 생명자체의 대명사가 바로 부처님의 명호입니다
이러한 정견을 가져야 진리의 참다운 불자입니다
-청화스님

행복2026-03-03 05:24
중생심으로
불자가 되고보니 존경하는 선사스님들 뵙지 못한것이 아쉬움이고 그리움이 되네요...
물론 앞으로도 늘 그러하겠지요~
그렇치만
법신으로 함께 계신줄 믿기에
부처님도 수 많은 선사스님들도
돌아가신 가족들도
그립지만 그립지 않습니다^^
청화스님 알게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모습자체가 부처님의 화현인듯
느껴지는 ...
불자가 되고보니 존경하는 선사스님들 뵙지 못한것이 아쉬움이고 그리움이 되네요...
물론 앞으로도 늘 그러하겠지요~
그렇치만
법신으로 함께 계신줄 믿기에
부처님도 수 많은 선사스님들도
돌아가신 가족들도
그립지만 그립지 않습니다^^
청화스님 알게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모습자체가 부처님의 화현인듯
느껴지는 ...
iris2026-03-03 21:28
@행복
배움에 대해 경계 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셔서 공부에 참 좋은 품성 같아요😊
청화스님은 예전에 글로 먼저 접했는데,
진리를 확고히 가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청화스님과 조금 인연이 있는 거 같긴 한데
이후 세월이 흘러 다시 유튜브로도 접하게 되네요
우주의 근원에 가까울수록 사랑의 파장이 강렬해서
스승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보고 있어요🫠
청화스님은 예전에 글로 먼저 접했는데,
진리를 확고히 가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청화스님과 조금 인연이 있는 거 같긴 한데
이후 세월이 흘러 다시 유튜브로도 접하게 되네요
우주의 근원에 가까울수록 사랑의 파장이 강렬해서
스승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보고 있어요🫠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는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이라 하여 눈귀코혀몸뜻도 없고, 그 대상인 색성향미촉법도 없다고 설한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십이처는 실체가 아닌 허망한 착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 이해하여 이를 육근과 육경이 전부 없다 라고 오해를 해서는 안 되겠지요.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을 육근과 육경이 없다라고 해석하게 되면 전혀 말이 안 되게 됩니다. 무안이비설신의라고 했으니 감각기관인 눈도 없애고, 코도 없애고, 귀도 없애야 겠다거나 감각기능인 보는 작용도 없고, 듣는 작용도 없애야겠다고 여긴다면 『반야심경』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무안이비설선의 무색성향미촉법’은 육근과 육경이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 육내입처와 육외입처가 본래 없는 것이며 그것은 다만 인연 따라 허망하게 생겨났다 사라지는 비실체적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육근과 육경은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육근은 있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할 것은 다 합니다. 오히려 육근이 청정해져서 오염됨 없이 육경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육내입처와 육외입처는 없습니다. 그것은 중생의 허망한 착각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얻고 나면 눈귀코혀몸뜻을 보고 ‘나’라고 착각하지 않고, 보이고 들리고 냄새 맡아 맛보고 감촉 느껴지고 생각되는 대상을 ‘세계’라고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허망한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눈귀코혀몸뜻의 작용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귀코혀몸뜻의 감각활동, 감각능력은 그대로 있으면서도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실체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금강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는 끊임없이 아상을 타파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육내입처라는 허망한 착각에서 ‘나다’하는 아상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무안이비설신의’는 바로 눈귀코혀몸뜻의 활동을 보고 그것을 ‘나’라고 여기는 생각은 다만 허망한 착각일 뿐이기에 본래 없는 것임을 설하는 것입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