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즉 느낌과 감정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촉, 즉 접촉에 있습니다. 무엇이 접촉하는 것일까요? 식과 명색과 육입이 접촉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배운 것처럼 십팔계가 접촉하는 것을 말합니다.
십팔계의 육내입처를 여기에서는 육입이라고 했고, 육내입처가 육외입처를 만나 육식이 생길 때 그 육식을 여기에서는 식(識)이라고 하며, 식의 대상이 바로 명색(名色)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눈귀코혀몸뜻으로 내 바깥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을 접촉하게 되면, 대상을 분별하는 마음인 육식이 생겨나고, 바로 그러한 육내입처와 육외입처, 육식의 접촉이 있어야만 느낌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확실하게 말씀을 드리면, 촉이란 단순한 십팔계의 접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입이라는 나의 감각기관이 내 바깥에 있는 대상을 접촉하고 분별하게 됨에 따라 내 바깥에 무언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아지고 생각되는 대상이 실제로 ‘있다’는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데, 바로 그 ‘있다’는 허망한 착각이 바로 ‘촉’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눈으로 무언가를 보면 당연히 보이는 대상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 당연스런 말이라 생각하기 쉬운데요, 우리는 그동안 이런 생각을 너무 당연시하고 살아왔습니다. 눈에 보이면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여기고, 귀에 들리면 당연히 소리가 ‘있다’고 여기게 됩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접촉하면 접촉된 대상을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보이고 들리고 냄새 맡아진다고 해서 진짜로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당연히 있다고 여겨왔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있다’고 생각한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눈으로 분명히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살펴보았더니 없는 것을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있다고 여겼는데, 사실 내가 잘못 들은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환청을 들었을 수도 있지요.
우리는 우리 몸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우리 몸을 진짜로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부처님께서는 이 몸은 다만 인연따라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허망한 것일 뿐, 진실로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하셨습니다. 즉 우리의 감각기관이 접촉했다고 해서 그것을 진짜로 있다고 할 수 있느냐 하는데 근원적인 의문을 던져 보라는 것입니다.
감각되는 것이라고 해서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 느낀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분명히 자각되는 대상일지라도, 그 또한 잠시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소멸할 수밖에 없는 임시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감각기관으로 인식했다고 해서 진짜로 ‘있다’라고 막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있다’라는 허망한 착각을 12연기에서는 ‘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촉입처(觸入處)라고도 합니다. 여기에서 입처란 곧 의식을 말합니다.
12연기의 모든 지분은 소멸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이처럼 촉이라는 지분도 소멸되어야 할 것입니다. 감각기관으로 접촉했다고 해서 그것을 ‘있다’라고 여기는 허망한 착각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촉입처가 소멸되면, 우리는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귀로 들었다고 해서,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보고, 생각했다고 해서 그것을 다 있다고 여기는 착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보았고 들었다고 해서 그것을 진짜라고 여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내가 본 관점일 뿐, 내 입장에서 본 것일 뿐, 다른 사람은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르게 보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본 것에 대해 고집하고 집착하는 일도 사라지게 되겠지요.
사람들은 보통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내가 분명히 봤기 때문에 진짜야!’라는 허망한 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곳에서 똑같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것을 볼 수도 있고, 다르게 보았을 수도 있으며, 전혀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허망한 의식으로 세상을 걸러서 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촉이라는 지분을 멸하게 되면, 다만 보고 듣고 맛보고 경험할 뿐이지, 그러한 경험이 있을 뿐이지, 그것을 실제로 있다고 여기는 실체론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법상
수, 즉 느낌과 감정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촉, 즉 접촉에 있습니다. 무엇이 접촉하는 것일까요? 식과 명색과 육입이 접촉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배운 것처럼 십팔계가 접촉하는 것을 말합니다.
십팔계의 육내입처를 여기에서는 육입이라고 했고, 육내입처가 육외입처를 만나 육식이 생길 때 그 육식을 여기에서는 식(識)이라고 하며, 식의 대상이 바로 명색(名色)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눈귀코혀몸뜻으로 내 바깥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을 접촉하게 되면, 대상을 분별하는 마음인 육식이 생겨나고, 바로 그러한 육내입처와 육외입처, 육식의 접촉이 있어야만 느낌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확실하게 말씀을 드리면, 촉이란 단순한 십팔계의 접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입이라는 나의 감각기관이 내 바깥에 있는 대상을 접촉하고 분별하게 됨에 따라 내 바깥에 무언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아지고 생각되는 대상이 실제로 ‘있다’는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데, 바로 그 ‘있다’는 허망한 착각이 바로 ‘촉’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눈으로 무언가를 보면 당연히 보이는 대상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 당연스런 말이라 생각하기 쉬운데요, 우리는 그동안 이런 생각을 너무 당연시하고 살아왔습니다. 눈에 보이면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여기고, 귀에 들리면 당연히 소리가 ‘있다’고 여기게 됩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접촉하면 접촉된 대상을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보이고 들리고 냄새 맡아진다고 해서 진짜로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당연히 있다고 여겨왔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있다’고 생각한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눈으로 분명히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살펴보았더니 없는 것을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있다고 여겼는데, 사실 내가 잘못 들은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환청을 들었을 수도 있지요.
우리는 우리 몸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우리 몸을 진짜로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부처님께서는 이 몸은 다만 인연따라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허망한 것일 뿐, 진실로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설하셨습니다. 즉 우리의 감각기관이 접촉했다고 해서 그것을 진짜로 있다고 할 수 있느냐 하는데 근원적인 의문을 던져 보라는 것입니다.
감각되는 것이라고 해서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 느낀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분명히 자각되는 대상일지라도, 그 또한 잠시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소멸할 수밖에 없는 임시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감각기관으로 인식했다고 해서 진짜로 ‘있다’라고 막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있다’라는 허망한 착각을 12연기에서는 ‘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촉입처(觸入處)라고도 합니다. 여기에서 입처란 곧 의식을 말합니다.
12연기의 모든 지분은 소멸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이처럼 촉이라는 지분도 소멸되어야 할 것입니다. 감각기관으로 접촉했다고 해서 그것을 ‘있다’라고 여기는 허망한 착각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촉입처가 소멸되면, 우리는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귀로 들었다고 해서,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보고, 생각했다고 해서 그것을 다 있다고 여기는 착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보았고 들었다고 해서 그것을 진짜라고 여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내가 본 관점일 뿐, 내 입장에서 본 것일 뿐, 다른 사람은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르게 보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본 것에 대해 고집하고 집착하는 일도 사라지게 되겠지요.
사람들은 보통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내가 분명히 봤기 때문에 진짜야!’라는 허망한 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곳에서 똑같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것을 볼 수도 있고, 다르게 보았을 수도 있으며, 전혀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허망한 의식으로 세상을 걸러서 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촉이라는 지분을 멸하게 되면, 다만 보고 듣고 맛보고 경험할 뿐이지, 그러한 경험이 있을 뿐이지, 그것을 실제로 있다고 여기는 실체론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