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십이연기(十二緣起) - 육입(六入)

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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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육입입니다. 어떤 대상을 접촉하려고 하면 접촉해서 대상을 파악하고 아는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감각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즉 접촉하려면 접촉하는 주관과 접촉되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대상을 접촉한다고 할 때 바로 ‘나’를 육내입처, 혹은 육입이라고 하고, ‘대상’을 육외입처, 혹은 육경이라고 합니다. 육입이란 앞서 일체, 십이처에서 설명한 것처럼 육내입처로써 눈귀코혀몸뜻이라는 감각활동, 감각작용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눈귀코혀몸뜻이 색성향미촉법이라는 대상을 보고 감각을 느끼면서 ‘눈귀코혀몸뜻’을 ‘나’라고 여기는 허망한 착각이 바로 육입입니다. 색성향미촉법을 내 바깥에서 감각되는 대상이라고 여기는 허망한 착각이 바로 육외입처이지요.

육입은 이처럼 내 안에 있는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이라는 감각작용을 ‘나’라고 여깁니다. 즉 내가 있고, 나의 감각기관이 있으니 당연히 외부의 대상을 접촉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지요.

육입이 있으면 당연히 육입의 접촉이 생겨납니다. 사실은 육입도 허망한 분별심일 뿐이고, 촉 또한 허망한 분별심일 뿐이지만, 중생의 허망한 분별은 여기에 감각하는 주관인 내가 있어서 내가 외부의 대상을 접촉한다고 여깁니다. 실체적인 내가 외부 대상을 접촉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외부의 대상을 접촉할 때마다 ‘나’라는 주관이 그 대상을 좋거나 싫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육입에서 촉이 일어나고 촉에서 수-애-취-유-생-노사가 이어지는 것이지요.

당연히 이 육입 또한 멸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눈귀코혀몸뜻이라는 감각기관을 없애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눈귀코혀몸뜻을 ‘나’라고 생각하는 허망한 의식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각기관의 감각활동을 ‘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감각활동은 감각대상이라는 인연 따라 저절로 일어나는 인연생기하는 허망한 환상일 뿐입니다. 감각활동이 일어난다고 해서 거기에 감각하는 ‘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육입을 멸하더라도 눈귀코혀몸뜻으로 색성향미촉법을 감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섯 가지 감각활동을 ‘나’라고 착각하지 않을 뿐, 여전히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육근청정입니다. 육근이 청정하게 수호되는 것이지요. 육근을 ‘나’라고 집착하지 않을 때 육근은 청정해집니다. 즉 ‘보는 나’, ‘듣는 나’라는 집착 없이 마음껏 보고 듣고 맛 보고 냄새 맡고 감촉을 느끼며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육근이 청정해지면, 육입을 멸하면, 눈으로 무엇을 보든, 귀로 어떤 소리를 듣든, 코로 어떤 냄새를 맡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뜻으로 생각하든, 그 대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마음껏 육근을 사용하면서도 육근이 ‘나’라고 여겨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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