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십이연기(十二緣起) - 명색(名色)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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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입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명색입니다. 여기에 감각하는 ‘나’가 있다는 허망한 착각이 생기는 이유는 외부에 의식의 대상인 명색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각활동은 감각의 대상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육입의 대상은 육외입처인데, 엄밀히 말하면 육입이 감각적으로 접촉하는 대상은 육외입처만이 아니라, 육내입처도 포함됩니다. 즉 눈은 외부 사물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바라봅니다. 귀 또한 외부의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목소리도 듣습니다. 이런 점에서 육입의 원인은 육외입처라기보다는 육외입처와 육내입처를 포함하는 어떤 대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명색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실 명색이란 육식의 대상을 표현할 때 쓰는 명칭입니다. 즉 육식이라는 분별심의 대상이 곧 명색입니다. 명색이란 말 그대로 명과 색으로, 이름과 모양 있는 모든 대상을 말합니다. 즉 육식, 즉 의식으로 분별 가능한 모든 대상을 명색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의식은 대상을 분별하여 파악할 때 특별한 대상을 특별한 이름을 부여하여 기억하거나, 특정한 모양으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분별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은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전부 이름을 부여해서 알거나, 모양을 분별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의식, 육식의 대상을 명색이라고 이름합니다.

예를 들어 빌딩, 사람, 자동차, 축구공, 의자 등 물질은 ‘이름과 모양’으로 기억하고, 사랑, 감사, 질투, 용서 등 정신적인 것은 ‘이름’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정신적인 대상 또한 ‘이름’을 붙인 뒤에 그 이름에 걸맞는 모양 없는 이미지, 모양으로 분별합니다. ‘사랑’이라고 분별된 이름에는 나만의 따뜻하고 아름답고 포근한 어떤 감정적, 정서적, 의식적인 마음의 이미지를 그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마다 저마다 ‘사랑’을 다르게 이해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에 따뜻하고 사랑받는 좋은 이미지를 개입시켜 이해하지만,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 심하게 배신을 당해 본 사람이라면 ‘사랑’이라는 이름에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개입시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새겨진 명색은 고정된 실체가 아닙니다. 저마다 세상을 파악할 때 자기식대로, 자기식대로 분별하여 이해하는 것이지요. 즉 명색 또한 내식대로 대상을 파악하여 인식한 내 안에서 일어난 허망한 착각의 의식입니다.

그러니 내가 의식으로 분별하여 파악한 대상에 대해 고정되게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내가 그렇게 파악한 대상의 이해일 뿐, 다른 사람은 그 명색을 다르게 파악하고 분별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명색을 멸해야 한다고 설합니다. 명색은 자기식대로 세상을 파악한 허망한 착각의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 안의 감각활동인 육입도, 내 바깥에 있다고 여기는 명색도 사실은 안과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난 안과 밖이라는 허망한 착각일 뿐입니다. 그래서 유식불교에서는 마음이 ‘나’라는 주관으로 착각되는 의식을 ‘보는 부분’이라고 하여 견분(見分)이라 하고, ‘외부’, ‘세계’라는 객관으로 착각되는 의식을 ‘보이는 모양’이라고 하여 상분(相分)이라고 하면서, 견분과 상분은 내 마음이 그렇게 주객으로 파악한 허망한 착각일 뿐, 사실 그 두 가지는 결국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난 의식일 뿐이라고 설합니다.

이를 식(識)이 전변(轉變)하여 견분과 상분으로 나뉘어진 것처럼 보일 뿐, 사실은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기적으로 성립되며, 별도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분과 상분, 즉 주관과 객관은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만 성립되는 연기적 관계이기에 ‘연(緣)’을 붙여서 견분을 ‘능히 연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능연(能緣)이라 하고, 보이는 대상은 연해지는 대상이라 하여 소연(所緣)이라고 합니다. 즉 인식 주관인 견분도 능연식으로 식이 변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인식 대상인 소연경 또한 사실은 별도로 존재하는 경계가 아니라 식이 전변한 것일 뿐입니다. 쉽게 말해 나와 세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는 다 식이 변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허망한 착각의 의식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은, 사실 경전에서는 ‘식-명색-육입’은 동시에 일어난다고 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어느 것이 먼저 생성되고 소멸되는지에 선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식-명색-육입은 동시생 동시멸하는 연기적인 관계로 파악합니다. 우리 몸의 감각활동인 육입과 감각된 대상을 분별하여 아는 마음인 식과 분별된 대상이라는 명색은 동시에 생겨나는 연기적인 관계라는 것이지요.

이처럼 식-명색-육입-촉은 함께 일어납니다. 촉의 원인은 육입과 명색과 식 전부가 동시에 원인이 되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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