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무가애고 무유공포(無罫碍故 無有恐怖) - 대품반야경의 공포 - 무서운 세상을 살아가는 두려움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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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의 괴로움은 ‘무서운 황야를 가거나’ 하는 부분입니다. 무서운 황야에는 언제 무엇이 나와서 나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맹수가 득실거리는 곳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도둑이나 강도가 나를 노릴 수도 있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 무시하는 사람, 공격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들이 언제 나를 노리고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자기 생각이 자신을 두렵게 만들지만, 무서운 황야에서는 언제 어떤 사람이나 맹수가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바로 하나의 ‘무서운 황야’입니다. TV나 신문, 뉴스를 보면 매일 매일 무섭고 끔찍한 범죄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내가 언제 그 공격의 대상이 될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심지어 길을 가다가 기분 나쁘게 바라봤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기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묻지마 폭행’, ‘묻지마 살인’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세상 참 무서운 곳임을 절감하게 되고, 아들 딸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오기를 당부하기도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언제 차량 사고가 나게 될지, 언제 쓰나미가 몰려 올지, 언제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나를 덮칠지, 언제 다리나 빌딩이 무너져 내릴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말 그대로 ‘돌연사’라는 말도 듣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온갖 오염된 물질과 음식, 가공되고 유전자 조작된 식품들까지 나를 공격합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병명도 알 수 없는 온갖 질병들이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언제 어떤 질병이 나를 덮칠지 알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무서운 황야’와 같은 이 세상은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반야심경』에서는 이러한 공포심 또한 반야바라밀다라는 공관을 통해 벗어날 수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서운 황야’의 공포는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나를 덮치고 들어오는 것이니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또한 내가 반야바라밀다라는 공관에 철저해지면 벗어날 수 있다고 설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이 세상과 나는 다르다고 여깁니다. 여기에 내가 있고 내 바깥에 외부의 세계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분별심이고 이법(二法)입니다. 그러나 반야바라밀다의 진실에서는 둘로 나뉘어진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와 세계는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세계는 내 마음의 투영입니다. 내 마음에 문제가 있지 않으면 외부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나와는 전혀 상관 없이 내 바깥에서 나를 공격해 들어오는 온갖 맹수가 있을 것 같지만, 그 또한 나와 분명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만 나타나게 됩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사라지는 것이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일은 없습니다.

내 마음에 있는 것만이 외부에서 드러납니다. 내 안에 어떤 업장이 있다면 그 업장이 외부의 어떤 경계를 끌어당기게 될 것입니다. 나와 세계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처럼 우리 마음이 세상을 만들 뿐입니다.

그러니 사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런 맥락 없이, 아무런 인연관계도 없이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나를 죽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근원에서 본다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세상의 모든 공포스러운 뉴스를 볼 때마다, ‘혹시 나에게도 저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 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내 마음을 정화시키고, 마음을 청정히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 온갖 공포스러운 뉴스거리가 넘쳐난다고 해서, 바깥 활동을 철저히 제한하거나, 너무 과도하게 조심스러워함으로써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인도에서 한국 여행자가 사고를 당했다는 기사를 읽고는 세계여행을 포기할 필요도 없고, 지하철에서 한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지하철 타는 것을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심지어 ‘무서운 황야’라는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그 또한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반야바라밀다에 철저하지 못하기에 죽는 것은 두려운 것이라고 여기지만, 『반야심경』에서 설하듯, 사실은 나고 죽는 것이 아니라 불생불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멸이 진실이 아니라 불생불멸이 진실입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육신의 관점에서 생멸법일 뿐, 마음에서는 태어남도 없고 죽는 것도 없습니다. 나고 죽음이 모두 한마음이라는 불성의 바다 위에 잠시 일어난 파도와 같을 뿐입니다. 나고 죽음이 파도처럼 공하다는 반야바라밀에 철저하다면, 설사 죽는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할 것은 없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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