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무가애고 무유공포(無罫碍故 無有恐怖) - 대품반야경의 공포 - 사람으로 인한 두려움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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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두려움은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있게 되는’ 두려움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서로 믿지 못하고, 서로를 위협하고, 경쟁하며, 이기기 위해 싸우는 사회 또한 두렵습니다. 사람은 근원적으로 자기 마음속에 아상(我相)과 아집(我執)이 있어서, 상대방을 배려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유식에서는 제7식 말나식이라고도 하여 자아집착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의식의 바탕에 이처럼 자기만을 생각하는 자아집착심이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두루 두루 잘 지내던 사람도 자신의 이익과 관련해서는 냉정해지거나, 심지어 적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로 인해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대중을 두려워하여 혼자만의 공간으로 숨어버리는 경우도 있지요.

연예인들처럼 대중의 즉각적인 평가와 관심 등에 민감한 이들 또한 대중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느끼고, 대인기피나 대인공포증 혹은 사회공포증을 겪기도 하며, 공황장애를 겪기도 하는 것 또한 이러한 대중으로 인해 오는 두려움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요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젊은층의 소위 ‘왕따’ 같은 문제나, 노년층의 ‘고독사’ 같은 문제 또한 한 편으로는 ‘사람’으로 인한 괴로움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있어도 두렵고, 없어도 두렵습니다.

내 마음 가운데 두려움과 공포가 자리 잡게 되면 모든 것이 두렵게 느껴지지만, 내 마음 속에서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랑과 자비로 느끼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실 사람으로 인한 두려움 또한 결국에는 내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불교에서는 언제나 마음공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모든 문제는 곧 내 문제이며, 내 안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 하는 점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인연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가꾸어 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지요.

실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속에서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좋은 사람은 어디를 가도 그곳에서 좋은 사람으로 남지요. 심지어 나쁜 사람들 속에 그 사람이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들을 감화시켜 주변 사람들까지 좋은 사람으로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특히 조직사회를 보면 그 사회에 구성원이 어떤 사람이 새로 들어오고 나가느냐에 따라, 특히 조직의 윗사람이 어떤 사람이 오느냐에 따라 그 조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매우 큰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조직이 완전히 바뀌고, 밝고 건강하며 웃음꽃이 피는 곳으로 바뀌기도 하고, 한 사람으로 인해 조직이 와해되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 사는 사회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또한 자기 마음의 문제일 뿐입니다. 내 마음이 청정해지고, 내 마음이 활짝 열리며, 내 마음이 모든 사람을 포용해 줄 수 있을 만큼 넓고 자비와 사랑이 가득하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 사람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닐 것입니다.

보통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사람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사람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거나, 자기만의 홀로된 곳으로 숨어 버리거나,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만을 찾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완전하고 안전한 외부 세계를 찾으려고 하면, 그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 세계와 다투고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나쁜 사람은 만나게 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괴로움과 공포는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두렵지 않은 사람들, 공포스럽지 않을 만한 환경, 그런 외부 환경을 찾아 헤매는 것은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내 마음을 바꾸어 정화하게 된다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 안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대신 사랑과 자비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두렵다고 뒤에서 숨기 보다는, 오히려 조금씩 조금씩 사람을 두려워하는 내 마음을 인정해주고,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려운 마음을 살아주어 보세요. 두렵고 무서운 마음을 숨기려고 애쓰거나, 없애려고 애쓰는 것 대신, ‘그래 나는 두려워’ 하고 인정한 뒤, 두려울 때는 두려움 속으로 뛰어들어 보는 것입니다. 나에게 두려워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해 주는 것이지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두려움은 근원적인 마음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원시시대 때부터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 두려움이 자기를 방어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공포감이야말로 원시시대에서 살아남는 생존에 필수적인 본능이었습니다. 이처럼 공포와 두려움은 ‘나쁜’ 것이 아니라, 매우 합리적이고 적절하며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감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것을 적절히 잘 활용하면 될 뿐, 거기에 사로잡히거나 과도하게 휩쓸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이러한 공포와 두려움은 인간의 근원적인 괴로움의 핵심적인 감정입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행할 때는 주로 두려워서 행동하거나, 아니면 사랑해서 행동하거나 하는 둘 중 하나로써 행동하기 쉽습니다. 문명의 발전이라는 것 또한 가만히 두고 보면 자연환경과 맹수 등에 맞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온갖 문명이 발전한 것이기도 하지요.

공포와 두려움이 이토록 중요한 감정이기 때문에 불교에서도 사람들에게 행하는 보시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보시 3가지를 재시(財施)와 법시(法施)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두려운 마음을 없애주는 무외시(無畏施)를 매우 큰 보시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재시는 재물, 돈에 시달려 굶주리는 이를 위한 보시이고, 법시는 진리에 목마른 이에게 법을 베풀어 주는 보시이지만, 무외시는 마음이 불안한 이를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최고의 보시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무외시는 바로 중생들에게 두려워해 할 만한, 공포감을 느낄 만한 대상은 어디에도 없다는 공사상을 일깨워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 불이법의 세계에서는 실제 내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없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대상은 실체가 아니라 비실체적인 것이며, 공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반야바라밀의 공관을 깨닫게 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무외시입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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