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품] 서분 - 지금 부처를 쓰고 있다!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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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 부처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를 쓰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어요. 지금 숨 쉬려고 애써 보셨습니까? 숨 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숨은 저절로 쉬고 있지요? 숨을 내가 쉰 건가요? 저절로 일어나지 않았나요? 숨 쉬려 하지 않아도 숨이 저절로 쉬어지고, 음식을 소화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소화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매 순간 세포 분열을 일으키면서 성장하고 있고, 내가 늙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저절로 늙어가고 있어요. 내가 하지 않았는데 그냥 되고 있어요. ‘아, 이상하네. 내가 한 게 아닌데 여기 뭔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뭔가가 있는 거 아닌가?’라고 궁금해지지 않나요?

이렇게 숨 쉬게 하고, 몸을 움직이게 하고, 말을 듣게 하는 게 있는 것 같지 않나요? 뇌가 생각하고, 귀가 소리를 듣고, 몸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탁! 탁! 탁! 이 소리를 맘대로 듣지 않을 수 있나요? 그냥 들립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아침에 먹은 밥을 내 맘대로 소화하지 않을 수 있나요? 안 됩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니고 법계(法界), 법신(法身) 부처님, 자성(自性), 마음, 여래, ‘이것’의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대기대용(大機大用)이라고 해서, 이 우주법계 전체를 운용하고 굴리는 ‘이것’이 있고 없고를 넘어서서 있는 것입니다.

 

나의 뇌가 생각한다면 내 뜻대로 생각을 멈추라고 하면 멈춰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내가 생각하거나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은 하루에 5만 개도 넘는 온갖 종류 생각들이 저절로 일어나는 듯 보입니다. 몸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내가 명령을 해야만 움직일 텐데, 갑자기 공이 날아오면 저절로 피하고, 음식을 먹으면 저절로 소화되고,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늙어갑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한 적이 있나요? 저절로 되고 있지 않습니까?

내 몸이라고 여겨왔던 이것이 정말 내 몸이 맞습니까? 내 몸이 아니에요. 말로 하자면, 한마음, 주인공, 불성, 일진법계(一眞法界)라고 하는 하나의 큰 거대한 부처가 여러분 전체, 삶 전체를 하나로 굴리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 이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경험입니다. 이 생생한 경험을 통해 부처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탁!(죽비소리) 이렇게.

 

자꾸 사람들은 특별한 순간에 특별하게 체험되는 놀라운 견성체험(見性體驗)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견성체험은 왔다가 사라집니다. 그렇게 인생의 어느 한순간 이벤트처럼 왔다가 가는 체험은 진정한 체험이 아닙니다. 사실은 매 순간 일어나는 것이 체험입니다. 숨 쉬면서 확인하고, 말하면서 확인하고, 생각하면서 ‘이것(부처, 진리, 법, 마음)’이 확인됩니다. 매 순간 확인되지 않는 때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전부 ‘이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말도 할 수 없고, 생각도 할 수 없고, 행동도 할 수 없고, 손가락질하나 까딱하며 움직일 수도 없고, 소화 시킬 수도 없고, 숨 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공짜로 무한정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걸 찾기 위해, 이걸 더 잘하기 위해 애써서 박사학위를 따야 할까요? 배워야 할까요? 탁!(죽비소리) 이 소리를 듣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나요?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주어져 있어서 여러분들 모두 지금 마음껏 쓰고 있는 것입니다.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면 선명해 보이고, 안 쓰면 흐릿하게 보이긴 해도, 본다는 그 성품(性品)은 바뀐 적이 없습니다. 시각장애인 또한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 걸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안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눈을 감으면 안 보이는데 사실은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안 보인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검은 것을 보고 있죠.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릴 때는 소리가 안 들린다는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언제나 부처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곧장 본 것을 해석하고, 해석한 게 진짜라고 착각합니다. 보이는 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가 보일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자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 손을 예로 들면, 손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어서 이 손을 볼 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첫 번째 자리에서 볼 때는 아무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면 여러분들은 미소를 짓습니다. 만일 중간 손가락만 놔두고 나머지 4개를 접으면 곧장 ‘아니, 스님이 성스러운 절에서 저런 저급한 손가락 욕(Fuck you)을 하다니!’라는 해석이 들어가서 얼굴을 붉힙니다.

손 자체는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나 손 모양에 따라 분별을 하면 하트를 그릴 때는 좋고, 손가락 욕을 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즉 실상은 있는 그대로일 뿐인데, 우리가 손 모양(相)에 따라 분별을 따라감으로써 좋거나 싫은 분별이 생길 뿐이라는 것이지요.

법도 이와 같습니다. 진리는 늘 있는 그대로입니다. 지금 이대로 삶은 아무 일이 없습니다. 늘 지금 있는 이대로일 뿐입니다. 다만 여기에 중생들은 분별로 의미를 부여하고, 좋거나 나쁘다는 분별을 개입시킴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분별의 허상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입니다.

당신의 삶은 그저 그러할 뿐, 잘 살았거나 못 살았을 수 없습니다. 삶은 언제나 있는 이대로입니다. 그런 삶에 의미를 부여하여 잘 살았다거나 못 살았다고 분별하는 순간, 나 자신이 그런 사람으로 규정되고, 우울해지거나, 우월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분별은 전부 자기 생각의 일일 뿐입니다. 여기 이 텅 빈 바탕에는 아무 일이 없고, 의미도 없고, 분별도 없습니다. 이 텅 빈 여기에서 ‘좋다’는 분별도 나오고, ‘나쁘다’라는 분별도 나왔을 뿐이지요.

이 마음공부는 바로 우리가 분별하여 좋거나 나쁘다고 취사간택하기 이전, 있는 그대로인 현상 그대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곧 정견(正見)이고 중도입니다. 그래서 스승은 늘 진리가 무엇이냐는 제자의 질문에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이거나, 뜰 앞의 잣나무를 가리키거나, 차나 한잔하라고 합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가리켜 보여 줄 뿐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분별 이전을 보지 못하고, 분별 된 대상만을 따라가며 볼 뿐이기에, 진실을 보지 못합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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