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품] 제4 참회업장원 - 근본 불성으로 업장 소멸하기
2026-09-30
조회수 165
24
3
iris2026-10-01 23:07
법의 힘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괴로운 일이 올라올 때 올라오도록 허용하는 힘이 그것입니다.
업장이 올라오는 대로 허용해 주면 순간 순간 해탈이 되기 때문입니다.
글 감사합니다❤️
지관으로 해탈하게 하는 것이 가장 편하지만
괴로움을 허용하는 것이 아직은 낯선 사람들에게는 방편을 통해
진정 허용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괴로움을 허용하지 않고 막고 있는 상위 자아에게
그동안 내가 상처받을까봐 너 나름 지켜준다고 수고 많았어
고마워 사랑해, 그런데, 이젠 그렇게 지켜주지 않아도 돼
그냥 흐르게 둬도 돼, 이렇게 말해 줄 때
괴로움이라는 고통체가 문득 흘러감을 느끼게 됩니다
허용되어짐이 무엇인지 조금은 감을 잡게 됩니다
무엇이든 괴로운 일이 올라올 때 올라오도록 허용하는 힘이 그것입니다.
업장이 올라오는 대로 허용해 주면 순간 순간 해탈이 되기 때문입니다.
글 감사합니다❤️
지관으로 해탈하게 하는 것이 가장 편하지만
괴로움을 허용하는 것이 아직은 낯선 사람들에게는 방편을 통해
진정 허용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괴로움을 허용하지 않고 막고 있는 상위 자아에게
그동안 내가 상처받을까봐 너 나름 지켜준다고 수고 많았어
고마워 사랑해, 그런데, 이젠 그렇게 지켜주지 않아도 돼
그냥 흐르게 둬도 돼, 이렇게 말해 줄 때
괴로움이라는 고통체가 문득 흘러감을 느끼게 됩니다
허용되어짐이 무엇인지 조금은 감을 잡게 됩니다
행복2026-10-01 04:50
일상이 곧 수행처입니다
어떤 감정 느낌이 올라왔을 때
올라왔구나! 관의 힘이 갈수록 강해짐을
느낍니다 찰싹 달라붙은 본드처럼 강한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부러 보려는게 아니고 자연스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당황ㆍ놀람ㆍ머쓱함...보고 있다보면 상대의 인연도 자연스레 보게 됩니다
내감정이 자연스럽듯이 상대의 반응 또한
아주 자연스런것이다
내 행동이 상대에게 늘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했고 또 비판받는것을 두려워했다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았던 내 업장이었구나!
업장은 철거덕 소리로 내면서 나를 깨우치려고 왔던거구나! 내마음은 내것이고 상대마음은 상대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것이다
결론은 관의 힘을 통해서 끄달림없이 아무일이 없었습니다 업장은 소멸되려고 옵니다 진리는 늘 바른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가르침 감사합니다 🙏
어떤 감정 느낌이 올라왔을 때
올라왔구나! 관의 힘이 갈수록 강해짐을
느낍니다 찰싹 달라붙은 본드처럼 강한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부러 보려는게 아니고 자연스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당황ㆍ놀람ㆍ머쓱함...보고 있다보면 상대의 인연도 자연스레 보게 됩니다
내감정이 자연스럽듯이 상대의 반응 또한
아주 자연스런것이다
내 행동이 상대에게 늘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했고 또 비판받는것을 두려워했다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았던 내 업장이었구나!
업장은 철거덕 소리로 내면서 나를 깨우치려고 왔던거구나! 내마음은 내것이고 상대마음은 상대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것이다
결론은 관의 힘을 통해서 끄달림없이 아무일이 없었습니다 업장은 소멸되려고 옵니다 진리는 늘 바른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가르침 감사합니다 🙏


업장이 올라온다는 것은 곧 그때가 업장이 해결될 때이기에 해소되기 위해 올라온 것입니다. 모든 업은 쌓여 있으면 괴로움이 되지만 풀려나면 해결이 됩니다. 그러니 무슨 업이든 빨리 받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내 마음대로 빨리 받을 수도 없으니, 무슨 업장이든 올라오면 그때가 그 업을 소멸할 때이고, 업장에서 가벼워질 수 있는 좋은 때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어떤 인연이든 내 인생에 나타난 모든 인연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쁜 일이라면 악업이 소멸하는 것이니 더욱더 좋은 일이 됩니다.
법력(法力) 즉 법의 힘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괴로운 일이 올라올 때 올라오도록 허용하는 힘이 그것입니다. 업장이 올라오는 대로 허용해 주면 순간순간 해탈이 되기 때문입니다.
업장이 올라오고, 괴로운 일이 생겨날 때, 그것을 생각으로 해석하고 판단함으로써 그 일을 따라 질질 끌려다니며 괴로워할 것이 아닙니다. 그 업장이 올라오기 이전 자리, 이 눈앞의 법의 자리에 딱 서 있으면 생각과 업장에 끌려가지 않고 그저 흘려 보내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법의 자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분별로 해석하여 따라가지 않는 자리가 바로 법의 자리입니다.
분별 망상이 없으면 그것이 곧 참된 지혜입니다. 무분별지, 반야지혜는 분별을 따라가지 않을 때 늘 있는 것이지, 따로 계발하거나 갈고 닦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진실의 자리는 늘 있습니다. 언제나 여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본래면목이기 때문입니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바로 여기가 불성(佛性)의 당처(當處)입니다.
육조(六祖)의 첫 제자 도명 상좌에게 육조 혜능은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바로 그때 너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뿐입니다. 즉 선악, 시비, 분별, 생각이 없을 때 바로 이것이 그대의 본래면목임을 가리켜 보였을 뿐입니다. 도명은 바로 여기에서 깨달았습니다.
이 공부에서는 한 생각 올라올 때 따라가지 않는 것이 귀할 뿐입니다. 이것이 곧 눈앞이고 목전(目前)입니다. 이것이 지금 여기이고, ‘이것’이며, 그대의 본래면목이고 불성입니다. 이 자리에 있으면 업장이 일어나도 일어난 바가 없습니다. 업장이라고 해석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잘 안 되니 방편으로 업장이나 괴로운 생각이 올라올 때 ‘업장이구나’, ‘생각이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그저 그것과 잠시 같이 있어 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잠시 같이 있어 주라는 말은, 그 올라오는 생각에 끌려가지도 말고, 없애려 애쓰지도 말고, 그런 모든 노력을 멈추고(止) 그저 볼 뿐(觀)임을 뜻합니다.
이것이 곧 지관(止觀)이며, 중도(中道)입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불성 당처에 일체를 몰록 놓아버려라고도 할 수 있고, 본래 자리에 내맡기라고 말할 수도 있으며, 있는 그대로 볼 뿐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