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었다.
“근기가 뛰어난 사람은 듣는 즉시 쉽게 알겠지만, 중하(中下)의 사람은 의혹이 없지 않을 것이니 다시 방편을 설하여 미혹한 이들을 깨닫도록 해 주십시오.”
답한다.
“도는 알고 모르는 데 속하지 않는다. 그대는 깨닫기를 기다리는 미혹한 마음을 버리고 나의 말을 잘 들어라.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幻化]와 같다. 그러므로 망념(妄念)은 본래 고요하고, 티끌 같은 경계[객관 대상]는 본래 공(空)하다. 모든 법이 다 공한 그곳에 신령스러운 앎[靈知]은 어둡지 않으니, 공적영지(空寂靈知)라는 이 마음이 바로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들과 천하의 선지식이 서로 은밀하게 전한 법인(法印)이다. 만약 이 마음을 깨달으면 참으로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부처의 경지에 올라 걸음걸음이 삼계를 초월하고 본래의 집에 돌아가[歸家] 단박에 의심을 끊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되고, 자비와 지혜가 서로 도와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므로, 인간과 천상에게 공양을 받게 될 것이니, 하루에 만 냥의 황금이라도 쓸 만하다. 그대가 만약 이와 같다면 참다운 대장부로서 한평생 할 일을 다 마친 것이다.”
問上上之人 聞卽易會 中下之人 不無疑惑 更說方便 令迷者趣入 答道不屬知不知 汝除却將迷待悟之心 廳我言說 諸法如夢 亦如幻化 故妄念本寂 塵境本空 諸法 皆空之處 靈知不昧 卽此空寂靈知之心 是汝本來面目 亦是三世諸佛 歷代祖師 天下善知識 密密 相傳底法印也 若悟此心 眞所謂不踐階梯 徑登佛地 步步超三界 歸家頓絶疑 便與人天爲師 悲智相資 具足二利 堪受人天供養 日消萬兩黃金 汝若如是 眞大丈夫 一生能事 己畢矣
이렇게 말하더라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중하 근기의 사람들을 위해 다시 설한다. 그대는 가슴으로 들어보라. 다만 ‘잘 귀 기울여 들으면 깨닫겠지’ 하고 깨닫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듣는다면, 그 또한 분별심이기에 방해가 될 뿐이다. 깨닫기를 기다리는 마음 자체가 미혹한 마음이다.
그저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순수한 발심(發心)이 있을 뿐이어야지, 다른 사람들은 못 깨달은 것을 내가 깨닫겠다거나, 내가 깨달아 부처가 되겠다거나 하는 마음으로 깨닫기를 기다리면 그것 자체가 아상(我相)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수행을 한다고 하지만, ‘내가’ 하는 수행이 되기 때문에 어긋난다. ‘나’는 결코 수행을 할 수 없다. 바로 그 수행한다고 하는 내가 사라지는 것이 곧 수행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결코 깨달을 수 없다. ‘내가 열심히 수행해서 그 결과 깨달았다’고 하는 인과적인 결과는 이 공부에서는 없다. 나도 사라지고 깨달음도 사라지는 것, 내가 깨닫는 것이 아니라 법이 법 자신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참된 깨달음이다.
또한 가르침을 가슴으로 직접 체험해 맛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야지, 머리로 헤아려서 정리하고 알려는 마음으로 듣는다면 그 또한 알음알이의 일이기에 이 마음을 확인하기 어렵다. 도는 알고 모르는 데 속하지 않는다. 알고 모르는 것은 곧 분별 의식, 식(識)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쓴이:법상
물었다.
“근기가 뛰어난 사람은 듣는 즉시 쉽게 알겠지만, 중하(中下)의 사람은 의혹이 없지 않을 것이니 다시 방편을 설하여 미혹한 이들을 깨닫도록 해 주십시오.”
답한다.
“도는 알고 모르는 데 속하지 않는다. 그대는 깨닫기를 기다리는 미혹한 마음을 버리고 나의 말을 잘 들어라.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幻化]와 같다. 그러므로 망념(妄念)은 본래 고요하고, 티끌 같은 경계[객관 대상]는 본래 공(空)하다. 모든 법이 다 공한 그곳에 신령스러운 앎[靈知]은 어둡지 않으니, 공적영지(空寂靈知)라는 이 마음이 바로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들과 천하의 선지식이 서로 은밀하게 전한 법인(法印)이다. 만약 이 마음을 깨달으면 참으로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부처의 경지에 올라 걸음걸음이 삼계를 초월하고 본래의 집에 돌아가[歸家] 단박에 의심을 끊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되고, 자비와 지혜가 서로 도와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므로, 인간과 천상에게 공양을 받게 될 것이니, 하루에 만 냥의 황금이라도 쓸 만하다. 그대가 만약 이와 같다면 참다운 대장부로서 한평생 할 일을 다 마친 것이다.”
問上上之人 聞卽易會 中下之人 不無疑惑 更說方便 令迷者趣入 答道不屬知不知 汝除却將迷待悟之心 廳我言說 諸法如夢 亦如幻化 故妄念本寂 塵境本空 諸法 皆空之處 靈知不昧 卽此空寂靈知之心 是汝本來面目 亦是三世諸佛 歷代祖師 天下善知識 密密 相傳底法印也 若悟此心 眞所謂不踐階梯 徑登佛地 步步超三界 歸家頓絶疑 便與人天爲師 悲智相資 具足二利 堪受人天供養 日消萬兩黃金 汝若如是 眞大丈夫 一生能事 己畢矣
이렇게 말하더라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중하 근기의 사람들을 위해 다시 설한다. 그대는 가슴으로 들어보라. 다만 ‘잘 귀 기울여 들으면 깨닫겠지’ 하고 깨닫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듣는다면, 그 또한 분별심이기에 방해가 될 뿐이다. 깨닫기를 기다리는 마음 자체가 미혹한 마음이다.
그저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순수한 발심(發心)이 있을 뿐이어야지, 다른 사람들은 못 깨달은 것을 내가 깨닫겠다거나, 내가 깨달아 부처가 되겠다거나 하는 마음으로 깨닫기를 기다리면 그것 자체가 아상(我相)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수행을 한다고 하지만, ‘내가’ 하는 수행이 되기 때문에 어긋난다. ‘나’는 결코 수행을 할 수 없다. 바로 그 수행한다고 하는 내가 사라지는 것이 곧 수행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결코 깨달을 수 없다. ‘내가 열심히 수행해서 그 결과 깨달았다’고 하는 인과적인 결과는 이 공부에서는 없다. 나도 사라지고 깨달음도 사라지는 것, 내가 깨닫는 것이 아니라 법이 법 자신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참된 깨달음이다.
또한 가르침을 가슴으로 직접 체험해 맛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야지, 머리로 헤아려서 정리하고 알려는 마음으로 듣는다면 그 또한 알음알이의 일이기에 이 마음을 확인하기 어렵다. 도는 알고 모르는 데 속하지 않는다. 알고 모르는 것은 곧 분별 의식, 식(識)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