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 점문, 열등한 근기의 정혜(2)

202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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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 공부는 따로 선정을 닦을 것도 없고, 수행을 할 것도 없는 중도임을 설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법의 자리에서 하는 말이다. 법은 본래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습의 습기가 강한 중생들에게는, 본래 선정이며 수행할 것이 없지만, 그렇더라도 선정을 닦고 지혜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생은 업장이 두텁고, 분별하는 습기가 무거우며, 있는 그대로 관하는 힘은 약하고, 마음은 쉬 들뜨거나 가라앉고, 지혜는 적으며 어리석음은 커서, 선악의 경계가 다가올 때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며 마음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이런 중생들은 반연(攀緣)을 따르지 않는 선정을 닦아야 한다. 반연이란 대상 경계나 인연이 다가올 때 거기에 마음이 끌려다니고 움직이며 혼란스럽게 얽히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인연이 계속 얽히는 것이다. 중생들은 쉽게 반연에 얽히기에 반연을 따르지 않기 위해서는 선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의 눈높이에 맞춘 방편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방편문이며, 중생들은 모양, 상(相)을 따라 반연에 끄달리기 때문에 ‘상을 따르는 방편문’이라고 하여 이를 ‘수상문에 속하는 정혜’라 하였다. 이는 차례차례 닦아야 하는 점문(漸門)의 열등한 근기의 행이기는 하지만, 즉 방편의 말이기는 하지만, 중생들에게는 없을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불교의 가르침은 참으로 방편과 본질, 이(理)와 사(事)를 넘나들며 공부인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중도로 이끌고 있다. 돈오돈수적인 근본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돈오점수적인 수행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함께 가야 하는 것으로, 어느 한 쪽만을 강조하게 될 경우 중도를 놓칠 우려가 있다.

이 선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은, 선의 파격과 일체 방편을 깨뜨리는 것을 보고는, 여기에서 통쾌함을 느끼면서, 기도와 수행을 일삼는 이들을 무시하며, 낮은 수준이라고 폄하하기도 하고, 자신을 우월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 또한 한 쪽에 치우친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근기가 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방편을 통해 근기를 높여 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도 근기가 다른 중생들을 다 이끌고 가기 위하여 단계별 설법을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시론(施論), 계론(戒論), 생천론(生天論), 제욕(諸欲)의 과환(過患), 출리(出離)의 공덕, 사성제로 이어지는 차제설법(次第說法)이다. 시론은 보시에 대한 설법이며, 계론은 계율, 생천론은 선인선과 악인악과로 본인이 선업을 지으면 천상의 복을 받는다는 인과의 가르침이다. 그 뒤에 설한 것이 제욕의 과환인데, 이는 모든 감각적 욕망은 우리를 위험으로 이끈다는 것이고, 출리의 공덕은 삼계를 벗어나 열반을 구하는 공덕을 설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의 성숙을 이룬 제자들에게 결국 고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가르침인 사성제를 설하셨다.

부처님께서도 이렇게 근기에 따라 중생들에게 다르게 설법하셨듯이, 지눌스님 또한 방편의 가르침인 수상문의 정혜를 무시할 수 없음을 설한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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