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 네 가지 선(禪),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 - 능가경(楞伽經)
202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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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2025-09-29 23:39
제여래선은 완전한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 일체의 분별이 없이
성스러운 지혜와 법의 즐거움을 누리는 선으로,
이때는 다시금 중생들에게 내려와 중생들을 위한 이타적인 부사의한 자비행을 실천하게 된다.
글 감사합니다❤️
이 세계의 궁극적 원리는 영원한 사랑
사랑받고 사랑하는 그 관계에 있습니다
우주는 사랑으로 창조되었고
하느님의 기쁨이 머무는 곳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깊은 신비 속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있습니다
사랑으로부터 흘러넘치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자식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과 하나됨이라는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관계성이 있습니다
성서가 품은 위대한 생각 중 하나는,
나는 찬양하는 그 대상이 된다 라는 점입니다
예배의 어원이 가치를 부여받는 것은, 인간 스스로
가장 큰 가치를 지닌 그 무엇으로 변모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예배하는 그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찬양하고 흠숭할 때, 가장 궁극적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창조물들은 인간의 의식을 통해 각기 창조된 대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특권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성서를 관통하는 진리이며, 인간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다른 형제자매들과 연합되도록 이끌 때
가장 궁극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 Robert Barron 주교
성스러운 지혜와 법의 즐거움을 누리는 선으로,
이때는 다시금 중생들에게 내려와 중생들을 위한 이타적인 부사의한 자비행을 실천하게 된다.
글 감사합니다❤️
이 세계의 궁극적 원리는 영원한 사랑
사랑받고 사랑하는 그 관계에 있습니다
우주는 사랑으로 창조되었고
하느님의 기쁨이 머무는 곳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깊은 신비 속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있습니다
사랑으로부터 흘러넘치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자식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과 하나됨이라는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관계성이 있습니다
성서가 품은 위대한 생각 중 하나는,
나는 찬양하는 그 대상이 된다 라는 점입니다
예배의 어원이 가치를 부여받는 것은, 인간 스스로
가장 큰 가치를 지닌 그 무엇으로 변모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예배하는 그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찬양하고 흠숭할 때, 가장 궁극적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창조물들은 인간의 의식을 통해 각기 창조된 대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특권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성서를 관통하는 진리이며, 인간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다른 형제자매들과 연합되도록 이끌 때
가장 궁극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 Robert Barron 주교


대혜여, 네 가지의 선이 있다. 첫째는 우부소행선(愚夫所行禪)으로 이는 어리석은 범부들이 닦는 선이다. 둘째는 관찰의선(觀察義禪)으로 이는 이치를 관찰하는 선이다. 셋째는 진여반연선(眞如攀緣禪)으로 진여에 반연하는 선이며, 넷째는 제여래선(諸如來禪)으로 즉 모든 부처님께서 닦는 선이다.
대혜여, 어떤 것이 우부소행선인가? 어리석은 범부가 닦는 선으로 소승법을 닦는 이가 ‘나 없음(無我)’을 알고, 모든 사람들은 뼈마디의 몸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더러운 것으로 본다. 이렇게 관찰하여 집착하지 않고, 모든 번뇌를 없애 삼매에 이르니 이것이 우부소행선이다.
어떤 것이 관찰의선인가? 이치를 관찰하는 선이다. 인무아(人無我)를 아는데서 한발 더 나아가 법무아(法無我)를 관찰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진여반연선인가? 인무아, 법무아가 둘이 있다고 분별하면서 허망하게 생각하니,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무아라거나 무아가 아니라거나 하는 망상이 일어나지 않느니라. 이것이 진여반연선이다.
어떤 것이 제여래선인가?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와 법락에 머무르며, 중생을 위해 부사의(不思議)한 일을 행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이 닦는 선이니라.
✔ 첫 번째 우부소행선은 말 그대로 어리석은 범부가 닦는 선으로 무아법을 관찰함으로써 ‘나’에 집착하지 않고, 아집과 아상이라는 번뇌를 없애는 선이다. 이는 범부선이고 소승선이다. 아공(我空), 인무아(人無我)를 깨달아 ‘나’에 집착하지 않는 선이다.
둘째 관찰의선은 이치를 관찰하는 선으로, 인무아(人無我) 뿐 아니라 법무아(法無我)를 관찰하는 선이다. 아공법공을 관하는 선이다. ‘나’만 공한 것이 아니라 일체 모든 존재인 ‘법’도 공함을 깨닫는 것이다. 나도 세상도 모두 공함을 요달하는 것이다.
세 번째 진여반연선은 인무아와 법무아,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둘이라고 나누어 생각하는 분별조차 사라지는 선이다. 나와 세상이 따로 있거나, 나 없음과 일체법의 없음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자각이다.
네 번째 제여래선은 완전한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 일체의 분별이 없이 성스러운 지혜와 법의 즐거움을 누리는 선으로, 이때는 다시금 중생들에게 내려와 중생들을 위한 이타적인 부사의한 자비행을 실천하게 된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