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 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의 생활 실천, 내맡김

20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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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은 오온이 개공임을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생겨납니다. 오온은 곧 ‘나다’하는 허망한 착각을 말합니다. 결국 오온이 나라는 생각, 즉 아상에서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조금 더 아상(我相), 아집(我執)에 대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나다’라는 상이 없다면 우리는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괴로움의 주체는 바로 ‘나’이기 때문이지요. 그 괴로움의 주체가 사라진다면 어디에 괴로움이 붙을 자리가 있겠습니까? 내 것이라는 상 때문에 내 것을 빼앗겼을 때 괴롭고,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니 괴롭고, ‘내가 옳다’라는 상 때문에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나’라는 상이 없다면 주위의 어떤 경계에 대해서도 여여(如如)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남이 욕을 하더라도 아상이 없다면 그 욕을 듣고 괴로워할 ‘나’가 없겠지요.

생로병사의 네 가지 괴로움 또한 이러한 아상, 오음성고의 괴로움이 근본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것이고,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상이 없다면, 일체가 ‘나’아님이 없기에 일체 대상에 대한 집착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한 대상에 대한 집착심으로의 사랑이나 증오의 감정이 있을 리 없으며, 그렇다면 애별리고나 원증회고가 있을 리 없는 것입니다. ‘나’라는 상이 없으니, 즉 일체가 나 아님이 없으며 대상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으니, 돈, 재물, 명예, 지위, 나아가 깨달음에 대한 집착심을 여의게 되고, 그러기에 구부득고의 괴로움도 있을 리 만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에서 말한 인생팔고는, 덮어놓고 무조건 ‘인생은 괴로움’이라고 결론짓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상이 있는 우리네 중생들에게 있어 인생은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공부 하는 수행자들에게 있어, 일체 분별심과 산란한 마음, 그리고 일체의 경계를, 본래면목인 본바탕에 일임하여 맡기고 방하착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인생은 고가 아닙니다. 일체의 경계는 인과 연이 화합하여 잠시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는 경계일 뿐이지만, 우리들은 그것이 실재하는 줄로 착각을 하므로, 그 경계에 집착하여 경계 따라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며 온갖 망상을 일으키는 것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괴로움은 여러 가지 실체가 없는 원인과 조건들이 모여 일어나는 것, 즉 연기하는 것입니다. 연기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그 경계들이 연기로써 본래 공한 것임을 올바로 알고, 경계가 공하므로 나도 공한 것임을 올바로 알아, 모든 경계를 ‘나온 자리’, ‘본래자리’에 내맡기고 생활한다면,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내맡기는 삶이란 ‘나’를 내세우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아상, 에고, 오온이 삶의 중심이 되면 어떻게든 내가 잘 살아보겠노라고 애쓰며 힘겹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일체 모든 것을 우주법계에 내맡기고, 본래자리에 내맡기고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사는 삶이 아니라 우주법계가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라는 것은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고 공한 오온에 불과합니다. 사실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우주법계 전체가 둘이 아니게 한바탕으로 삶을 운행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선에서는 대기대용(大機大用)이라고 합니다. 큰 하나의 엔진 같은 우주의 기관이 이 우주의 전 생명을 한바탕으로 돌리며 쓰고 있다는 것이지요. 즉 내가 한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내가 하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법계라는 한바탕의 한마음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그 하나의 우주에, 본래면목이라는 한바탕의 주인공 근본자리에 일체 모든 것을 내맡기며 살아갈 수 있을 뿐입니다.

내맡기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야말로 오온개공을 실천하고, 아상타파를 실천하며, 본래자리라는 참된 실상반야의 자리와 계합할 수 있는 쉬운 생활 속의 실천 수행입니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을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지요.

내맡기게 되면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내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 됩니다. 그것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미 내맡겼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내맡기고 나면 그 다음일은 내가 상관 할 바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 우주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일은 우주법계가, 법신부처님께서 알아서 처리할 일이지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맡기는 수행자는 괴로워도 괴롭지 않습니다. 괴로운 일들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괴로운 일이 일어나더라도 괴롭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되 함이 없는’ 무위의 실천입니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아무런 괴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지만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더 이상 ‘내 일’로 붙잡을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내 일이 아니라 우주의 일이라면 모든 무게감이나 심각성은 사라지고 맙니다. 우주의 일이라면 저 큰 하늘의 별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크게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인연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에 그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나고, 큰 괴로움이 온다고 할지라도 크게 괴로울 것이 없어집니다. 그 모든 것은 내 일이 아니라 우주의 일이며, 우주가 성주괴공 하듯이, 그저 우리 인생도 생노병사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죽음도 더 이상 죽음이 아닙니다. 생사를 뛰어넘는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죽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죽고 살 ‘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저 우주의 일이기 때문이고, 생사를 전부 우주에 내맡겼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면서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우주법계가 다 알아서 해 줄텐데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뒤에 나오는 『반야심경』의 무유공포(無有恐怖)입니다.

물론 이런 말은 직접 본래자리에 계합을 하고, 본성을 확인하고 나야 실질적으로 이러한 진리와 하나되는 것이지, 이렇게 말로만 설명한다고 해서 그것이 직접 내 삶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맡김의 실천과 공의 실천을 꾸준히 해 나가시다 보면 바른 지견이 서게 되고, 그러한 꾸준한 정진과 발심이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억지로 내맡기려 하지 않아도 완전히 내맡겨지는, 완전히 아상이 타파되고, 오온개공이 깨달아지는 하나됨의 체험, 불이법의 체험이 있습니다.

아직 그 체험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마음공부를 하면서, 바른 지견을 세우며 공부 해 가야 하겠지요. 바로 그 실질적인 실천 수행이 바로 내맡김의 수행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을 실천할 수 있는 쉬운 실천법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고성제, 즉 괴로움이 ‘성스러운 진리’임이 드러납니다. 괴로움을 피해 달아나거나, 괴로운 일들과 싸워 이기려고 애쓰던 ‘나’ 중심의 삶에서 완전히 내맡기는 삶을 살게 되면 더 이상 괴로움을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괴로움을 주는 대상과 싸우려고 하지도 않게 됩니다. 괴로움의 현실이 곧 성스러운 진리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괴로운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완전히 내맡긴다는 것은 완전히 수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될 때 이제부터는 괴로움이 내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라, 그 괴로움을 통해 깨닫게 되는 깨달음의 순간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이 고해바다의 목적입니다. 괴로움을 통해 저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지요. 그래서 괴로움은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이러한 통찰을 통해 우리는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일체고액인 것이지요.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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