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마음공부 2] 육바라밀2 - 지계바라밀 수행

202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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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반야심경의 개관

Ⅱ. 경의 제목

Ⅲ. 경의 실천적 해설


1장. 반야심경의 구성방식

2장. 관자재(觀自在)

3장. 보살(菩薩)

4장.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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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육바라밀(六波羅蜜)

(2)지계바라밀 수행


지계(持戒)는 계율을 지키는 수행을 말합니다. 

계율을 지킨다는 것은, 

곧 말과 뜻과 행동을 절제할 줄 아는 것입니다. 

지계는 우리가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데 

울타리와도 같은 역할을 하기에 

‘아름다운 구속’, ‘성스러운 구속’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치 수풀이 우거진 밀림에서 

온갖 거친 짐승들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듯이, 

우리가 정진을 해 나아감에 있어서 계는, 

주위의 온갖 거친 경계, 온갖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잘 보호해 주는 것입니

다.


오늘날의 세상은 

오탁악세(五濁惡歲)의 말법(末法) 시대라는 경전의 말씀처럼, 

물질이고, 정신이고 모두가 오염되어 혼탁하기 그지없습니다. 

사회는 산업화・도시화로 너무나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인간의 마음 또한 오염되어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시기・질투하며,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탓에 

얼마나 많은 죄업을 짓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혼탁한 세계에서 

우리를 잘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가 있다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겠

습니까? 

그것이 바로 계(戒)인 것입니다. 

요즘같이 오염된 시대일수록 지계는 

더욱 소중한 바라밀 수행의 덕목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리 험한 밀림이라도 울타리를 잘 쳐 놓으면

거친 짐승이나 온갖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듯,

계를 잘 받아 지니고 실천하는 수행자에게는

온갖 안팎의 경계들 속에서 몸과 마음을 잘 제어할 힘이 생겨납니다.


우리네 어리석고 탁한 중생들에게는

아무리 수행하고자 해도 온갖 경계와 역경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며,

곳곳에 우리의 수행을 방해하는 일들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그만큼 더 수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계바라밀을 실천하는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몸과 말과 뜻을 잘 다스려 모든 행이 맑고 청빈하기에

그만큼 안팎의 온갖 역경이며 수행에 방해되는 일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계바라밀은 모든 수행자들에게

수행에서의 마장을 제어해주는 밝은 실천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또한 계를 지니는 수행자는 

호법선신(護法善神)들이 그를 옹호한다고 합니다.

보통 절에 가면 화엄성중전을 보고 반야심경을 봉독합니다.

그러한 화엄성중들이 바로 호법선신인 것입니다.

그 신중님들은 계를 받아 지니고 정과 혜를 닦는 수행자들을 옹호하며 

수행의 길에 생길 수 있는 온갖 장애들을 막아줍니다.


이와 같이 지계바라밀은

모든 수행자들을 오직 정진에 몰두할 수 있도록

온갖 유혹을 제어해 주고 정과 혜를 증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계를 지키지 않고 정(定)에 들거나, 

밝은 지혜(慧)가 생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삼학(三學)에서 계(戒)를 먼저 언급한 연후에 

정(定)과 혜(慧)를 얻을 수 있다고 한 바도 그러한 연유인 것입니다.


계는 다만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지 규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실천의 가르침입니

다. 

또한 나만 혼자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함께 지킬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하는 

이타정신이 깃들어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대승계이다. 

소승계는 ‘하지 말라’는 금지규정의 성격이 강하며, 

‘스스로 잘 지키라’는 수행자 자신을 위한 수행방법입니다. 

그렇기에 계 자체에 철저함을 강조합니다. 


같은 오계(五戒)일지라도 소승의 계는 

절대 어겨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계행을 강조한 반면, 

대승계는 형식과 문자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 올바로 실천하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

다.


이를테면, 소승에서는 불망어(不妄語)라고 하면, 

절대로 망어나 거짓말 등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만, 

대승계는 상황에 따라 선(善)을 위하고 중생(衆生)을 위한다는 

이타적인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경우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범개차(持犯開遮)의 정신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지범개차가 아니라 파계(破戒)가 되는 것입니다. 

지범개차의 기준은, 

바로 일체 중생을 위한 이타적인 동체대비의 마음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바른 수행자는 계를 잘 지킬 줄 알아야 하며,

동시에 잘 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출가, 재가의 구분 없이 지켜야 할 

윤리적이고도 실천적인 계가 있으니, 바로 십선계(十善戒)입니다. 

이것은 신, 구, 의로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일체의 악업을 짓지 않도록 하며, 

적극적으로 몸과 입과 생각을 청정히 하여 복덕을 지을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짓는 업에는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말로 짓는 네 가지,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가 있습니

다. 

이것은 본래 근본불교에서 말하는 십업설(十業說)로 잘 알려진 교설인데, 

십선업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것은 

몸과 입과 생각을 삿되게 물들지 않게 하여 

수행자를 잘 단속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이 십업을 자세히 나누어 보면 

신업에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의 세 가지가 

그리고 구업에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의 네 가

지, 

의업에는 탐(貪), 진(瞋), 치(癡)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 중 중요한 것은 물론 의업입니다. 

일반적으로 업이라고 하면 신업과 구업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입 한 번 열지 않고,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우리는 엄청난 악업을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수많은 폭행을 일삼고, 

살인도 하며, 간음도 하고, 남의 것을 훔치기도 하며, 

겉으로는 아닐지라도 속으로 온갖 욕설을 일삼으며,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 하나 하나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사실은 엄청난 영향을 가지고 나의 미래의 과보를 창조하고 

더 나아가서는 전 우주 법계를 진동시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구의 삼업이라 하지만, 

그 모두가 우리의 의업, 생각 속에서 비롯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업과 십선계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① 살생(殺生) - 산 목숨을 죽이는 것.

살생을 하면 내세에 인간으로 태어나도 수명이 단축된다고 합니다.

소극적으로는 불살생 해야 하며, 

적극적으로는 생명을 살려주는 방생(放生)을 하면서 

자비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살생계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업을 무조건 악업, 선업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업을 지었는가에 따라 

살생, 도둑질, 거짓말 등도 바르게 쓰일 수가 있습니다. 


로스탕의 자전적 명상록에 보면 

“한 사람을 죽이면 그는 살인자이다. 수백만 명을 죽이면 그는 정복자이

다. 

모든 사람을 죽이면 그는 신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보살은 그저 내버려두면 모든 중생을 죽일 것 같은 살인자를 

일체 중생을 구하려는 마음에서 죽여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보살 자신은 그 무서운 과보를 분명히 받게 되겠지만, 

중생을 위한 보살의 자비심이 앞서므로 마땅히 그러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② 투도(偸盜) - 다른 사람이 주지 않은 물건을 취하는 것. 

도둑질을 하면, 

내세에 인간으로 태어나도 재물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소극적으로는 불투도 할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부지런히 힘쓰고 노력하는 근면(勤勉)한 생활을 해야 할 것입

니다. 

또한 보시바라밀의 실천에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실천하는 이는 무한한 복덕을 짓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불투도계입니다. 


③ 사음(邪婬) - 청정치 못한 남녀관계를 갖는 것. 

음행을 저지르면, 내세에는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자기 아내, 남편이 남의 유혹을 받아 삿된 음행을 하게 됩니다.

소극적으로는 불사음하며 

적극적으로는 올바른 이성관계를 가지고 

정음(正婬)하는 청정한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청정한 생활이라 하면 물론 이처럼 올바른 이성관계를 하는 것도 되지만, 

출재가 수행자가 해야 할 청정행이라면 

부처님 법으로 법계를 장엄하며 올바른 신행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사음계인 것입니다.


④ 망어(妄語) - 거짓말하는 것. 

거짓말을 하면 남의 놀림을 받는 과보를 받는다고 합니다. 

소극적으로는 불망어하며, 

적극적으로는 바른 말, 정어(正語)를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 경전과 조사 어록 등을 배우고 선설(宣說)하면서 

항상 진실한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불망어계입니다. 


⑤ 양설(兩舌) - 이간질하는 것

이간질하는 말을 하면 절친한 친구에게 

배반을 당하는 과보를 받는다고 합니다. 

소극적으로는 불양설 하고, 

적극적으로는 허망하지 않은 진실된 말인 진어(眞語)를 해야 합니다. 

또한 서로를 화합시켜 

‘모두가 하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주위를 장엄해야 합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불양설계입니다.


⑥ 악구(惡口) - 거친 말 하는 것.

거친 욕설을 많이 하면 

다음 생에 추한 음성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소극적으로는 불악구하고 

적극적으로는 사랑스러운 말 애어(愛語)를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선한 행위에 대하여 따뜻한 마음으로 칭찬하고, 

악을 행하는 이에게는 

올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충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불악구계입니다.


⑦ 기어(綺語) - 꾸미는 말 하는 것.

꾸미는 말을 많이 하면 신용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소극적으로는 불기어 해야 하고, 

적극적으로는 실다운 말 실어(實語)를 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정직하고 진실하게 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불기어계입니다.


⑧ 탐(貪) - 탐욕스러운 마음을 내는 것.

탐욕이 많으면 욕심 내는 마음이 점점 더 치성하여 탐심이 늘어갑니다. 

이러한 사람은 다음 생에 아귀지옥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소극적으로는 불탐, 탐내지 말며 

적극적으로는 널리 무주상보시를 베풀어야 합니다. 

‘내 것이다’라는 아상을 놓아버리고, 

모든 것은 잠시 나에게로 온 것일 뿐이며,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덟 번째 계인 불탐욕계입니다. 


⑨ 진(瞋) - 성내는 것.

성냄이 많으면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는 난폭자가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다음 생에 아수라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소극적으로는 성내지 말며, 

적극적으로는 다른 이를 대할 때 항상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홉 번째인 불진애계입니다.


⑩ 치(癡) - 어리석은 것

어리석음이 많으면 다음 생에 축생이 되거나, 

사람으로 나더라도 어리석은 바보가 된다고 합니다. 

소극적으로는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야 하며 

적극적으로는 슬기로움을 행하는 지혜를 닦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열 번째인 불우치계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 없는 악한 행동, 악한 말을 하고, 

악한 마음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모르고서 행하는 악행이 있는가 하면 

알고서도 하는 악행이 있습니다. 

왠지 남에게 잘해 주고 보시하면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바보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베풀기만 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면, 오히려 바보 취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사실로 그럴까요? 

우리는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독실한 불교신자들도 인과의 도리를 망각한 채 

머리 굴려 내 이익을 챙기고, 

베풀며 정직하게 살면 오히려 멍청이라는 

사회의 잘못된 인식에 이끌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는 절대로 잘못된 사고방식이니 

인과를 믿는 불자들은 항상 십선계(十善戒)를 널리 닦아 행할 일입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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