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바라밀다(波羅蜜多) - 바라밀다라는 방편

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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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바라밀다라는 방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죠. ‘예토’라고 하면, 흔히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말하는데 모든 것이 혼탁하고 오염되어 있는 탁한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는 육신[身]으로 살생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청정하지 못한 음행을 하는 등의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입[口]으로는 온갖 거짓말과 이간질을 일삼고, 삿된 분별심에 빠져 진실치 못하여 꾸미는 말을 하며, 거친 욕설 등을 일삼고 살아갑니다. 또 생각[意]으로는 탐욕에 빠져 오욕락을 즐기기 위하여 과다한 욕심을 부리고, 조그만 일에도 불끈 화를 내며, 어리석은 삿된 사량심으로 온갖 악한 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짓고, 탐진치(貪瞋痴) 삼독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오염된 이 땅을 ‘사바세계’ 즉 예토라 하며, 『반야심경』에서는 ‘이 언덕[차안(此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 언덕[피안(彼岸)], 즉 정토(淨土)란 어떤 세계를 말하는 것일까요? 정토란 우리의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청정하여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열반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부처님의 세계, 열반 해탈의 경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는 부처님께 우리의 힘들고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여 잘 되게 해 달라고 빌기 위함이 아닙니다. 중생세간인 이 언덕에서 더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저 쪽 열반의 언덕으로 건너가기 위함입니다. 보통 이 언덕인 우리가 사는 세상을 꿈에 비유하기도 하는데요, 이 언덕은 꿈속의 삶이고 저 언덕은 꿈에서 깨어난 삶입니다. 즉 이 불법공부는 꿈속에서 더 좋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 자체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바라밀다! 즉 이 사바 예토에서 저 언덕 즉 부처님의 땅으로 가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저 언덕으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 것일까요? 바로 마하반야의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큰 지혜의 배를 타야만 건너갈 수 있습니다. 그 배를 불가에서는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상징화하고 있습니다. 사십구재를 지낼 때, 오색기가 달린 작은 배를 들고 봉송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배가 바로 반야용선, 즉 큰 지혜로 부처님의 세계에 영가를 데려다 줄 수 있는 배인 것입니다. 이 반야용선의 뱃머리에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타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야 할 부처님의 세계까지 길을 인도해 주시므로, ‘길을 인도하는 왕’이라는 의미의 ‘인로왕’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반야용선은 수많은 무명 중생을 모두 태워 부처님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대승(大乘), 즉 ‘큰 탈것’이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소승[작은 탈것]의 배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탈수 없고, 오직 나 홀로 타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에는 열 가지의 종류가 있으니 이를 십법계(十法界)라 합니다. 십법계는 우리들이 사는 인간계를 포함해 우리가 윤회하는 세계인 차안예토[차안-생사윤회의 경지]인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여섯 세계[6]와, 피안정토[피안-해탈열반의 경지]의 세계인 부처님의 세계가 있으며, 차안인 이 언덕에서 피안인 저 언덕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하고, 반야용선을 타고 가는 수행 과정에 있는 세계, 즉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세계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문, 연각, 보살에 승(乘)을 붙인 이유는 반야용선을 타고[乘] 간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성문이나 연각승은 소승의 수행이며, 보살승은 일체 중생을 함께 배에 태워 부처님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대승의 수행자상인 것입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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