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오온(五蘊) - 행온(行蘊)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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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2025-12-31 23:42
‘유위를 조작’하는 것이 바로 행온입니다.
의도를 일으켜 업을 짓고 삶을 형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온은 업을 짓는 형성력이라고도 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구원은 단지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너의 자아를 상징 속에서 구하지 말라
너의 정체를 나타낼 수 있는 개념은 결코 없으며
지각의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
네가 지금 가진 자아개념은 하느님 아들로서의 너의 기능을 영원히 성취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그것은 너를 깊은 우울과 허무감에 빠트린다
네가 보는 모든 것은 이미지들이다
너의 시야를 흐리고 비전을 왜곡하는 장벽을 통해 그 이미지들을 본다
네가 보는 모든 것에 빛이 차단되었다
잘해봤자 그 너머의 그림자를 얼핏 볼 뿐이다
최악의 경우, 어둠만을 바라보고는 두려움에서 태어난 죄의 생각이 일으키는 겁에 질린 상상물을 지각한다
네가 보는 것은 정녕 지옥이다
두려움은 곧 지옥이기 때문이다
개념을 고칠 필요는 없다
대신에 그 개념을 성령께 드려라
이 모든 변화를 위해 단지 너의 용의만이 필요하다
그 이상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봉인이 해제되어 열린 마음으로
속박에서 풀려난 진리가 거침없이 돌아온다
자아개념을 내려놓은 곳에 진리가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모든 개념에 의문과 질문을 제기하라
그리하여 그것들이 빛을 견뎌낼 근거가 없음을 인식할 때
진리는 죄의식이 없는 자신의 깨끗한 성소에 자유로이 들어올 수 있게 된다
-A course in Miracles
의도를 일으켜 업을 짓고 삶을 형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온은 업을 짓는 형성력이라고도 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구원은 단지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너의 자아를 상징 속에서 구하지 말라
너의 정체를 나타낼 수 있는 개념은 결코 없으며
지각의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
네가 지금 가진 자아개념은 하느님 아들로서의 너의 기능을 영원히 성취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그것은 너를 깊은 우울과 허무감에 빠트린다
네가 보는 모든 것은 이미지들이다
너의 시야를 흐리고 비전을 왜곡하는 장벽을 통해 그 이미지들을 본다
네가 보는 모든 것에 빛이 차단되었다
잘해봤자 그 너머의 그림자를 얼핏 볼 뿐이다
최악의 경우, 어둠만을 바라보고는 두려움에서 태어난 죄의 생각이 일으키는 겁에 질린 상상물을 지각한다
네가 보는 것은 정녕 지옥이다
두려움은 곧 지옥이기 때문이다
개념을 고칠 필요는 없다
대신에 그 개념을 성령께 드려라
이 모든 변화를 위해 단지 너의 용의만이 필요하다
그 이상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봉인이 해제되어 열린 마음으로
속박에서 풀려난 진리가 거침없이 돌아온다
자아개념을 내려놓은 곳에 진리가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모든 개념에 의문과 질문을 제기하라
그리하여 그것들이 빛을 견뎌낼 근거가 없음을 인식할 때
진리는 죄의식이 없는 자신의 깨끗한 성소에 자유로이 들어올 수 있게 된다
-A course in Miracles
행복2025-12-31 15:26
색수상행식
오온이 공하며
행온무아이기 때문에
업보는 있으돼 작자와 수자는 없다
도둑질한 죄는 있으돼 영원한 도둑놈은 없다
성경 어느구절에 죄없는자 저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했던 장면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몸뚱아리로 생겨나 죄업을 짓지 않은 이가
있을까요? 자비의 법문 감사합니다 🙇♀️
오온이 공하며
행온무아이기 때문에
업보는 있으돼 작자와 수자는 없다
도둑질한 죄는 있으돼 영원한 도둑놈은 없다
성경 어느구절에 죄없는자 저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했던 장면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몸뚱아리로 생겨나 죄업을 짓지 않은 이가
있을까요? 자비의 법문 감사합니다 🙇♀️

행온은 ‘형성하는 힘’으로 의지 작용, 형성 작용을 말합니다. 무언가를 행하려는 의지나 의도, 의향, 욕구, 바람 등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의지 작용, 행위로 인해 업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업과 행(行)이라는 용어는 같은 의미로도 종종 쓰입니다. 쉽게 말하면 ‘의도적인 행위’로써 유위행(有爲行)을 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마음입니다. 의도적으로 행하게 되면 그에 따른 업보를 받게 되고, 그렇기에 바로 이 행온이 업을 짓는 형성력이 되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로 본다면 행은 수, 상, 식을 제외한 모든 정신 작용을 총괄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기억, 상상, 추리 등의 정신 작용을 말합니다. 이를 청정도론에서는 ‘50가지 심리현상’을 설명하고 있고, 구사론에서는 ‘46가지의 심리현상’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주의, 집중, 의욕, 성냄, 믿음, 양심, 수치심 등이 포함되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이처럼 행온은 넓은 의미로는 ‘의지, 의도를 필두로 하는 수많은 심리현상들’을 의미하는 복수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 중에도 특히 의지, 의도가 가장 주요한 작용이다 보니 여기에서는 ‘의도적인 행위를 일으키는 마음’, ‘의도하는 마음’을 행온이라고 단순화시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눈귀코혀몸뜻이라는 육근이 빛과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이라는 색성향미촉법인 육경을 만나면 수온과 상온과 행온이 나타납니다. 쉽게 말해 눈으로 대상을 볼 때 좋거나 나쁜 느낌인 수온이 일어나고, 상온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개념화하여 이름 짓고, 행온에서는 좋은 것은 더 가지고 싶어 하고, 싫은 것은 멀리하고 싶어 하는 의지를 발동시키는 것입니다.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보고는 수온은 좋은 느낌을 일으킬 것이고, 상온은 그 음식들이 밥과 김치찌개, 국과 반찬, 사과와 샐러드라는 등으로 이름을 지어 지각하고, 행온은 그 음식들을 먹고자 하는 의도를 일으켜서 먹는 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그럼으로써 먹는다는 행위 즉 업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온은 업을 짓는 형성력이라고도 합니다.
이를 교리적으로 보면 ‘유위를 조작’하는 것이 바로 행온입니다. 유위란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을 의미하며, 유위법이라고 하면 ‘일체 모든 존재’, ‘일체 만들어진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유위를 조작한다는 것은 의도를 일으켜 업을 짓고 삶을 형성시켜 나갑니다. 그래서 행온을 의지작용, 그리고 형성작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행온 또한 수온, 상온과 마찬가지로 고정된 실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내 안에 ‘의도하는 나’, ‘유위를 조작하는 나’가 있다고 여깁니다.
『상윳다니까야』에서는 ‘행온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조사해 보면 그것은 텅 비고 허망한 것으로 드러나며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행온에 무슨 실체가 있는가’라고 함으로써 행온 또한 비실체적인 것이며, 무아이고, 공한 것임을 설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의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의도와 바람을 변화시켜 나갑니다. 어릴 적에는 대통령, 장관, 과학자가 꿈이던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끊임없이 되고 싶은 미래의 꿈이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아는 한 스님은 어릴 때부터 사업가가 되고, 부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출가한 뒤에는 오히려 청빈하고 가난한 삶을 사는 법정스님을 동경하는 소박한 수행자로 바뀌었습니다. 행온이란 이처럼 끊임없이 바뀌어 가는 것일 뿐, 실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특정한 사람이 언제까지고 특정한 의도와 바람만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내 안에 특정한 의도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도와 바람은 끊임없이 변화해 갈 뿐입니다.
예전에는 절대 하지 않겠노라고 했던 것들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 일들은 우리에게도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행온이란 내 안에 고정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연 따라 계속해서 변화해 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행온무아, 행온개공이라는 사실을 바르게 조견하는 사람이라면 특정한 의지나 욕구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행온을 실체화함으로써 괴로워하는 일들이 우리 삶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생각, 자기 고집, 자기의 의지와 바람에 집착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거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행온무아를 깨닫게 된다면, 그 또한 잠시 왔다가 가는 것일 뿐임을 알기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괴로움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행온개공이므로 도일체고액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 『잡아함경』에서는 ‘업보(業報)는 있으나 작자(作者)는 없다’라고 하여 행위와 그에 따른 과보는 있지만 그 업을 짓는 실체적인 자아는 없음을 설하고 있습니다. 업을 짓고 업의 과보를 받지만 그 업을 짓고 받는 실체적인 ‘나’는 없다는 것입니다. 행온무아라는 것이지요.
도둑질이라는 행온의 행위를 하게 되면 도둑놈 소리를 들으면서 도둑질 한 것에 대한 과보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듯 도둑질의 행위와 도둑질에 대한 과보는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절대적인 실체로써 ‘도둑놈’인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도둑질을 했기 때문에 인연 따라 그 순간 도둑놈이 되는 것일 뿐, 영원히 도둑놈인 것은 아닙니다. 만약 도둑놈이라는 실체가 영원하다면 옛날에 도둑질을 한 번이라도 했던 사람은 영원히 도둑놈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릴 적 한 번의 도둑질한 실수를 참회하고 새롭게 태어나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 사람을 그 때까지 도둑질로 몰아붙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칭송을 할 수도 있겠지요. 이처럼 업과 그 업에 따른 과보는 있지만, 업을 짓는 자라는 실체적 자아는 없습니다. 행온무아인 것이지요.
이처럼 행온무아이기 때문에, 업보는 있지만 작자는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업보는 인정하되 그 사람을 죄인이라고 낙인찍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온무아를 조견함으로써 실천되어지는 지혜로운 행입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