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오온(五蘊) - 식온(識蘊)

2026-01-01
조회수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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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온은 일반적으로 분별, 식별, 인식을 말하는데 쉽게 말하면 대상을 안다고 할 때 그 아는 마음을 말합니다. 보통 우리가 ‘마음’이라고 하면 주로 식온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파불교에서는 이 식온을 마음의 왕이 되는 작용이라고 해서 ‘심왕(心王)’이라고 했고, 나머지 부수적인 마음작용을 ‘심소(心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대상을 의식하고 알 때는 ‘있는 그대로’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식대로 분별해서 알게 되기 때문에 이를 식온 혹은 분별심이라고 합니다. 식온은 앞에서 설명한 수온과 상온, 행온의 도움을 받아 분별해서 아는 작용입니다. 수온을 통해 ‘느껴서 알고’, 상온을 통해 ‘개념화해서 알며’, 행온을 통해 ‘의지를 일으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상을 느끼고 생각하고 의도하는 것을 통해 그 대상을 다른 것들과 비교 분별하여 아는 작용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 호감형으로 첫 인상이 좋습니다. 수온이 곧장 좋은 느낌으로 받아들이겠지요. 그런데 일을 시켜 보았더니 똑똑하고 일도 잘 합니다. 상온은 곧장 일 잘 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개념화 시킵니다. 아주 마음에 들다보니 욕심이 나서 이 사원을 꼭 우리 부서로 데리고 와야겠다는 의도를 일으킵니다. 이것이 행온입니다. 유위를 조작한 것이지요. 이렇게 수상행온이 좋은 느낌과 좋은 생각, 의도를 만들어내면 식온은 그 사람을 분별해서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 보다 호감형이고, 다른 신입사원들보다 능력도 있다고 분별해서 아는 것이지요.

십이연기에서 보면 ‘무명-행-식-명색...’의 순서를 볼 수 있는데, 즉 식의 대상은 명색(名色)입니다. 쉽게 말해 식은 대상을 명과 색으로 인식하지요. 명이란 이름이고 색이란 모양입니다. 그 신입사원의 이름(명)을 마음은 각인해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의 모습(색)을 아울러 그 이름과 연결 지어 생각해서 아는 것입니다.

이처럼 식온은 수온, 상온, 행온의 작용을 통해 종합적으로 대상을 분별하여 아는 마음입니다.

당연히 ‘분별해서 아는 마음’인 식온도 고정되게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연 따라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 신입사원이 마음에 들어 우리 부서원으로 뽑았는데, 계속 함께 생활해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능력도 없고, 성격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점점 더 그 사원에 대해 나쁜 느낌과 좋지 않은 생각, 밀쳐내려는 의도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고, 식온은 결국 그를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식온 또한 계속해서 인연 따라 변화하는 것일 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식온은 끊임없이 변화하기도 하고, 새로운 분별심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느끼고 알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대상을 분별하는 마음도 점점 더 확대되고, 증장하게 되겠지요. 이를 식의 증장(增長)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분별심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자라고 성장하며 변화 발전합니다.

 

이처럼 식온 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우리 안에 ‘의식하는 나’, ‘대상을 아는 나’가 고정되게 존재한다고 여깁니다. 우리 안에 대상을 아는 ‘내 마음’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살펴 본 바와 같이 식온은 허망한 분별심일 뿐, 실체적인 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많은 스님들의 법문이나 책에서 가장 많이 들어 본 말이 아마도 ‘분별심을 버려라’, ‘분별망상을 일으키지 말라’, ‘알음알이를 놓아버려라’라는 말일 것입니다. 이 말이 바로 식온이 무아이며 공하기에 실체가 없으니, 식온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말을 의미합니다.

사실 불교의 마음공부란 바로 이 분별심, 분별망상이라는 식온이 공함을 깨닫는 공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번뇌와 괴로움, 고통과 문제의 주범이 바로 분별망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삶은 언제나 완전합니다. 우리는 모두 깨달아 있는 존재들입니다. 다만 우리의 분별망상이라는 허망한 마음 즉 식온이 그 완전한 삶을 하나 하나 걸고 넘어져서 좋으니 나쁘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판단 분별 평가하기 때문에 이 완전한 세상이 나에게 좋고 나쁘게 인식될 뿐입니다.

이를 유식(唯識)에서는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고 하는데요, 일체 만법은 오로지 내게 인식된 세계일뿐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 세계 자체는 아무 문제도 없지만, 내가 그 세계를 대상으로 좋고 나쁜 것으로 둘로 나누어 놓고 좋은 것은 집착하고 싫은 것을 버리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났을 뿐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이라고 했듯이, 오온의 왕 격인 심왕인 식온이 공함을 조견해 보면 일체의 고통과 액난에서 벗어난다고 했던 것입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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