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래께서 라훌라를 시켜 종을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지금 종소리가 들리느냐?”
“들립니다”
잠시 후 소리가 없어지자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지금은 소리가 나느냐 안 나느냐?”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
소리가 있고 없음을 아는 것은 그 대상인 소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저 ‘듣는 성품’이야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냐.”
듣는 놈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소리로 인하여 그 이름이 있게 되었네. 듣는 놈을 돌이켜 소리에서 벗어나면 해탈한 놈을 무엇이라 이름하겠는가. 하나의 근이 본원으로 돌아가면 여섯 개의 근이 해탈을 이루게 되리라...
그 들음을 버리고 듣는 놈을 돌리게 된 다음이라야 지극히 요긴함이 된다. 무릇 들음을 버리고 듣는 놈을 돌리게 되면 부처님의 광명과 보리수와 무설시(無說示)와 중향처(衆香處)에 다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종소리가 날 때 종소리를 듣는 것처럼, 사실은 종소리가 나지 않을 때 아무 것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침묵을 듣고 있다. 소리 없음을 듣고 있다. 온갖 소리가 나더라도 그 소리를 따라가면 다 분별되어 다르게 들리겠지만, 그 소리를 듣는 성품을 돌이켜 회광반조(回光返照)해 보면 그것은 전혀 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변하는 것이 아니다.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 즉 소위 관음법문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들음을 버리고 듣는 놈을 돌리게 된다는 것은 듣는 그 소리의 뜻을 따라가 분별하던 습관을 버리고 듣는 놈이 누구인지를 돌이켜 회광반조하여 비추게 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듣는 놈을 돌리는 반문문성(反聞聞性)의 수행이다.
백장스님 문하에서 한 스님이 종소리를 듣고 깨달았는데 백장선사는 곧 “뛰어나구나. 이것이 곧 관세음보살님께서 도에 이르는 방법이다.”라고 하셨다.
글쓴이:법상
여래께서 라훌라를 시켜 종을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지금 종소리가 들리느냐?”
“들립니다”
잠시 후 소리가 없어지자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지금은 소리가 나느냐 안 나느냐?”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
소리가 있고 없음을 아는 것은 그 대상인 소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저 ‘듣는 성품’이야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냐.”
듣는 놈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소리로 인하여 그 이름이 있게 되었네. 듣는 놈을 돌이켜 소리에서 벗어나면 해탈한 놈을 무엇이라 이름하겠는가. 하나의 근이 본원으로 돌아가면 여섯 개의 근이 해탈을 이루게 되리라...
그 들음을 버리고 듣는 놈을 돌리게 된 다음이라야 지극히 요긴함이 된다. 무릇 들음을 버리고 듣는 놈을 돌리게 되면 부처님의 광명과 보리수와 무설시(無說示)와 중향처(衆香處)에 다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종소리가 날 때 종소리를 듣는 것처럼, 사실은 종소리가 나지 않을 때 아무 것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침묵을 듣고 있다. 소리 없음을 듣고 있다. 온갖 소리가 나더라도 그 소리를 따라가면 다 분별되어 다르게 들리겠지만, 그 소리를 듣는 성품을 돌이켜 회광반조(回光返照)해 보면 그것은 전혀 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변하는 것이 아니다.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 즉 소위 관음법문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들음을 버리고 듣는 놈을 돌리게 된다는 것은 듣는 그 소리의 뜻을 따라가 분별하던 습관을 버리고 듣는 놈이 누구인지를 돌이켜 회광반조하여 비추게 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듣는 놈을 돌리는 반문문성(反聞聞性)의 수행이다.
백장스님 문하에서 한 스님이 종소리를 듣고 깨달았는데 백장선사는 곧 “뛰어나구나. 이것이 곧 관세음보살님께서 도에 이르는 방법이다.”라고 하셨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