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 머리를 찾는 연야달다 - 능엄경(楞嚴經)
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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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2025-09-23 23:44
진여(眞如) 묘각(妙覺)은 시방세계를 밝게 비추고
법계에 두루 하며 본래 원만하고 밝고 미묘하다.
사람들은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니
사람들은 어리석고 미혹하며,
제 스스로 일으킨 망상분별에 가로막혀
눈앞에 드러나 있는 진여묘각의 본래성품을 보지 못할 뿐이다.
진리의 말씀 감사합니다❤️
너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너는 불멸성 안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
그 마음은 시공간 너머에 있으며, 어떤 분별에도 묶여 있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과 권능이 있다
사랑과 행복, 끝없는 평화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을 청할 수 있다
요청하면 당연히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이미 너에게 있기에, 그 요청은 성공할 수 밖에 없다
-A course in Miracles
법계에 두루 하며 본래 원만하고 밝고 미묘하다.
사람들은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니
사람들은 어리석고 미혹하며,
제 스스로 일으킨 망상분별에 가로막혀
눈앞에 드러나 있는 진여묘각의 본래성품을 보지 못할 뿐이다.
진리의 말씀 감사합니다❤️
너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너는 불멸성 안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
그 마음은 시공간 너머에 있으며, 어떤 분별에도 묶여 있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과 권능이 있다
사랑과 행복, 끝없는 평화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을 청할 수 있다
요청하면 당연히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이미 너에게 있기에, 그 요청은 성공할 수 밖에 없다
-A course in Miracles


“실라벌성(室羅筏城)의 연야달다(演若達多)는 홀연히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자기 머리와 얼굴, 눈이 보이지 않자 도깨비라고 성을 내며 미쳐서 머리를 찾아 뛰어다녔다고 한다. 너는 연야달다가 왜 미쳐서 달아났다고 생각하느냐?”
“예, 그는 그저 제 마음이 미친 것일 뿐, 더 이상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진여(眞如) 묘각(妙覺)은 시방세계를 밝게 비추고 법계에 두루 하며 본래 원만하고 밝고 미묘하다. 사람들은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니, 어찌 원인이 있겠느냐?...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꿈에서 깬 사람이 꿈속의 일을 말함과 같으니, 꿈속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할지라도 무슨 이유로 꿈속의 물건에 집착하겠느냐?
저 실라벌성의 연야달다는 무슨 이유로 스스로 머리를 찾아 뛰어다니겠느냐? 홀연히 미친 마음만 쉬어버리면 머리를 밖으로 찾아 나서지 않을 것이다. 미친 마음 때문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달고 있는 머리를 잃어버렸겠느냐?...
미친 마음만 쉬고 나면 깨달음의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법계에 두루 원만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수고스럽게 갈고 닦아 수행이라는 방법을 통해 깨닫고자 하는가?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옷 안에 여의주가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곤궁하게 걸식하면서 다른 곳을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사실은 여의주를 잃은 적이 없으니, 지혜 있는 이가 여의주를 가르쳐주기만 한다면 그는 소원을 이루고 큰 부자가 된다. 비로소 신비한 여의주가 밖에 있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연야달다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미쳐서 머리가 없다는 착각과 망상을 일으키고는 머리를 찾아 밖으로 뛰어다닌다. 머리를 달고서 머리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오로지 미친 마음, 미혹한 마음 때문이다. 머리가 없다는 미혹한 마음, 미친 마음만 사라진다면 어찌 제 머리를 달고 제 머리를 찾아 나서겠는가?
『능엄경』에서는 이처럼 우리의 본래 성품, 진여묘각은 언제나 시방세계에 두루 밝고 원만하며 밝고 미묘하게 드러나 있지만 중생이 미혹하여 다만 보지 못할 뿐임을 설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리석고 미혹하며, 제 스스로 일으킨 망상분별에 가로막혀 있어서 눈앞에 드러나 있는 진여묘각의 본래성품을 보지 못할 뿐이다. 그러한 미혹함만 쉬어버린다면 머리는 언제나 없어진 적이 없다. 머리를 달고 머리를 찾을 아무 이유가 없다.
이처럼 머리가 이미 있지만 없다고 망상한 것처럼, 이미 드러나 있는 깨달음을 없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이니, 이미 드러나 있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애써 수고스럽게 갈고 닦고 수행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저 미혹함만 쉬어버리면 될 뿐이다. 따로 수행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참된 수행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특정한 방법으로 앉아서 특별한 수행을 애써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혹을 깨버리는, 분별망상을 녹여 없애주는 꿈 깬 자의 법문을 지속적으로 듣는 것이다. 바른 법을 가까이하고, 법문을 듣고, 언제나 드러나 있다고 하는 이 법이 왜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하고 간절히 법을 그리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수행이다.
『법화경』의 비유처럼, 옷 안에 값비싼 여의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르면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이미 있는 여의주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불법이고 수행이지, 없는 것을 애써 갈고 닦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