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 점수(漸修)와 돈오(頓悟) - 능가경(楞伽經)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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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어떻게 일체 중생이 현실에서 자기 마음의 흐름을 청정하게 합니까? 점차(漸)로 청정하게 되는지요? 아니면 단번(頓)에 청정하게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점차로 청정하여지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나무열매가 점점 익고 단번에 익지 않는 것처럼 현실적으로는 일체 중생의 마음의 흐름도 그와 같다. 점차로 청정하게 되는 것이지 단번에 청정하게 되지는 않는다.

도공이 그릇을 만들 때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지 단박에 완성되지 않듯이, 중생의 마음의 청정함도 그와 같이 점차로 흘러서 되는 것이지 단번에 되지는 않는다.

비유하면 땅 위에 초목이 피어날 때 점차로 생기지 단번에 나지 않는 것과도 같다. 모든 부처님께서 중생의 마음의 흐름을 청정하게 하심도 그처럼 점차로 되는 것이지 단번에 되지는 않는다.

대혜여, 비유하면 사람이 음악과 글과 그림 등 갖가지 기술을 배울 때도 점차로 되지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듯이 모든 부처님께서 중생의 마음의 흐름을 청정하게 하심도 그처럼 점차로 되는 것이지 단번에 되지는 않는다.

 

✔ 돈오돈수(頓悟頓修)니 돈오점수(頓悟漸修)니 하는 논쟁들은 선종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관점의 차이일 뿐 본질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다.

일단 깨달음은 돈오다. 몰록 깨닫는다. 다만 몰록 깨닫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신심을 내어 발심을 하고 꾸준히 법을 가까이 하고, 법문을 듣고, 수행을 하면서 의심과 분심(憤心)을 이어가는 등의 정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는 점차적인 공부를 통해 깨닫는다고 볼 수 있겠으나, 깨달음의 측면에서 보면 아무리 그렇게 발심을 이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깨달음을 얻는 그 견성의 순간은 점차가 아닌 몰록, 단박에 깨닫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렇게 단박에 깨닫는 ‘돈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돈오 이후에 보임의 단계에서 점차적으로 닦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돈오를 하면 곧장 그 자리에서 수행 또한 몰록 끝나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논쟁의 중심이다. 바로 이 점이, 사실은 서로 다르지 않고 다만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돈오, 즉 견성의 깨달음이 있으면 사실은 그 자리가 이미 깨달음의 자리다. 자기의 성품을 확인했으면 그것으로 깨달음은 끝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돈오돈수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중생들의 오랜 습기로 인해 깨달음의 자리를 이미 확인했으면서도, 자꾸만 생각과 분별심이 올라오고, 이 자성의 자리가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듯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경우 깨달음의 순간에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경이로운 느낌이라거나, 놀라운 체험 등의 부수적인 느낌, 감정에 집착한 나머지 그런 느낌이 깨달음인 것으로 오해한다. 그래서 그런 감정적인 황홀경 같은 것을 붙잡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곧 물러가고 다시 평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다보니 깨달음이 왔었는데 다시 사라졌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깨달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익숙지 않고, 확연하지 못한 중생의 분별심의 습기로 인해 오해한 것이다.

새로운 깨달음의 자리를 확인했더라도 이제부터는 거기에 익숙해지는 시간, 완전히 그 자리에 안착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전까지는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간과 출세간, 깨달음의 자리와 세간의 자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차 이 공부를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점차적으로 안정이 되고, 이 자리에 익숙해지면서, 결국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법에 대한 확고함이 서게 된다. 때로는 이 때 두 번째 깨달음이 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더 높은 깨달음이 온 것이 아니라, 첫 번째의 깨달음에 대해 더욱 익숙하게 자리 잡는 체험에 불과하다. 깨달음의 단계가 두 번, 세 번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이러한 체험은 초견성(初見性) 이후에도 한두 번 정도씩 더 경험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것은 단계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첫 번째의 돈오가 점차 익숙해지고, 업습은 점차로 옅어지는 경험일 뿐, 새로운 깨달음을 또 다시 얻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점수라고 말할 수도 있고, 돈수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곳 『능가경』에서는 업습을 조복시키고, 깨달음의 자리에 점차 익숙해지는 관점에서 점수를 설한 것일 뿐, 본질의 깨달음은 언제나 돈오일 뿐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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