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유학자가 스님의 손에 있는 주장자를 보고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서원(誓願)을 물리치지 않고 들어준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지.”
“저는 스님의 손에 있는 주장자를 갖고 싶습니다. 괜찮습니까?”
“군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지 않아.”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나 또한 부처님이 아니야.”
✔ 한 유학자가 스님의 주장자를 갖고 싶다고 하며, 스님이라면 중생의 서원을 들어주고,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자이니 마땅히 달라고 하고, 스님은 위트 있게 받아 넘기며 주지 않는다.
이런 일이 실제로 더러 생긴다. 스님은 중생을 위하는 자이니, 중생이 힘들어하면 다 들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몇 시간이고 따로 시간을 좀 내 달라고도 하고, 어떤 분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 똑같은 질문을 지속적으로 하면서도 스님이니까 다 이해해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도리어 따지기도 하신다.
스님은 이래야 한다는 자기만의 기준을 정해 놓고, 혹은 스님은 자비롭고 중생의 서원을 들어준다는 경전의 문구를 가져와서는 왜 당신은 이렇지 못하냐고 따진다.
부처님의 자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자비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비를 강요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도리어 자비가 아닌 듯 보이는 진정한 자비를 행하기도 하신다.
삶을 보라. 삶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삶은 그대로 진리다. 있는 그대로의 삶이 그대로 여법한 실상이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의 분별심으로 삶을 바라보면 삶은 문제투성이다. 남들보다 돈을 못 버는 것도 문제고, 남들보다 못생긴 것도 문제고, 남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실상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 우리가 의식으로 현실을 분별하지만 않는다면, 현실은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중생들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분별을 기준으로, 좋거나 나쁜 일이라고 판단한 뒤, 삶이 즐겁다거나 괴롭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어떤 해석으로도 오염될 수 없는, 있는 그대로 완전한 실상이다.
삶 자체가 있는 그대로 완전한 자비와 지혜의 나툼이다. 내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만 빼면.
중생이 시비를 걸면 그것은 중생의 문제이지, 부처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부처는 중생이 거는 시시비비에 넘어가지도 않는다.
나 또한 부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쓴이:법상
한 유학자가 스님의 손에 있는 주장자를 보고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서원(誓願)을 물리치지 않고 들어준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지.”
“저는 스님의 손에 있는 주장자를 갖고 싶습니다. 괜찮습니까?”
“군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지 않아.”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나 또한 부처님이 아니야.”
✔ 한 유학자가 스님의 주장자를 갖고 싶다고 하며, 스님이라면 중생의 서원을 들어주고,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자이니 마땅히 달라고 하고, 스님은 위트 있게 받아 넘기며 주지 않는다.
이런 일이 실제로 더러 생긴다. 스님은 중생을 위하는 자이니, 중생이 힘들어하면 다 들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몇 시간이고 따로 시간을 좀 내 달라고도 하고, 어떤 분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 똑같은 질문을 지속적으로 하면서도 스님이니까 다 이해해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도리어 따지기도 하신다.
스님은 이래야 한다는 자기만의 기준을 정해 놓고, 혹은 스님은 자비롭고 중생의 서원을 들어준다는 경전의 문구를 가져와서는 왜 당신은 이렇지 못하냐고 따진다.
부처님의 자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자비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비를 강요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도리어 자비가 아닌 듯 보이는 진정한 자비를 행하기도 하신다.
삶을 보라. 삶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삶은 그대로 진리다. 있는 그대로의 삶이 그대로 여법한 실상이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의 분별심으로 삶을 바라보면 삶은 문제투성이다. 남들보다 돈을 못 버는 것도 문제고, 남들보다 못생긴 것도 문제고, 남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실상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 우리가 의식으로 현실을 분별하지만 않는다면, 현실은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중생들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분별을 기준으로, 좋거나 나쁜 일이라고 판단한 뒤, 삶이 즐겁다거나 괴롭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어떤 해석으로도 오염될 수 없는, 있는 그대로 완전한 실상이다.
삶 자체가 있는 그대로 완전한 자비와 지혜의 나툼이다. 내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만 빼면.
중생이 시비를 걸면 그것은 중생의 문제이지, 부처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부처는 중생이 거는 시시비비에 넘어가지도 않는다.
나 또한 부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