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것이 제법실상(諸法實相)인가?”
“... 실상이란 파괴할 수도 없고, 항상 머물러 변치 않으며, 능히 만들어내는 이도 없다... 이 이치는 일체의 관점을 버리고, 일체의 언어를 멸하며, 모든 심행(心行)을 여의면 본래 불생불멸이어서 마치 열반의 모습 같으니, 일체의 법의 모습이 역시 그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을 제법실상이라 부른다...
... 허공과 같아 물듦이 없고, 희론도 없고, 문자도 없나니, 이렇게 능히 관찰하면 곧 부처를 보리라. 여법하게 관한다면 부처와 반야와 열반 이 셋은 곧 하나라서 실로 다를 바가 없네... 반야는 곧 한 법이지만 부처님은 갖가지 이름으로 말씀하시어 중생들의 근기에 맞춰 그들을 위해 다른 말을 세우실 뿐.
어떤 이가 반야를 얻으면 따지고 헤아리는 마음이 모두 멸하니 마치 태양이 뜨면 아침 이슬이 일시에 없어지는 것과 같다... 반야는 오는 바도 없고 가는 바도 없으니 지혜로운 이는 온갖 곳에서 반야를 구하나 얻을 수 없다... 어떤 이가 반야를 보면 곧 해탈을 얻는 것이지만, 반야를 보지 못한다 해도 이 또한 해탈을 얻는 것이네... 언설은 세속을 위한 것이지만 일체를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거짓된 이름으로 법을 설하시니 비록 말했으나 말한 바가 없다네.
✔ 참된 법의 실상은 파괴될 수 없다. 생겨난 것은 사라지겠지만 이것은 생겨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중생이 제법실상을 깨달을 수 있을까? 생각이 꽉 막혀야 한다. 분별심을 조복 받아야 한다. 일체의 견해, 관점이 다 사라지고, 일체의 언어와 개념을 멸하며, 마음이 그 어디로도 가지 못해 꼼짝 못하게 되었을 때, 아무런 분별망상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곧바로 불생불멸의 열반이 드러날 뿐이다. 제법의 실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제법실상이란 열반은 허공과 같고, 물듦도 없고, 희론이나 문자도 없다. 이 제법의 실상을 반야라고도 하며, 열반이라고도 부를 뿐, 그것은 말만 다를 뿐 같은 것을 가리킨다.
헤아리는 마음만 모두 멸하면 곧장 반야지혜가 드러난다. 반야를 얻는다는 것은 곧 헤아리는 마음이 멸했다는 것이다. 반야를 보면 곧장 해탈을 얻는다.
그러나 신비로운 사실은 반야를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 또한 해탈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완전한 해탈의 즐거움 속에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제법실상은 드러나 있다. 다만 우리의 허망한 의식이 알음알이로 헤아리기 때문에 해탈하고도 해탈했음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글쓴이:법상
“어떤 것이 제법실상(諸法實相)인가?”
“... 실상이란 파괴할 수도 없고, 항상 머물러 변치 않으며, 능히 만들어내는 이도 없다... 이 이치는 일체의 관점을 버리고, 일체의 언어를 멸하며, 모든 심행(心行)을 여의면 본래 불생불멸이어서 마치 열반의 모습 같으니, 일체의 법의 모습이 역시 그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을 제법실상이라 부른다...
... 허공과 같아 물듦이 없고, 희론도 없고, 문자도 없나니, 이렇게 능히 관찰하면 곧 부처를 보리라. 여법하게 관한다면 부처와 반야와 열반 이 셋은 곧 하나라서 실로 다를 바가 없네... 반야는 곧 한 법이지만 부처님은 갖가지 이름으로 말씀하시어 중생들의 근기에 맞춰 그들을 위해 다른 말을 세우실 뿐.
어떤 이가 반야를 얻으면 따지고 헤아리는 마음이 모두 멸하니 마치 태양이 뜨면 아침 이슬이 일시에 없어지는 것과 같다... 반야는 오는 바도 없고 가는 바도 없으니 지혜로운 이는 온갖 곳에서 반야를 구하나 얻을 수 없다... 어떤 이가 반야를 보면 곧 해탈을 얻는 것이지만, 반야를 보지 못한다 해도 이 또한 해탈을 얻는 것이네... 언설은 세속을 위한 것이지만 일체를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거짓된 이름으로 법을 설하시니 비록 말했으나 말한 바가 없다네.
✔ 참된 법의 실상은 파괴될 수 없다. 생겨난 것은 사라지겠지만 이것은 생겨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중생이 제법실상을 깨달을 수 있을까? 생각이 꽉 막혀야 한다. 분별심을 조복 받아야 한다. 일체의 견해, 관점이 다 사라지고, 일체의 언어와 개념을 멸하며, 마음이 그 어디로도 가지 못해 꼼짝 못하게 되었을 때, 아무런 분별망상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곧바로 불생불멸의 열반이 드러날 뿐이다. 제법의 실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제법실상이란 열반은 허공과 같고, 물듦도 없고, 희론이나 문자도 없다. 이 제법의 실상을 반야라고도 하며, 열반이라고도 부를 뿐, 그것은 말만 다를 뿐 같은 것을 가리킨다.
헤아리는 마음만 모두 멸하면 곧장 반야지혜가 드러난다. 반야를 얻는다는 것은 곧 헤아리는 마음이 멸했다는 것이다. 반야를 보면 곧장 해탈을 얻는다.
그러나 신비로운 사실은 반야를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 또한 해탈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완전한 해탈의 즐거움 속에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제법실상은 드러나 있다. 다만 우리의 허망한 의식이 알음알이로 헤아리기 때문에 해탈하고도 해탈했음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