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 세 가지 마음 -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202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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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한 것에 의존하여 나와 세계가 있다고 말하니 온갖 형상이 연이어 생겨난다. 그것은 마음이 변화하여 생겨나는 것이며 그 마음은 오직 세 가지다.

그 세 가지는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vijñāna)과 말나식(末那識, manas)과 의식(意識)이다.

아뢰야식에는 과거의 모든 경험들이 종자로 저장되어 있다…

두 번째 말나식은 자아의식으로 아뢰야식에 의존해서 발생하고 작용한다.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자아(自我)라고 착각한다… 말나식은 깨달음을 방해하는 두 가지 장애, 즉 영원한 자아가 실체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소지장(所知障)과, 탐진치 삼독에 의한 번뇌장(煩惱障)에 오염되어 있다.

세 번째 마음은 눈귀코혀몸의 전오식(前五識)과 육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대상을 지각하고 분별하는 작용을 한다… 마음은 늘 나뉘어져[식의 전변(轉變)] 분별하는 주관과 분별되는 객관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나도 법도 없고, 일체는 오직 식(識)일 뿐이다.

 

가설(假說)로써 거짓된 아(我)와 법(法)을 설하니, 여러 가지 모양들이 생겨난다는 것 그것은 식이 변한 것일 뿐이네.

 

능변식(能變識)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이숙식(異熟識)[第八識]과 사량식(思量識)[第七識]과 요별경식(了別境識)[第六識]이다.

 

첫 번째 능변식은 아뢰야식(阿賴耶識)이며, 이숙식(異熟識) 혹은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이라고 한다.

 

두 번째 능변식은 말나식(末那識)이라고 부른다. 이는 아뢰야식에 의지해 일어나고, 아뢰야식을 반연(攀緣)한다. 사량(思量)하는 것을 그 성품과 모습으로 삼는다.

네 가지 번뇌와 항상 함께 하니 그것은 아치(我癡),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이다.

 

세 번째 능변식은 나누면 여섯 가지가 있다. 대상을 요별(了別)하는 것을 그 성품과 모습으로 삼는다.

 

✔ 유식에서 말하는 마음은 제육 의식(第六意識), 제칠 말나식(第七末那識), 제팔 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의 세 가지다. 그러나 이 마음은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허망한 것에 의존하여 생겨난 인연가합(因緣假合)의 연기적 무아(無我)다.

다음 게송에서도 나오듯이 거짓으로만 ‘나’와 ‘세계’ 즉 아(我)와 법(法)을 설할 뿐, 나와 세계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생겨난 것은 오직 식이 변한 것(識轉變)일 뿐이다. 이렇게 능히 변화하여 드러나게 한다고 하여 능변식이라고도 한다. 그것이 바로 유식이며, 유식무경이다. 바로 그 능변식이 세 가지가 있으니 의식, 말나식, 아뢰야식이다.

제육의식은 눈귀코혀몸뜻이 색성향미촉법을 만날 때 거기에서 생겨나는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여섯 가지 의식이며, 이것이 바로 분별식, 분별심, 분별망상이라고 알려진 것이다. 앞의 다섯 가지를 전오식(前五識)이라고 부르고 의식을 제육식(第六識)이라고 한다. 이 제육의식은 각각의 대상을 분별하는 작용을 함으로써 이 세상을 만들어낸다. 제육식은 식이 변해서 만들어진 나와 세계를 진짜 나라고 집착한다.

다음은 먼저 제팔 아뢰야식을 살펴보자. 제팔식은 이숙식, 일체종자식, 장식, 아뢰야식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생사윤회의 주체가 되는 일체의 업을 저장한다고 해서 일체종자식이라고 하고, 그러한 업의 종자는 선업과 악업에 따라 새로운 삶을 이끌어 내므로 이숙식(이숙 : 다르게 성숙했다)이라고 한다. 업의 종자를 함장하고 포섭하므로 장식이라고도 하며, 아뢰야라는 말이 ‘저장하다’는 뜻이기에 아뢰야식을 장식이라고 번역한다.

혹은 수많은 업의 종자를 집지하여 흩어지지 않게 하는 측면에서 집지식(執持識)이라고 하며 이를 아타나식(阿陀那識, adāna vijñāna)이라고 한다. 또한 부처님에게는 업의 종자가 텅 비어 청정하기 때문에 이 제8식이 청정무구식(淸淨無垢識)이 되어 이를 아마라식(阿摩羅識)이라고도 하며, 이를 별도로 제9식이라고도 한다.

다음은 제칠 말나식으로 이는 사량식(思量識),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 제팔 아뢰야식을 자아라고 집착하는 의식이다. 우리의 분별의식 중에 가장 심층적인 것은 ‘나’라는 집착이다. 바로 제팔식을 ‘나’라고 집착하는 이 자아의식이 바로 우리가 흔히 아상, 아견, 아만, 아애, 아취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식삼식송』에서는 제칠식을 ‘네 가지 번뇌와 함께하니 아치(我癡, 나라는 무명), 아견(我見, 나라는 견해, 아집), 아만(我慢, 나라는 거만함), 아애(我愛, 나에 대한 탐착)다.’라고 했다. 제칠식을 사량식이라고 하는 이유는 특히 심층에서 ‘나다’하고 헤아리고 분별하는 뜻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가족과 아내를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교통사고가 나는 순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자동차 핸들을 돌려, 나는 살게 되고 옆에 있던 가족이 죽게 되기도 한다. 바로 이 근본적인 자아의식인 제칠식이 내면 깊은 곳에서 아만, 아애, 아취라는 번뇌를 작동시켜 사량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널리 보시를 행하고 복을 짓는 것 같은 사람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것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계산하는 마음이 깔려 있게 마련이다. 제칠식 말나식이 있기 때문이다. 말나식은 철저히 ‘나’라는 근원적인 자아집착식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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