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 중생이 곧 여래장 - 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
2025-10-18
조회수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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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2025-10-19 06:03
번뇌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중생세계 그대로가
제일의제라는 참된 진리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세계다 현실이 진실한 세계다 색즉시공
삶은 이대로 완전하다 제법이 실상이다
강물위에 통나무처럼 흐릅니다
감사합니다 🙇♀️
제일의제라는 참된 진리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세계다 현실이 진실한 세계다 색즉시공
삶은 이대로 완전하다 제법이 실상이다
강물위에 통나무처럼 흐릅니다
감사합니다 🙇♀️
iris2025-10-18 23:26
색즉시공이다. 중생계가 곧 여래장이며, 법신이다.
진리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숨겨져 있다'
(요한1서 3:2)
드러나기도 하고 은폐되기도 하는 이 신적 성품의 씨앗,
오리게네스에 따라 영혼의 근저에 흐르는 생명의 샘에 비유한다
욕망의 흙더미로 샘이 막히면 우리는 샘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또 다른 비유로 태양과 태양을 가리는 구름, 밭에 묻힌 보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혹은 우리 눈에 장애가 생기면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이렇게 우리 본성상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신적 본성의 씨앗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진리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숨겨져 있다'
(요한1서 3:2)
드러나기도 하고 은폐되기도 하는 이 신적 성품의 씨앗,
오리게네스에 따라 영혼의 근저에 흐르는 생명의 샘에 비유한다
욕망의 흙더미로 샘이 막히면 우리는 샘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또 다른 비유로 태양과 태양을 가리는 구름, 밭에 묻힌 보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혹은 우리 눈에 장애가 생기면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이렇게 우리 본성상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신적 본성의 씨앗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사리불이여, 이러한 심오한 뜻은 제일의제(第一義諦)이다. 이 제일의제는 바로 중생계이다. 중생계가 바로 여래장이다. 여래장은 바로 법신(法身)이다.
여래의 법신은 항상한 것이다. 중생들이 의지해서 돌아가야 할 법이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이 법신이 갠지스강의 모래알 보다 더 많은 끝없는 번뇌에 얽혀서 시작도 끝도 없이 세간의 흐름을 따라 파도에 표류하듯 생사의 세계를 오가는 것을 중생이라고 이름한다. 법신이 생사와 고뇌를 싫어하여 일체 욕망과 추구를 버리고 십바라밀(十波羅蜜)을 실천하여 보살행을 닦는 것을 보살이라 한다.
사리불이여, 중생계를 떠나지 않은 곳에 여래의 법신(法身)이 있다. 그리고 법신을 떠나지 않고 중생계가 있다. 따라서 중생계가 곧 여래의 법신이요, 여래의 법신이 곧 중생계다. 사리불이여, 이 두 법의 관계는, 의미는 하나인데 다만 이름이 다를 뿐이다.
이 여래장은 일체 모든 법을 나투는 근본이다. 이 여래장에 일체의 법이 갖추어져 있고, 일체의 법이 구비되어 있다. 또한 여래장은 세간의 법 중에 있으면서 진실로 일체의 법을 떠나지 않고 벗어나지 않는다. 즉 그것은 일체의 법에 머물러 있고, 일체의 법을 포섭하고 있다.
✔ 제일의제(第一義諦)는 방편의 가르침을 버리고 곧장 드러낸 진리의 골수(骨髓)를 말한다. 언어로 표현된 가르침은 전부 다 방편이기에 세속제(世俗諦)라 부른다. 언어를 넘어서, 사량 분별을 넘어서 곧장 진리 그 자체를 드러내고자 한다면 그것이 바로 제일의제다. 그러니 사실 제일의제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제일의제가 제일의제라고 표현되는 순간 벌써 두 번째 자리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언어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 최상의 진리의 제일의제가 곧 중생계라는 것이다. 번뇌즉보리, 생사즉열반이다. 번뇌 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중생의 세계가 그대로 제일의제라는 참된 진리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세계다. 색즉시공이다. 중생계가 곧 여래장이며, 법신이다.
여래장, 법신, 제일의제가 번뇌에 얽혀 생사의 흐름에 휩쓸리면 중생이고, 번뇌와 욕망과 추구를 버리고 십바라밀을 닦으면 그가 바로 보살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