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와 같이 경전에서는 괴로움의 성격상 세 가지로 나누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불교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고는 바로 사고와 팔고의 교설입니다. 『디가니까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사고와 팔고를 설합니다.
무엇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인가?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이다. 늙는 것은 괴로움이다.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며, 죽어야 하는 것 또한 괴로움이다. 사랑하는 것들과 헤어지는 것 또한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것들과 만나는 것 또한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구하지만 얻어지지 않는 것도 괴로움이다. 집착의 대상이 되는 오온 자체는 괴로움이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이다.
생(生)은 태어나는 괴로움이며, 노(老)는 늙는 괴로움, 병(病)은 병드는 괴로움, 사(死)는 죽는 괴로움으로 이상 네 가지를 사고(四苦)라고 합니다. 여기에 다시 네 가지 괴로움을 더해서 팔고(八苦)라 합니다. 그 네 가지는 첫째, 원증회고(怨憎會苦)로 이는 미워하는 대상과 만나는 괴로움이고, 애별리고(愛別離苦)란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 구부득고(求不得苦)는 원하지만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고, 오음성고(五蔭盛苦)는 오음이 치성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입니다. 오음이란 앞에서 배웠던 오온(五蘊)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오음성고란 ‘나다’라고 아상에서 오는 괴로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오음성고의 괴로움이야말로 다른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 되는 괴로움입니다.
이것을 몸과 마음의 괴로움으로 나누어 정리해 보면 생노병사 네 가지 괴로움은 몸의 괴로움이며, 원증회고, 애별리고, 구부득고 세 가지는 마음의 괴로움이고, 마지막 오음성고는 오온이 치성함에서 오는 괴로움으로 몸(색)과 마음(수상행식)의 괴로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 팔고의 시발점은 생고(生苦)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머지 일곱 가지의 괴로움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생기는 부수적인 괴로움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태어나는 것이 무슨 고인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팔고 중 가장 근본 원인이 되는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태어나지 않았다면 늙고 병들고 죽는 등의 괴로움이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늙고 병들고 죽는 노병사의 괴로움인데 물론 이 세 가지는 누구나 괴로움이라고 인정하겠지만, 혹 어떤 사람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 말고, 그와 반대의 개념, 즉 젊고 건강하고 살아 있다는 즐거움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할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 왜 젊고 건강하고 살아 있다는 즐거움도 있는데 왜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느냐고 말이지요. 물론 삶에는 괴로움 말고도 수많은 즐거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고팔고의 괴로움은 삶에서의 단편적인 것만을 설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통찰함으로써 나온 관찰입니다.
인생의 단면만을 본다면, 젊고 건강하고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것, 원하는 지위, 재물, 명예 등을 얻어서 즐거운 것 등을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 전체를 보면 우리는 결국 ‘늙고 병들고 죽는’ 궁극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의 사고에 다시 네 가지를 더해 팔고라고 합니다. 그 첫째가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괴로움인 애별리고(愛別離苦)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소유물, 아끼는 물건 등은 영원히 나의 것으로 할 수 없고 언젠가는 그것과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꿈같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던 남녀도 언젠가는 이별을 반드시 경험하게 됩니다. 영원한 사랑은 없지요.
그뿐 아니라 부모, 형제, 친지, 친구들과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하는 괴로움도 애별리고입니다. 또한, 사람과의 일이 아닌, 소유물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물건에 집착이 많을수록, 그 물건이 사라졌을 때 우리의 괴로움은 큰 것입니다.
다음은 그와 반대인 원증회고(怨憎會苦)인데, 원망스럽고 싫은 것과 만나야 하는 괴로움을 말합니다. 보기 싫은 사람, 얼굴만 보아도 화가 나고 답답하고 혹은 두려운 사람들과 항상 만나야 한다면 그보다 괴로운 일이 있을까요?
한번은 결혼한 지 몇 달도 채 안 되는 신혼부부인데, 부인이 사는 것이 지옥 같다고 하며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의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며, 다른 여자와 정을 통하고도 전혀 부인에게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는 기색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와 어디에서 무얼 했느냐고 따지면 귀찮다는 듯이 피곤하니 저리 꺼지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한다고 합니다. 돈을 벌어 다른 노는 데에만 투자를 하고, 아이 얼굴도 한번 따뜻하게 바라보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집안에 수도세, 전기세, 전화요금 용지는 몇 달이고 쌓여 있는데, 돈을 한 푼도 가져오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이 보살님은 남편의 얼굴만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고 괴로울 것입니다. 하도 답답하여 시부모님께 말씀 드리니, ‘다 네가 잘못하니까 남편이 밖으로 나도는 것’이라며 오히려 꾸중을 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려도, ‘결혼한 지 얼마 되었다고 그러느냐’며, ‘다시 한 번 설득시키고, 잘 살도록 노력해 보라’ 고 하니 헤어질 수도 없고, 헤어진들 어디에서 무얼 해야 할지, 그 어린 자식은 어찌 해야 할지 막막한 처지였습니다. 그러니, 남편 얼굴을 어쩔 수 없이 보기는 봐야 하는데,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이런 경우도 원증회고에 속하겠지요.
특히나 군대에서 보기 싫고 두렵기까지 한 선임병 때문에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종종 신문에 등장을 합니다. 군에서 자살하는 경우를 보면 주로 사랑하는 이와 헤어짐에서 오는 괴로움 때문이거나 미워하는 이와 함께 해야 하는 괴로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이만하면 왜 생노병사라는 네 가지 괴로움 다음으로 애별리고와 원증회고를 언급하였을까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구부득고(求不得苦)는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입니다. 이 세계의 생명 있는 중생들 중 과연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까요? 그러나 그렇게 얻으려고 하는데 비해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쉽게 마냥 얻을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이들은 심지어 축생들조차 많든 적든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구해지지 않으면 속상해 하고 괴로워합니다. 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원하고, 수행하는 이들은 깨달음을 얻으려 하고, 사업가는 사업이 번창하기를 원하며, 정치가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길 원합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은 이들도, 주위에서 보면 돈이며 명예, 지위 등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며 부러워하겠지만, 사실 그 입장이 되어 보면 그 또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얻으려 하고, 얻지 못해 괴로워하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바라는 마음이 끝이 없고, 그것이 모두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괴로워합니다.
다음으로 오음성고(五陰盛苦)는, 오온이라는 인간의 구성 요소에서 오는 괴로움으로, 색수상행식의 오온이 치성하는 데서 비롯된 괴로움입니다. 다시 말해 오온, 즉 ‘나다’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으로, ‘나다’, ‘내 것이다’, ‘내가 옳다’, ‘내 마음대로 한다’ 하는 상을 가지기 때문에 그만큼 괴로움이 오는 것입니다. 이 오음성고는 앞의 일곱 가지 괴로움을 포괄하고 있는 괴로움입니다. 오온, 즉 ‘나다’ 하는 데에서 모든 괴로움이 오는 것이지, ‘나다’ 하고 고정 지을 것이 없다면 괴로움이 붙을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의 주체는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다면 괴로울 주체도 없겠지요.
다시 말해, 이 오음성고의 괴로움이 타파된다는 말은 아상이 타파되고, 그렇기에 괴로움을 여의고 깨달음의 길로 간다는 말입니다. 오온이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공하다는 사실을 올바로 조견할 때 이 괴로움은 소멸되는 것입니다. 오음성고의 괴로움이 소멸되면 일체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다는 것은 이미 살펴본 바입니다. 『반야심경』의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것입니다.
글쓴이:법상
위와 같이 경전에서는 괴로움의 성격상 세 가지로 나누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불교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고는 바로 사고와 팔고의 교설입니다. 『디가니까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사고와 팔고를 설합니다.
무엇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인가?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이다. 늙는 것은 괴로움이다.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며, 죽어야 하는 것 또한 괴로움이다. 사랑하는 것들과 헤어지는 것 또한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것들과 만나는 것 또한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구하지만 얻어지지 않는 것도 괴로움이다. 집착의 대상이 되는 오온 자체는 괴로움이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이다.
생(生)은 태어나는 괴로움이며, 노(老)는 늙는 괴로움, 병(病)은 병드는 괴로움, 사(死)는 죽는 괴로움으로 이상 네 가지를 사고(四苦)라고 합니다. 여기에 다시 네 가지 괴로움을 더해서 팔고(八苦)라 합니다. 그 네 가지는 첫째, 원증회고(怨憎會苦)로 이는 미워하는 대상과 만나는 괴로움이고, 애별리고(愛別離苦)란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 구부득고(求不得苦)는 원하지만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고, 오음성고(五蔭盛苦)는 오음이 치성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입니다. 오음이란 앞에서 배웠던 오온(五蘊)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오음성고란 ‘나다’라고 아상에서 오는 괴로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오음성고의 괴로움이야말로 다른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 되는 괴로움입니다.
이것을 몸과 마음의 괴로움으로 나누어 정리해 보면 생노병사 네 가지 괴로움은 몸의 괴로움이며, 원증회고, 애별리고, 구부득고 세 가지는 마음의 괴로움이고, 마지막 오음성고는 오온이 치성함에서 오는 괴로움으로 몸(색)과 마음(수상행식)의 괴로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 팔고의 시발점은 생고(生苦)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머지 일곱 가지의 괴로움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생기는 부수적인 괴로움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태어나는 것이 무슨 고인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팔고 중 가장 근본 원인이 되는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태어나지 않았다면 늙고 병들고 죽는 등의 괴로움이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늙고 병들고 죽는 노병사의 괴로움인데 물론 이 세 가지는 누구나 괴로움이라고 인정하겠지만, 혹 어떤 사람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 말고, 그와 반대의 개념, 즉 젊고 건강하고 살아 있다는 즐거움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할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 왜 젊고 건강하고 살아 있다는 즐거움도 있는데 왜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느냐고 말이지요. 물론 삶에는 괴로움 말고도 수많은 즐거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고팔고의 괴로움은 삶에서의 단편적인 것만을 설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통찰함으로써 나온 관찰입니다.
인생의 단면만을 본다면, 젊고 건강하고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것, 원하는 지위, 재물, 명예 등을 얻어서 즐거운 것 등을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 전체를 보면 우리는 결국 ‘늙고 병들고 죽는’ 궁극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의 사고에 다시 네 가지를 더해 팔고라고 합니다. 그 첫째가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괴로움인 애별리고(愛別離苦)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소유물, 아끼는 물건 등은 영원히 나의 것으로 할 수 없고 언젠가는 그것과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꿈같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던 남녀도 언젠가는 이별을 반드시 경험하게 됩니다. 영원한 사랑은 없지요.
그뿐 아니라 부모, 형제, 친지, 친구들과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하는 괴로움도 애별리고입니다. 또한, 사람과의 일이 아닌, 소유물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물건에 집착이 많을수록, 그 물건이 사라졌을 때 우리의 괴로움은 큰 것입니다.
다음은 그와 반대인 원증회고(怨憎會苦)인데, 원망스럽고 싫은 것과 만나야 하는 괴로움을 말합니다. 보기 싫은 사람, 얼굴만 보아도 화가 나고 답답하고 혹은 두려운 사람들과 항상 만나야 한다면 그보다 괴로운 일이 있을까요?
한번은 결혼한 지 몇 달도 채 안 되는 신혼부부인데, 부인이 사는 것이 지옥 같다고 하며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의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며, 다른 여자와 정을 통하고도 전혀 부인에게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는 기색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와 어디에서 무얼 했느냐고 따지면 귀찮다는 듯이 피곤하니 저리 꺼지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한다고 합니다. 돈을 벌어 다른 노는 데에만 투자를 하고, 아이 얼굴도 한번 따뜻하게 바라보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집안에 수도세, 전기세, 전화요금 용지는 몇 달이고 쌓여 있는데, 돈을 한 푼도 가져오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이 보살님은 남편의 얼굴만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고 괴로울 것입니다. 하도 답답하여 시부모님께 말씀 드리니, ‘다 네가 잘못하니까 남편이 밖으로 나도는 것’이라며 오히려 꾸중을 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려도, ‘결혼한 지 얼마 되었다고 그러느냐’며, ‘다시 한 번 설득시키고, 잘 살도록 노력해 보라’ 고 하니 헤어질 수도 없고, 헤어진들 어디에서 무얼 해야 할지, 그 어린 자식은 어찌 해야 할지 막막한 처지였습니다. 그러니, 남편 얼굴을 어쩔 수 없이 보기는 봐야 하는데,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이런 경우도 원증회고에 속하겠지요.
특히나 군대에서 보기 싫고 두렵기까지 한 선임병 때문에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종종 신문에 등장을 합니다. 군에서 자살하는 경우를 보면 주로 사랑하는 이와 헤어짐에서 오는 괴로움 때문이거나 미워하는 이와 함께 해야 하는 괴로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이만하면 왜 생노병사라는 네 가지 괴로움 다음으로 애별리고와 원증회고를 언급하였을까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구부득고(求不得苦)는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입니다. 이 세계의 생명 있는 중생들 중 과연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까요? 그러나 그렇게 얻으려고 하는데 비해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쉽게 마냥 얻을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이들은 심지어 축생들조차 많든 적든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구해지지 않으면 속상해 하고 괴로워합니다. 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원하고, 수행하는 이들은 깨달음을 얻으려 하고, 사업가는 사업이 번창하기를 원하며, 정치가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길 원합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은 이들도, 주위에서 보면 돈이며 명예, 지위 등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며 부러워하겠지만, 사실 그 입장이 되어 보면 그 또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얻으려 하고, 얻지 못해 괴로워하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바라는 마음이 끝이 없고, 그것이 모두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괴로워합니다.
다음으로 오음성고(五陰盛苦)는, 오온이라는 인간의 구성 요소에서 오는 괴로움으로, 색수상행식의 오온이 치성하는 데서 비롯된 괴로움입니다. 다시 말해 오온, 즉 ‘나다’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으로, ‘나다’, ‘내 것이다’, ‘내가 옳다’, ‘내 마음대로 한다’ 하는 상을 가지기 때문에 그만큼 괴로움이 오는 것입니다. 이 오음성고는 앞의 일곱 가지 괴로움을 포괄하고 있는 괴로움입니다. 오온, 즉 ‘나다’ 하는 데에서 모든 괴로움이 오는 것이지, ‘나다’ 하고 고정 지을 것이 없다면 괴로움이 붙을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의 주체는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다면 괴로울 주체도 없겠지요.
다시 말해, 이 오음성고의 괴로움이 타파된다는 말은 아상이 타파되고, 그렇기에 괴로움을 여의고 깨달음의 길로 간다는 말입니다. 오온이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공하다는 사실을 올바로 조견할 때 이 괴로움은 소멸되는 것입니다. 오음성고의 괴로움이 소멸되면 일체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다는 것은 이미 살펴본 바입니다. 『반야심경』의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것입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