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님의 글을 읽고 궁금한 것이 생겨 질문 드립니다. 스님께서는 방하착하라고 하시는데 수행을 할 때 무엇이 어떻게 되려는 그 마음, '채식을 해야겠다,' '매일 절을 해야겠다' 같은 생각들도 놓아야하나요.
예,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해 주셨어요. 불교를 공부하면서 생기기 쉬운 또 자칫하면 잘못 빠지기 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불교를 '공(空)사상'이라고 하고, '무아(無我)'라고 하고, 방하착 하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또 그 말들에 빠져서 거기에 집착을 하기 쉽습니다. 본래는 텅 빈 것이고 없는 것이니 다 놓아버리라고 하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돈도 벌지 말고, 의지도 갖지 말고, 수행도 하지 말고, 아무런 의욕도 없이 살라는 의미라고 잘못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불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불교에서 놓아버리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집착할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언제까지 항상하는 것도 아니요, 고정된 실체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하착은 본래 공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 온갖 것들에 걸려 집착하는 것을 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붙잡고자 하지만 잡히지 않을 때 괴로움은 우리 앞을 큰 힘으로 가로 막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이든, 지식이든, 세상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잠시 나에게 온 것일 뿐 그 어디에도 ‘내 것’이란 것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인연 따라 잠시 온 것을 ‘내 것‘이라 하여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합니다. 바로 ’내 것‘이라고 꽉 붙잡으려는 그 속에서, 그 아상 속에서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내 것’을 늘림으로 인해서는 ‘잡음’으로 인해서는 결코 행복과 자유와 진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 동안 내가 얻고자 했던 붙잡고자 했던 그것을 놓음(방하착)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놓아버리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라는 말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붙잡고 살게 되면 지금 이 순간을 100% 살 수 없습니다. 붙잡고 있는 것들이 너무 무겁고 버거워 거기에 신경을 쓰느라 '지금 여기'라는 생생한 삶의 현장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매달리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금 이 순간을 놓치기 쉽고, 돈을 붙잡고, 명예를 붙잡고, 소유물을 붙잡느라 지금 이 순간을 순수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놓게 되면 그 때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을 순수하게 즐기며 온전히 살아가는 지혜가 주어집니다. 붙잡을 것이 없으니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순수하게 그냥 살기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땅히 마음을 내되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도 내지 않고, 의지도 일으키지 않고, 삶을 생생하게 살지도 말라는 말이 아니라 마땅히 마음을 내고 살되, 거기에 머물러 집착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돈도 벌고, 사랑도 하고, 수행도 하고, 열심히 열심히 모든 것을 행하되,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행하라는 말이 '놓으라' '방하착하라'는 말의 본래 의미인 것입니다. 놓고서 어떻게 행하냐고 하지만, 놓고 행해야만 지금 이 순간을 100% 순수하게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놓고 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길을 자유롭게 만들며, 걸림 없게 만들어 줍니다.
법상스님 『 기도하면 누가 들어 주나요 』중에서
스님의 글을 읽고 궁금한 것이 생겨 질문 드립니다. 스님께서는 방하착하라고 하시는데 수행을 할 때 무엇이 어떻게 되려는 그 마음, '채식을 해야겠다,' '매일 절을 해야겠다' 같은 생각들도 놓아야하나요.
예,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해 주셨어요. 불교를 공부하면서 생기기 쉬운 또 자칫하면 잘못 빠지기 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불교를 '공(空)사상'이라고 하고, '무아(無我)'라고 하고, 방하착 하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또 그 말들에 빠져서 거기에 집착을 하기 쉽습니다. 본래는 텅 빈 것이고 없는 것이니 다 놓아버리라고 하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돈도 벌지 말고, 의지도 갖지 말고, 수행도 하지 말고, 아무런 의욕도 없이 살라는 의미라고 잘못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불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불교에서 놓아버리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집착할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언제까지 항상하는 것도 아니요, 고정된 실체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하착은 본래 공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 온갖 것들에 걸려 집착하는 것을 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붙잡고자 하지만 잡히지 않을 때 괴로움은 우리 앞을 큰 힘으로 가로 막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이든, 지식이든, 세상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잠시 나에게 온 것일 뿐 그 어디에도 ‘내 것’이란 것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인연 따라 잠시 온 것을 ‘내 것‘이라 하여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합니다. 바로 ’내 것‘이라고 꽉 붙잡으려는 그 속에서, 그 아상 속에서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내 것’을 늘림으로 인해서는 ‘잡음’으로 인해서는 결코 행복과 자유와 진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 동안 내가 얻고자 했던 붙잡고자 했던 그것을 놓음(방하착)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놓아버리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라는 말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붙잡고 살게 되면 지금 이 순간을 100% 살 수 없습니다. 붙잡고 있는 것들이 너무 무겁고 버거워 거기에 신경을 쓰느라 '지금 여기'라는 생생한 삶의 현장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매달리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금 이 순간을 놓치기 쉽고, 돈을 붙잡고, 명예를 붙잡고, 소유물을 붙잡느라 지금 이 순간을 순수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놓게 되면 그 때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을 순수하게 즐기며 온전히 살아가는 지혜가 주어집니다. 붙잡을 것이 없으니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순수하게 그냥 살기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땅히 마음을 내되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도 내지 않고, 의지도 일으키지 않고, 삶을 생생하게 살지도 말라는 말이 아니라 마땅히 마음을 내고 살되, 거기에 머물러 집착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돈도 벌고, 사랑도 하고, 수행도 하고, 열심히 열심히 모든 것을 행하되,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행하라는 말이 '놓으라' '방하착하라'는 말의 본래 의미인 것입니다. 놓고서 어떻게 행하냐고 하지만, 놓고 행해야만 지금 이 순간을 100% 순수하게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놓고 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길을 자유롭게 만들며, 걸림 없게 만들어 줍니다.
법상스님 『 기도하면 누가 들어 주나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