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성적에 대한 집착도 놓아야 하나요?

202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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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가르침에 아주 많이 공감하고 또 실천하고자 하는 학생입니다. '방하착하라', '아상을 버려라' 등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해는 가지만 실천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욕심을 탁 놓아야 하는데 마음속으로는 이번 시험에서 1등하고 싶고, 나중에 돈 많이 벌어 잘 살고 싶고 하는 생각들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욕심'과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어떤 '투지' 같은 것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집착'은 필요하지 않나요?


아직 학생인 듯한데 이렇게 마음공부 하고자 마음을 내었다니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법우님께서 질문 해주신 ‘다 놓고 어찌 세상을 살아갈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참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십니다.

방하착(放下着)이란 놓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일이고 공부고 다 놓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다 놓아버리고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면 돌이나, 나무, 풀뿌리와 뭐가 다를 것이 있겠어요. 그냥 돌처럼 가만히 살라는 말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착(着)'을 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착심, 집착심을 놓고 텅 비워버리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 하는데 무슨 열의가 있을까 걱정하겠지만, 오히려 집착하면서 일을 하면 바라는 마음과, 부담감, 삿된 마음, 이기적인 마음, 나아가 ‘이 일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는 마음들 때문에 순수하게 매진하기 힘들어집니다. 서울대에 집착해서 공부하거나, 성적이나 등수에 집착해서 공부하면, 괴로움이 자꾸 따라다닙니다. 시험 성적이 서울대에 못 미치게 되면 계속해서 괴로운 마음이 듭니다. 서울대에 나를 맞추게 되니 서울대에 울고 웃는 일이 많아지지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원리를 이해하고 차근차근 공부하기 보다는 시험을 잘 보겠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예를 들면 공식만 외는 공부를 하게 되고 공부 자체에 최선을 다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서울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저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한다면 오히려 부담감 없이 ‘참된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방하착이란 시험 보는 날 방하착 하여 시험도 보지 말라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시험을 보되 시험 성적이나 결과에 집착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시험이 끝나고 성적이 나쁘게 나오더라도 괴로울 것이 없게 되겠지요. 다시 말하면 ‘미래’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말고, ‘지금 이 순간’만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적의 결과도 미래이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미래이며, 대학진학도 미래인데, 학생들의 마음은 늘 그 미래의 결과에 가 있단 말이지요. 그러다보니 조급하고 여유가 없어요.

공부하는 수험생의 마음은 서울대, 연대, 고대, 하는 쪽에 쏠려 있으면 안 됩니다. 1등, 10등, 20등, 100점, 200점 하는 그런 것에도 집착하면 안 됩니다. 서울대에 가도 좋고, 지방대 가도 좋고, 1등도 좋고, 100등도 좋고, 이래도 저래도 좋아야 합니다. 서울대에 '행복'이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1등에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이 세상에는 1등도 있고 꼴지도 있으며 그 사이 사이에 수많은 등수의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다만 사람들이, 세상이 등수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면서부터 우리의 목적이 1등이 되어버렸지만 사실은 1등은 1등대로, 50등은 50등 대로, 꼴지는 꼴지대로 자기다운 삶의 목적이 있으며, 그것은 결코 등수로 매길 수 없는 성스러운 것입니다.

물론 이런 원리는 잘 알아도 실제로 현실에서는 잘 안되겠지요? 바로 그 점 즉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진실을 당당히 밀고 나가는 것 그것이 참 믿음이고, 참 마음공부이며, 참된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일입니다.

본래의 자리에서 본다면 행복은 어느 특정한 위치나 상황이나 사람이나 등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서울대, 1등, 100점이라는 틀을 잡아놓고 그 틀에 얽매이기 때문에 괴로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그 틀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합니다. 벗어나고 나면, 일체를 다 놓아버리고 나면, 의욕이 떨어져 공부를 더 못할 것 같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합니다. 성적이 더 잘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안 믿기겠지요. 사람들은 한 번도 온전히 놓아본 적이 없으면서 놓으면 어찌 사느냐고 되묻습니다. 놓으면 어찌 사느냐고.

잡는다는 것은 괴로움과 행복의 기준을 세운다는 말입니다. 잡고 있는 대로 되면 행복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놓는다는 것은 그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행복과 불행의 경계가 다 허물어지고 나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일입니다. 아니 좋다라는 분별조차 없는 그저 '텅 빈 충만' 그대로인 것입니다.

이 공부는 어찌 생각하면 세상의 공부와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공부처럼 보입니다. 잡는 것이 사람 사는 목적이었는데 놓고 살라니 어찌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 공부는 기존의 사회 관습과 통념, 온갖 고정관념들을 통째로 깨어 부수는 공부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실천이 힘듭니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분명하고 명쾌한 이치입니다.

 


법상스님 『 기도하면 누가 들어 주나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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