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행을 매일 빠뜨리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주변사람과 문제가 있거나, 상사에게 질책과 질타를 받는 등의 경계에 부딪칠 때 나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욱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그런 경계를 만날 때는 여러 가지로 마음을 돌리려 애쓸 수 있습니다. 전생의 업 탓으로 돌림으로써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할 수도 있고, 방하착 방하착 하면서 놓아버려야지 하고 놓으려고 애를 쓸 수도 있으며, 이것은 공한 것이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이다 하고 스스로 되뇌면서 얽매일 것 없다고 자신을 채찍질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욕 얻어먹는 것도 부처님 일이다,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이니까 나는 모르겠다’ 하면서 완전히 부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버리는 방법도 좋겠네요. 또 그런 괴로움이 너무 크다면 어디 가까운 절에 가든지, 나만의 공간을 찾아서 염불을 하고 독경을 하고 절 수행을 함으로써 그 마음을 바치고자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방법, 마음 돌리는 방법이 때로는 큰 힘이 되기도 하고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기도 하며, 그런 마음공부가 반복됨으로써 점차 마음에 중심이 서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주체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수행의 방법들은 하나같이 애를 쓰는 방법입니다. 놓아버리기 위한 방편의 가르침들입니다. 놓긴 놓아야겠는데 어떻게 놓을지 모르겠으니까 이렇게 해 봐라, 저렇게도 해 봐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머리를 굴려가면서, 지금까지 배워왔던 모든 가르침들을 다 동원해가면서, 마음을 놓으려고 해도 안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건 머리로만, 생각으로만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내 안에서 그런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실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놓아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바라보면 그대로 놓여집니다. 관수행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놓여나는 자유로움도 깊어갈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그대로 방하착이 되고, 받아들이는 것이 되며, 부처님 일로 돌려놓는 것이 되고, 공을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달마스님께서는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즉, 마음을 관하는 그 한 가지 법이 일체 모든 행을 총섭한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관하는 그 한 가지 수행 방법이 부처님 수행법의 모든 것을 포섭(包攝)한다는 말입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 관찰하세요. 번뇌가 쌓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성적인 성격을 걱정하지 말고, 올라오는 감정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다만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기 바랍니다. 욱 하고 마음이 올라올 때, 바로 그 때가 수행을 할 절호의 순간이며, 생생한 마음공부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바라보면 그 순간이 절수행이 되고, 참선이 되며, 염불이 되고, 독경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니 그야말로 죽어라고 관찰만 하십시오. 끈질기게 올라오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깊이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만큼 거칠게 올라오면 거칠게 올라오는 마음을 관찰하고, 욕이라도 해야겠다 싶으면 욕하고 싶은 그 마음을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바라보면 사라집니다.’
법상스님 『 기도하면 누가 들어 주나요 』중에서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행을 매일 빠뜨리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주변사람과 문제가 있거나, 상사에게 질책과 질타를 받는 등의 경계에 부딪칠 때 나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욱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그런 경계를 만날 때는 여러 가지로 마음을 돌리려 애쓸 수 있습니다. 전생의 업 탓으로 돌림으로써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할 수도 있고, 방하착 방하착 하면서 놓아버려야지 하고 놓으려고 애를 쓸 수도 있으며, 이것은 공한 것이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이다 하고 스스로 되뇌면서 얽매일 것 없다고 자신을 채찍질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욕 얻어먹는 것도 부처님 일이다,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이니까 나는 모르겠다’ 하면서 완전히 부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버리는 방법도 좋겠네요. 또 그런 괴로움이 너무 크다면 어디 가까운 절에 가든지, 나만의 공간을 찾아서 염불을 하고 독경을 하고 절 수행을 함으로써 그 마음을 바치고자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방법, 마음 돌리는 방법이 때로는 큰 힘이 되기도 하고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기도 하며, 그런 마음공부가 반복됨으로써 점차 마음에 중심이 서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주체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수행의 방법들은 하나같이 애를 쓰는 방법입니다. 놓아버리기 위한 방편의 가르침들입니다. 놓긴 놓아야겠는데 어떻게 놓을지 모르겠으니까 이렇게 해 봐라, 저렇게도 해 봐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머리를 굴려가면서, 지금까지 배워왔던 모든 가르침들을 다 동원해가면서, 마음을 놓으려고 해도 안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건 머리로만, 생각으로만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내 안에서 그런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실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놓아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바라보면 그대로 놓여집니다. 관수행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놓여나는 자유로움도 깊어갈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그대로 방하착이 되고, 받아들이는 것이 되며, 부처님 일로 돌려놓는 것이 되고, 공을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달마스님께서는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즉, 마음을 관하는 그 한 가지 법이 일체 모든 행을 총섭한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관하는 그 한 가지 수행 방법이 부처님 수행법의 모든 것을 포섭(包攝)한다는 말입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 관찰하세요. 번뇌가 쌓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성적인 성격을 걱정하지 말고, 올라오는 감정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다만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기 바랍니다. 욱 하고 마음이 올라올 때, 바로 그 때가 수행을 할 절호의 순간이며, 생생한 마음공부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바라보면 그 순간이 절수행이 되고, 참선이 되며, 염불이 되고, 독경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니 그야말로 죽어라고 관찰만 하십시오. 끈질기게 올라오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깊이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만큼 거칠게 올라오면 거칠게 올라오는 마음을 관찰하고, 욕이라도 해야겠다 싶으면 욕하고 싶은 그 마음을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바라보면 사라집니다.’
법상스님 『 기도하면 누가 들어 주나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