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십 년 동안 제게 말 못할 짐을 안겨주었고 저 혼자 그걸 다 감당하며 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의 성격을 조금도 고치려 하지 않으니 삶에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이 미워 싸울 때마다 힘으로 안 되니까 마구 욕을 해댑니다. 아무리 좋은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대화해 보려고 해도 아무 말 없이 훌쩍 나갔다 며칠 만에 불쑥 집에 들어오곤 합니다. 이래도 그냥 저 혼자만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하는지요?
어떤 분이 질문하면서 저한테 그러시더군요. ‘그것도 업이니까 그냥 다 받아들이고 녹여야 한다는 말일랑 절대로 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지요.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어지더군요. 왜냐하면 그 말은 벌써 '나' 자신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고, 스스로를 바꿀 용기도 지혜도 마음도 없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업(業)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아무리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싶어도 잘 되지를 않는 겁니다. 자기 안에 딱 버티고 있는 고정된 관념들이 타파되지 않으니까 도무지 바뀌지 않는 겁니다.
수행은 먼저 '나' 자신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바꾸려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상대라는 존재는 그리고 이 세상이라는 곳은, 완전히 내 마음의 투영이고, 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남편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해서 욕을 하고 화를 낸다면 그것은 업이 똑같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든다면 도무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편에게도 자신에게도 더 크고 무거운 업을 자꾸만 짓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건 절대 온전한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남편이 잘했고 보살님이 잘못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은 '내가 변해야 상대도 변한다'는 이 지극히 원칙적인 진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어렵지요. 왜 어렵습니까. 그게 업을 녹이는 과정이라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의 본질은 본래 어디에 의지하지 않고도 내 스스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중심 잡힌 존재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고 깊은 근원의 그 어떤 힘이 내 안에 담겨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보려 하지 않고 내 바깥 경계에서만 행복을 찾으려 한단 말입니다. 남편을 통해서 행복해 지려고 하는 그 마음을 놓아보세요. 왜 나라는 자주적인 존재가 남편에 휘둘려 남편이 변해야지만 나도 행복한 종속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까? 남편 상관 없이도, 주변 환경 상관 없이도 나 혼자서 당당하게 내 삶 위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 성격도 바꾸어야 하고, 툭 하면 집나갔다가 들어오는 것도 바꾸어야 하고, 이래저래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만 힘들어 집니다. 그 모든 남편에 대한 바람이나 기대를 완전히 포기해 보세요. 그 기대를 놓아버리면 먼저 내 마음이 편해집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바꾸지 못했는데 그걸 아직까지도 바꾸지 못한 탓만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를 바꾸기는 어렵고 힘들어요. 그러나 내가 바뀌기는 덜 어렵습니다. 그리고 상대를 바꾸는 것보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더 직접적이고 근원적인 방법입니다. 내가 바뀌면 남편도 저절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내 내면세계의 영적 수준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 내가 사는 세계이기에 그렇습니다. 특히 가족이나 남편이라는 업은 내 업식을 고스란히 본떠서 투영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내 수준과, 내 업과 똑같은 가족을, 남편을 만날 수밖에 없도록 이 세상은 만들어 져 있어요. 그러니 돌려 말하면 나 자신을 평화롭게 변화시키면 내 주변이 저절로 평화에 물들 수밖에 없고, 내 안이 투쟁과 다툼으로 시끄러우면 내 주변도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보살님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었어요. 남편이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 남편이 나에게 짐을 안겨 주었다는 생각,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 이제 그 모든 생각을 돌이켜 놓아버리고 문제의 본질로 돌아와야 합니다. 문제의 본질은 그 모든 문제는 바로 ‘내 책임’이라는 사실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내 안에 무거운 짐을 받아야 하는 업이 없다면 남편이 나에게 무거운 짐을 안겨 줄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그 어떤 요소가 저런 남편을 만나게 했으며, 내 안의 그 어떤 업이 남편과의 불화를 가져오게 되었는지를 돌이켜 내 안으로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문제의 화살을 나 자신으로 돌리고 나면 문제는 풀리기 시작합니다.
남편은 십 년 동안 제게 말 못할 짐을 안겨주었고 저 혼자 그걸 다 감당하며 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의 성격을 조금도 고치려 하지 않으니 삶에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이 미워 싸울 때마다 힘으로 안 되니까 마구 욕을 해댑니다. 아무리 좋은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대화해 보려고 해도 아무 말 없이 훌쩍 나갔다 며칠 만에 불쑥 집에 들어오곤 합니다. 이래도 그냥 저 혼자만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하는지요?
어떤 분이 질문하면서 저한테 그러시더군요. ‘그것도 업이니까 그냥 다 받아들이고 녹여야 한다는 말일랑 절대로 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지요.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어지더군요. 왜냐하면 그 말은 벌써 '나' 자신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고, 스스로를 바꿀 용기도 지혜도 마음도 없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업(業)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아무리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싶어도 잘 되지를 않는 겁니다. 자기 안에 딱 버티고 있는 고정된 관념들이 타파되지 않으니까 도무지 바뀌지 않는 겁니다.
수행은 먼저 '나' 자신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바꾸려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상대라는 존재는 그리고 이 세상이라는 곳은, 완전히 내 마음의 투영이고, 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남편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해서 욕을 하고 화를 낸다면 그것은 업이 똑같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든다면 도무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편에게도 자신에게도 더 크고 무거운 업을 자꾸만 짓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건 절대 온전한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남편이 잘했고 보살님이 잘못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은 '내가 변해야 상대도 변한다'는 이 지극히 원칙적인 진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어렵지요. 왜 어렵습니까. 그게 업을 녹이는 과정이라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의 본질은 본래 어디에 의지하지 않고도 내 스스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중심 잡힌 존재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고 깊은 근원의 그 어떤 힘이 내 안에 담겨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보려 하지 않고 내 바깥 경계에서만 행복을 찾으려 한단 말입니다. 남편을 통해서 행복해 지려고 하는 그 마음을 놓아보세요. 왜 나라는 자주적인 존재가 남편에 휘둘려 남편이 변해야지만 나도 행복한 종속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까? 남편 상관 없이도, 주변 환경 상관 없이도 나 혼자서 당당하게 내 삶 위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 성격도 바꾸어야 하고, 툭 하면 집나갔다가 들어오는 것도 바꾸어야 하고, 이래저래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만 힘들어 집니다. 그 모든 남편에 대한 바람이나 기대를 완전히 포기해 보세요. 그 기대를 놓아버리면 먼저 내 마음이 편해집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바꾸지 못했는데 그걸 아직까지도 바꾸지 못한 탓만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를 바꾸기는 어렵고 힘들어요. 그러나 내가 바뀌기는 덜 어렵습니다. 그리고 상대를 바꾸는 것보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더 직접적이고 근원적인 방법입니다. 내가 바뀌면 남편도 저절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내 내면세계의 영적 수준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 내가 사는 세계이기에 그렇습니다. 특히 가족이나 남편이라는 업은 내 업식을 고스란히 본떠서 투영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내 수준과, 내 업과 똑같은 가족을, 남편을 만날 수밖에 없도록 이 세상은 만들어 져 있어요. 그러니 돌려 말하면 나 자신을 평화롭게 변화시키면 내 주변이 저절로 평화에 물들 수밖에 없고, 내 안이 투쟁과 다툼으로 시끄러우면 내 주변도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보살님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었어요. 남편이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 남편이 나에게 짐을 안겨 주었다는 생각,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 이제 그 모든 생각을 돌이켜 놓아버리고 문제의 본질로 돌아와야 합니다. 문제의 본질은 그 모든 문제는 바로 ‘내 책임’이라는 사실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내 안에 무거운 짐을 받아야 하는 업이 없다면 남편이 나에게 무거운 짐을 안겨 줄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그 어떤 요소가 저런 남편을 만나게 했으며, 내 안의 그 어떤 업이 남편과의 불화를 가져오게 되었는지를 돌이켜 내 안으로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문제의 화살을 나 자신으로 돌리고 나면 문제는 풀리기 시작합니다.
법상스님 『 기도하면 누가 들어 주나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