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미운 남편, 참고 사는 것이 능사일까요?

202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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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십 년 동안 제게 말 못할 짐을 안겨주었고 저 혼자 그걸 다 감당하며 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의 성격을 조금도 고치려 하지 않으니 삶에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이 미워 싸울 때마다 힘으로 안 되니까 마구 욕을 해댑니다. 아무리 좋은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대화해 보려고 해도 아무 말 없이 훌쩍 나갔다 며칠 만에 불쑥 집에 들어오곤 합니다. 이래도 그냥 저 혼자만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하는지요?

 

어떤 분이 질문하면서 저한테 그러시더군요. ‘그것도 업이니까 그냥 다 받아들이고 녹여야 한다는 말일랑 절대로 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지요.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어지더군요. 왜냐하면 그 말은 벌써 '나' 자신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고, 스스로를 바꿀 용기도 지혜도 마음도 없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업(業)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아무리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싶어도 잘 되지를 않는 겁니다. 자기 안에 딱 버티고 있는 고정된 관념들이 타파되지 않으니까 도무지 바뀌지 않는 겁니다.

수행은 먼저 '나' 자신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바꾸려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상대라는 존재는 그리고 이 세상이라는 곳은, 완전히 내 마음의 투영이고, 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남편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해서 욕을 하고 화를 낸다면 그것은 업이 똑같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든다면 도무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편에게도 자신에게도 더 크고 무거운 업을 자꾸만 짓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건 절대 온전한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남편이 잘했고 보살님이 잘못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은 '내가 변해야 상대도 변한다'는 이 지극히 원칙적인 진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어렵지요. 왜 어렵습니까. 그게 업을 녹이는 과정이라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의 본질은 본래 어디에 의지하지 않고도 내 스스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중심 잡힌 존재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고 깊은 근원의 그 어떤 힘이 내 안에 담겨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보려 하지 않고 내 바깥 경계에서만 행복을 찾으려 한단 말입니다. 남편을 통해서 행복해 지려고 하는 그 마음을 놓아보세요. 왜 나라는 자주적인 존재가 남편에 휘둘려 남편이 변해야지만 나도 행복한 종속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까? 남편 상관 없이도, 주변 환경 상관 없이도 나 혼자서 당당하게 내 삶 위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 성격도 바꾸어야 하고, 툭 하면 집나갔다가 들어오는 것도 바꾸어야 하고, 이래저래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만 힘들어 집니다. 그 모든 남편에 대한 바람이나 기대를 완전히 포기해 보세요. 그 기대를 놓아버리면 먼저 내 마음이 편해집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바꾸지 못했는데 그걸 아직까지도 바꾸지 못한 탓만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를 바꾸기는 어렵고 힘들어요. 그러나 내가 바뀌기는 덜 어렵습니다. 그리고 상대를 바꾸는 것보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더 직접적이고 근원적인 방법입니다. 내가 바뀌면 남편도 저절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내 내면세계의 영적 수준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 내가 사는 세계이기에 그렇습니다. 특히 가족이나 남편이라는 업은 내 업식을 고스란히 본떠서 투영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내 수준과, 내 업과 똑같은 가족을, 남편을 만날 수밖에 없도록 이 세상은 만들어 져 있어요. 그러니 돌려 말하면 나 자신을 평화롭게 변화시키면 내 주변이 저절로 평화에 물들 수밖에 없고, 내 안이 투쟁과 다툼으로 시끄러우면 내 주변도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보살님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었어요. 남편이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 남편이 나에게 짐을 안겨 주었다는 생각,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 이제 그 모든 생각을 돌이켜 놓아버리고 문제의 본질로 돌아와야 합니다. 문제의 본질은 그 모든 문제는 바로 ‘내 책임’이라는 사실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내 안에 무거운 짐을 받아야 하는 업이 없다면 남편이 나에게 무거운 짐을 안겨 줄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그 어떤 요소가 저런 남편을 만나게 했으며, 내 안의 그 어떤 업이 남편과의 불화를 가져오게 되었는지를 돌이켜 내 안으로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문제의 화살을 나 자신으로 돌리고 나면 문제는 풀리기 시작합니다.

‘나부터 완전히 거듭나야 겠다’ ‘나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겠다’ ‘나부터 완전한 자비와 사랑으로 변해야 겠다’ 그렇게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마음가짐만 그렇게 한다고 현실이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기도를 함께 하세요. 백 일 기도를 하시되, 바람을 가지고 하지는 마세요. 백 일 후에는 달라지겠지 하는 마음도 놓아버리고 다만 이 기도의 길이 진실에 이르는 길이며 평화에 이르는 길이고 업을 녹이는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시기 바랍니다. 백 일 후에도 안 되면 그 때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백 일 기도를 하시면 됩니다. 될 때 까지 하면 됩니다. 사람에 따라 백 일 기도만 해도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 마음가짐과 간절함에 따라, 또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백 일 기도의 반만 해도 삶이 바뀌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업의 무게가 너무 무겁거나, 간절하고 진실 된 마음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백 일 기도를 몇 번이고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될 때까지 하십시오. 기도의 끝을 바라면서 하지 말고 그저 기도를 하기만 하세요. 기도를 시작함과 동시에 법우님은 모든 부처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업이 녹는 것은 아직도 멀었으니 너무 힘들다, 언제나 끝날까 하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기도를 시작함과 동시에 법우님은 지혜로운 성인들이 걸어 온 밝은 수행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다는 그 사실에 환희심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에게 끝은 없습니다. 기도의 시작, 수행의 시작만 있을 뿐입니다. 그저 시작한 그 마음이 깨달음의 마음이며 업장이 다 소멸된 마음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예 기도 수행을 시작하면서 내 업장이 다 녹았다고 여기고 다 녹는다고 굳게 믿고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저도 수많은 법우님들도 많은 큰스님들도 계속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기도를 시작함과 동시에 법우님도 그 길에 동참하게 되는 겁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길입니까. 그 길을 어깨 나란히 하고 함께 걸을 수 있음만 해도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도하면 누가 들어주나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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