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교육열 때문에 저는 죽을 지경입니다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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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생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나쁘고 몸도 안 좋고, 돈 벌기도 힘들고, 마음 같아서는 죽고 싶을 정도지만 제 학업 때문에 억지로 꾹 참고 사십니다. 지금도 빚을 내어 개인과외를 받게 하시고, 무조건 제가 서울의 좋은 대학 가는 것 외에는 살 의미가 없다고 하십니다. 심각한 경제난에 어머님의 심한 교육열로 저는 죽을 지경이고 자신도 없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엄마도 저도 죽을 것 같은데, 어찌하면 좋죠?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우선은 아들이신 법우님께 드릴 수 있는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법우님께 가장 큰 문제는 어머님께서 공부하라고, 대학 좋은데 가라고 하시는 그 집착이 너무 무겁게 짓누르는 부분입니다. 지금 어머님은 법우님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어요. 그러니 그것을 받는 사람은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어머님의 성적에 대한 무게감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법우님께서는 그 무게감과 중요도를 대폭 완화시켜서 가볍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울면서 나쁜 성적에 대해 원망 할 때, ‘알겠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앞으로 잘 하겠노라고 말씀은 드리되, 마음에서 그 말씀의 비중을 너무 크게 키우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어머님을 무시하라는 말도 아니고, 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어머님의 그 집착을 내가 고스란히 다 받아냄으로써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감에 짓눌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법우님은 그러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머님의 바람과 욕망은 어머님의 것이지만, 그것을 내가 크게 받아 크게 괴로워 할 것이냐, 가볍게 받아 덜 괴로워질 것이냐에 대한 선택은 전적으로 법우님께 달린 일입니다. 그것은 어머님과 나 자신을 너무 동일시하여, 어머님의 괴로움을 내 괴로움처럼 여기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기도 하고, 어머님의 마음이 또 거기에 반응하는 내 마음이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기도 합니다.


법우님 또한 학교생활을 계속 해 나가면서 공부에 대한 중압감과 괴로움이 남들보다 더 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심각하게 여기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과정으로써 허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왔다가 가도록 허용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중요도를 떨어뜨림으로써, 집착을 놓아버림으로써, 스스로 그 괴로움의 무게를 한결 가볍게 바꿀 수는 있습니다. 어머님의 괴로움을 법우님이 똑같이 짊어지는 것이 어머님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우님 만이라도 그 무게감에서 조금 자유로와졌을 때, 사실은 성적도 더 잘 나올 수 있고, 나아가 어머님의 괴로움도 가벼워지게 될 것입니다. 어머님이 괴로워하실지언정, 법우님만이라도 중요도를 떨굼으로써 덜 괴로워함으로써 가볍게 공부 해 나간다면, 법우님의 그 가볍고 경쾌한 정신적 에너지를 어머님께서도 공명으로 전해 받아 어머님의 고통 또한 작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힘 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마음이 편해 졌더라도 어머님께서는 계속 괴로워하실텐데요. 어머니가 괴로우면 저는 더 괴로운데요.


그것이 바로 어머님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데서 오는 괴로움입니다. 만약에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래서 어머님께서 충격을 받고 쓰러지더라도, 그 결과는 법우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 결과에 대해 어머님께서 감당해야 할 부분은, 고스란히 어머님의 몫으로 감당하도록 해 두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받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어머님께서 집착하는 것 또한 어머님 수준에서의 삶의 방식이고, 그 방식이 좋다 나쁘다고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 방식의 결과는 어쨌든 어머님께서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법계의 업보의 이치이며, 균형의 법칙입니다. 그 업의 불균형은 어머님 스스로 바로잡아야지, 아들이라고 해도 대신 균형 잡아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삶에 너무 깊이 개입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심지어 아들, 딸,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타인의 행, 불행에 대해 너무 깊이 개입하거나, 너무 심각하게 중요도를 부여하게 되면, 그것은 타인의 괴로움을 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내 괴로움으로 붙잡아 묶어두는 것이 되고 맙니다. 언뜻 보면 매정한 이야기 같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참된 자비와 사랑, 그리고 지혜의 길입니다.

참된 스승은 누군가가 괴로운 문제를 가지고 상담하러 왔을 때, 함께 아파해 주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며, 도움을 줄 지언정, 그 괴로운 감정을 자신이 붙잡아 둠으로써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그 괴로움은 실체 없이 왔다가 가는 것을 알기에 그 오고 감을 허용해 줍니다. 사실 그 모든 괴로움은 업장을 소멸시켜 주기 위해 찾아오며, 동시에 그것으로써 영적으로 성장하고 삶을 깨닫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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