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스님을 뵈러 몇 시간을 차를 타고 찾아갔지만, 정작 스님은 만나주지 않고, ‘나는 아는 게 없다 그러니 할 말도 없다’ 해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다른 어떤 신도도 안 만나려 한답니다. 왜 그 스님은 중생을 자비로 제도하지 않고 외면하는 것인가요?
그러게요. 왜 그러셨을까요? 그런데 그 이전에 그 스님께서 그런 행동을 하신 것이 지금 법우님에게 있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그것이 혹시 법우님의, 또 우리들의 분별심인 것은 아닐까요?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다 헤아리려고 해 봐야 우리가 그것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나의 관념이나 관점에서 상대방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또 다른 오류를 범하게 될 뿐입니다. 과연 그 스님께서 불자를 만나주지 않는 것이, 그 행동 자체가 고정된 선이나 악이거나, 옳거나 그른 어떤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냥 하나의 단순한 행위일 뿐이에요. 사실은 그 스님이 불자를 만나주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문제는 내가 만들어냈습니다. 내가 '왜 그렇지' '중생을 사랑하지 않나?' 하면서 끊임없이 분별하고 평가하고 문제를 만들어 낼 뿐이지요.
예를 든다면 그 스님은 지금 묵언 정진 중이실 수도 있고, 스님 자신의 수행이 아직 덜 되었다고 느껴 아직은 만나서 답을 주기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고, 혹은 그 사람에게 침묵으로 대한 것 자체가 하나의 지혜로운 답변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요. 예를 든다면 말입니다.
중요한 건 그 스님의 행동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대한 나의 해석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요? 그 해석에 얽매여 분별심에 괴로워하느니보다 차별심을 놓아버리고 단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공부하는 입장에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쓴이:법상
큰스님을 뵈러 몇 시간을 차를 타고 찾아갔지만, 정작 스님은 만나주지 않고, ‘나는 아는 게 없다 그러니 할 말도 없다’ 해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다른 어떤 신도도 안 만나려 한답니다. 왜 그 스님은 중생을 자비로 제도하지 않고 외면하는 것인가요?
그러게요. 왜 그러셨을까요? 그런데 그 이전에 그 스님께서 그런 행동을 하신 것이 지금 법우님에게 있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그것이 혹시 법우님의, 또 우리들의 분별심인 것은 아닐까요?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다 헤아리려고 해 봐야 우리가 그것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나의 관념이나 관점에서 상대방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또 다른 오류를 범하게 될 뿐입니다. 과연 그 스님께서 불자를 만나주지 않는 것이, 그 행동 자체가 고정된 선이나 악이거나, 옳거나 그른 어떤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냥 하나의 단순한 행위일 뿐이에요. 사실은 그 스님이 불자를 만나주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문제는 내가 만들어냈습니다. 내가 '왜 그렇지' '중생을 사랑하지 않나?' 하면서 끊임없이 분별하고 평가하고 문제를 만들어 낼 뿐이지요.
예를 든다면 그 스님은 지금 묵언 정진 중이실 수도 있고, 스님 자신의 수행이 아직 덜 되었다고 느껴 아직은 만나서 답을 주기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고, 혹은 그 사람에게 침묵으로 대한 것 자체가 하나의 지혜로운 답변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요. 예를 든다면 말입니다.
중요한 건 그 스님의 행동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대한 나의 해석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요? 그 해석에 얽매여 분별심에 괴로워하느니보다 차별심을 놓아버리고 단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공부하는 입장에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