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님 저에게는 올해 스무살 된 아들 녀석이 있습니다. 태어났을 때 태열이 심하여 얼굴에 구멍이 군데군데 있어 레이져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가 잘못되어 흉터가 덧나고 거기에다 여드름까지 너무 심해 여드름으로 인한 흉터와 합해지면서 아이는 얼굴에 난 상처 때문인지 깊은 열등감과 대인기피증으로 너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치료를 받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도 마음속의 그 어떤 분노 때문인지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에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지 불같이 화를 냅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도 하게 됩니다. 아이는 여전이 마음이 아픈 상태고 그렇다고 다 큰 아이의 분노를 항상 너그러이 받아주기에는 옳은 행동도 아닌 것 같습니다. 스님, 아들 녀석에게 어떤 마음과 행동으로 다가가야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면서 이 아이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요?
마음이 많이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내 문제라면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겠지만, 아들의 문제다 보니 보살님 입장에서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물론 아드님께 이런 저런 조언도 해 주고,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머니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 준들 별다른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이 문제가, 단순한 아들의 문제가 아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또한 내 문제구나 라고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 문제'로 나와 동일시 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로 인해 내가 괴로워하는 것은 '내 책임'의 문제란 말입니다. 즉 그로인해 내가 괴로워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내 '선택'의 문제란 말이지요.
먼저 아드님의 상황에 대해 그것을 '내 것'이라고 동일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문제를 빨리 풀어주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아들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고통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잠시 그 아픔과 그 고통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충분히 함께하면서 아파하고 났을 때, 그럼으로써 거기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고 났을 때 비로소 거기에서 아드님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보살님 마음속에서 아들의 문제가 빨리 없어져야 하는데 하고 그것을 문제로 삼은 뒤에 그것을 없애려고 싸우고 투쟁하고 그 문제를 거부하는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그 피부 문제에 대해 보살님부터 받아들여야 합니다. 빨리 없애주려는 조바심 나는 마음을 놓아버리고, 그저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그래야지만, 아드님이 그것과 함께 있는 것에 대해서 '문제상황'이라는 보살님 마음속의 찌꺼기, 해석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보살님 마음속에서 그것을 문제시하면서, 없애려고 애쓰면서, 안 없어지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고, 그 문제를 거부하게 되면 그 문제는 더욱 길게 계속되고, 아들 마음속에서의 치유도 더욱 더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보살님 먼저 받아들여 주고 나면,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도 한결 평안해 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아들을 받아들여 줄 수 있게 되요.
어떻게 받아들여 주느냐? '있는 그대로' 그 마음을 받아주는 여유와 지혜가 생기는 것이지요. 아들은 지금 피부에 나 있는 상처 때문에도 괴롭지만, 두 번째 화살 때문에 사실은 더 괴로워요. 즉 그 피부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과 해석으로 '내 피부는 흉칙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등의 생각으로 인해 더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 주세요.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자신의 마음을 보듬어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게 되면 아드님의 마음은 훨씬 빨리 치유될 수 있습니다. 사실 아드님은 피부 때문에 아픈게 아니라, 그로인한 마음이 더 아픈겁니다. 그런 마음을 받아줘야 합니다. 진심으로 '얼마나 힘드니' '그래, 남들이 의식되지 않을 수 없겠구나' '그 마음 이해된다' 하고 그 마음을 받아주는 겁니다.
"얼굴 때문에 친구들 만나기도 싫어!" 하고 소리치면서 짜증을 내면, "너 언제까지 그러고 살거야?" "네 마음만 바꾸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해" "피부가 뭐가 문제야, 내가 보면 그렇게 문제될 것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받아치면 아이 마음 속에 응어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얼굴 때문에 친구들 만나기 싫어" 할 때는 "그렇구나. 친구들 만나기 싫구나. 그럴 수 있겠다. 친구들 만나러 가기가 어렵겠다." 하고 그 마음을 받아들여 주라는 것입니다. 받아들여 주면 아이도 조금씩 받아들여 진다는 사실에 안심하게 되고, 아이 마음이 안심이 되면 아이 또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여지기 쉬워지는 상황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 얼굴 피부에 문제가 생긴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온 것입니다. 그 목적이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당장에는 힘들겠지만, 그 이유는 크게 보았을 때 아이와 보살님을 돕기 위한, 업장을 소멸시켜 주기 위한, 깨닫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더라도, 어쨌든 그 진실을 인정하세요. 거부하지 말고. 그래서 충분히 그 아픔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아들에게 허용해 주세요. 어머니가 옆에서 그렇게 받아들여 주고 허용해 주고, 문제 삼지 않게 되면, 아이도 바뀔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라는 어머님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바로 그 생각들이 모여 이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아이는 아주 정상적이고, 또 아주 정상적인 반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거에요. 아직 마음을 못 바꾸고 아직도 괴로워하는 것 또한 아주 정상적인 거에요. 그걸 못 깨닫는다고 문제삼는 어머니의 마음을 바꾸고, 그러한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게 되면 빨리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빨리 좋아지겠지 하는 성급한 마음도 버리세요.
이 상황을 통해 어머니는 자신의 수행을 하면 됩니다. 아이에게 언제까지 그걸 받아줄 수 있겠느냐고 하지 말고, 이 상황이야말로 내가 마음공부하고, 마음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공부의 기회라고 생각하세요. 아이가 얼굴 때문에 또 힘들어 하거나 짜증내면, 보살님은 보살님의 마음을 바라보고 관찰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얻게 되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아들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이것은 공부를 시켜주려고 찾아 온 고마운 경계인 것입니다. 그걸 괴로운 경계라고 해석함으로써, 괴로운 실체로 확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괴로운 현실이 지속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힘 내십시오.
글쓴이:법상
스님 저에게는 올해 스무살 된 아들 녀석이 있습니다. 태어났을 때 태열이 심하여 얼굴에 구멍이 군데군데 있어 레이져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가 잘못되어 흉터가 덧나고 거기에다 여드름까지 너무 심해 여드름으로 인한 흉터와 합해지면서 아이는 얼굴에 난 상처 때문인지 깊은 열등감과 대인기피증으로 너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치료를 받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도 마음속의 그 어떤 분노 때문인지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에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지 불같이 화를 냅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도 하게 됩니다. 아이는 여전이 마음이 아픈 상태고 그렇다고 다 큰 아이의 분노를 항상 너그러이 받아주기에는 옳은 행동도 아닌 것 같습니다. 스님, 아들 녀석에게 어떤 마음과 행동으로 다가가야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면서 이 아이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요?
마음이 많이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내 문제라면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겠지만, 아들의 문제다 보니 보살님 입장에서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물론 아드님께 이런 저런 조언도 해 주고,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머니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 준들 별다른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이 문제가, 단순한 아들의 문제가 아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또한 내 문제구나 라고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 문제'로 나와 동일시 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로 인해 내가 괴로워하는 것은 '내 책임'의 문제란 말입니다. 즉 그로인해 내가 괴로워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내 '선택'의 문제란 말이지요.
먼저 아드님의 상황에 대해 그것을 '내 것'이라고 동일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문제를 빨리 풀어주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아들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고통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잠시 그 아픔과 그 고통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충분히 함께하면서 아파하고 났을 때, 그럼으로써 거기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고 났을 때 비로소 거기에서 아드님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보살님 마음속에서 아들의 문제가 빨리 없어져야 하는데 하고 그것을 문제로 삼은 뒤에 그것을 없애려고 싸우고 투쟁하고 그 문제를 거부하는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그 피부 문제에 대해 보살님부터 받아들여야 합니다. 빨리 없애주려는 조바심 나는 마음을 놓아버리고, 그저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그래야지만, 아드님이 그것과 함께 있는 것에 대해서 '문제상황'이라는 보살님 마음속의 찌꺼기, 해석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보살님 마음속에서 그것을 문제시하면서, 없애려고 애쓰면서, 안 없어지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고, 그 문제를 거부하게 되면 그 문제는 더욱 길게 계속되고, 아들 마음속에서의 치유도 더욱 더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보살님 먼저 받아들여 주고 나면,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도 한결 평안해 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아들을 받아들여 줄 수 있게 되요.
어떻게 받아들여 주느냐? '있는 그대로' 그 마음을 받아주는 여유와 지혜가 생기는 것이지요. 아들은 지금 피부에 나 있는 상처 때문에도 괴롭지만, 두 번째 화살 때문에 사실은 더 괴로워요. 즉 그 피부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과 해석으로 '내 피부는 흉칙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등의 생각으로 인해 더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 주세요.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자신의 마음을 보듬어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게 되면 아드님의 마음은 훨씬 빨리 치유될 수 있습니다. 사실 아드님은 피부 때문에 아픈게 아니라, 그로인한 마음이 더 아픈겁니다. 그런 마음을 받아줘야 합니다. 진심으로 '얼마나 힘드니' '그래, 남들이 의식되지 않을 수 없겠구나' '그 마음 이해된다' 하고 그 마음을 받아주는 겁니다.
"얼굴 때문에 친구들 만나기도 싫어!" 하고 소리치면서 짜증을 내면, "너 언제까지 그러고 살거야?" "네 마음만 바꾸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해" "피부가 뭐가 문제야, 내가 보면 그렇게 문제될 것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받아치면 아이 마음 속에 응어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얼굴 때문에 친구들 만나기 싫어" 할 때는 "그렇구나. 친구들 만나기 싫구나. 그럴 수 있겠다. 친구들 만나러 가기가 어렵겠다." 하고 그 마음을 받아들여 주라는 것입니다. 받아들여 주면 아이도 조금씩 받아들여 진다는 사실에 안심하게 되고, 아이 마음이 안심이 되면 아이 또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여지기 쉬워지는 상황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 얼굴 피부에 문제가 생긴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온 것입니다. 그 목적이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당장에는 힘들겠지만, 그 이유는 크게 보았을 때 아이와 보살님을 돕기 위한, 업장을 소멸시켜 주기 위한, 깨닫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더라도, 어쨌든 그 진실을 인정하세요. 거부하지 말고. 그래서 충분히 그 아픔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아들에게 허용해 주세요. 어머니가 옆에서 그렇게 받아들여 주고 허용해 주고, 문제 삼지 않게 되면, 아이도 바뀔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라는 어머님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바로 그 생각들이 모여 이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아이는 아주 정상적이고, 또 아주 정상적인 반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거에요. 아직 마음을 못 바꾸고 아직도 괴로워하는 것 또한 아주 정상적인 거에요. 그걸 못 깨닫는다고 문제삼는 어머니의 마음을 바꾸고, 그러한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게 되면 빨리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빨리 좋아지겠지 하는 성급한 마음도 버리세요.
이 상황을 통해 어머니는 자신의 수행을 하면 됩니다. 아이에게 언제까지 그걸 받아줄 수 있겠느냐고 하지 말고, 이 상황이야말로 내가 마음공부하고, 마음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공부의 기회라고 생각하세요. 아이가 얼굴 때문에 또 힘들어 하거나 짜증내면, 보살님은 보살님의 마음을 바라보고 관찰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얻게 되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아들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이것은 공부를 시켜주려고 찾아 온 고마운 경계인 것입니다. 그걸 괴로운 경계라고 해석함으로써, 괴로운 실체로 확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괴로운 현실이 지속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힘 내십시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