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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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적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있다. 그 아련한 추억들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나의 앞길을 밝혀주고 있다. 어쩌면 삶의 든든한 중심과도 같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쯤이었으려나. 집과 학교는 걸어서 1시간 남짓의 거리였다.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는 마을을 관통하는 시원한 개울이 있었고, 개울가 옆으로는 푸르른 논 위에서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 그 개울와 논 사이로 난 비포장 숲길을 따라 흥얼거리며 등교하고 하교하던 그 시간이야말로 오래도록 묵혀두었다 살며시 열어 보는 추억 속의 책장과도 같은 비밀 곳간이다.

길은 언제나 푸르렀다. 때때로 개울에서는 학교 가지 않는 어린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기도 했고, 누렇게 익은 가을 논에서는 어른들의 추수가 한창이었다. 너른 길로 들어서면 어김없이 하늘을 보며 걸었다. 낡은 가방을 메고 땅딸막한 한 아이가 하늘을 보며 느릿 느릿 걷는다. 하늘을 보며 흘러가는 구름의 재잘거림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 구름을 보며 걷는 것이 좋았다.

어느 하굣길에 나는 나머지 공부를 하고 홀로 그 길을 거닐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녘은 풍요롭게 물들고 있었다. 길가 잔디밭에 앉았다. 지금 그 때를 떠올리는 느낌이 너무나도 아련하고, 고독하며, 홀연하다. 지는 햇살을 받으며,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 좋았다. 시간도 잊고, 태양이 저물어가는 그 들녘에 앉아 그렇게 그렇게 앉아만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 뒤에 남겨진 빛의 아쉬운 향연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면, 뭉개구름, 양떼구름, 엄마구름, 로봇구름, 산신령구름까지, 무한한 상상력으로 구름과 놀곤 했다.

살면서 습관적으로 그 날들을 떠올리곤 한다. 요즘도 그 나날들을 떠올리고 있자면 가슴 한 켠이 짠해 옴을 느낀다. 나에게 만약 자연을 닮은 심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그것은 모두가 그 어린 날들의 여운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요즘 행하고 있는 불공이나 기도 보다도 더 천진한 명상이며 기도였을터다.

그 날 처럼 오늘도 해가 기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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