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소리를 듣자

2022-01-17
조회수 472


소박한 데 귀 기울일 수 있어야

세상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자연의 소리는 아주 작고 여리기 때문에 아무나 들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그 살뜰한 소리는 고요한 법계의 울림과 모든 존재 내면의 쩌렁쩌렁한 깨우침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보통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세상사에 찌든 온갖 소음들만 귀 고막이 터져라 듣고 산다.

세상의 소음에 익숙해지다 보면 작고 여린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 본래의 청음 능력을 상실한다.

우리들 육근(六根)이라는 것이 본래는 세상의 작고 여린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고

우주와 자연의 작지만 커다란 울림과 교감할 수 있었지만,

감각적이고 육감적인데 서서히 익숙해지다 보니 그 본래 능력을 상실하고 시끄러운 세상일에 휘둘리게 된 것이다.

봄이 오니 한겨울 얼어 붙었던 땅이 녹고 그러면서 봄나물이며 봄꽃들이 얼마나 신이 나 있는지 모른다.

나도 처음엔 수필가들이 얘기하는 눈 녹는 소리며 바람 스치는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서걱이며 온산을 놀라게 한다는 그런 표현들을 그저 시적인 표현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귀를 닫아 놓고 살아서 그렇지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정말 그 소리가 성성한 깨우침으로 귓전을 맑게 스치운다.

조용한 가을 낙엽이 떨어지면 뒷산 전체가 서걱이고,

산 속 나무 그늘에 덥석 누워있다 보면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만큼이나 선명하게 들리고,

한겨울 산사에는 눈 녹는 소리가 꿈틀거리듯 세속에 찌든 귀를 맑게 씻어준다.

그러한 자연의 소리는 아주 작은 것이라 사소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건 결코 작은 소리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그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런 작은 것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깨어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만큼 내 마음이 맑게 비워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자연의 맑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는 내 안에 복잡한 소음이 너무 많기 때문이고,

해야 할 일들로 마음이 꽉 차 있기 때문이며, 머리 속은 정신없는 일들로 또 가득하기 때문이다.

내 안이 텅 비어 있어야 비로소 이 법계의 작지만 우주를 울리는 이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듣지 말아야 할 것들만 듣고 사는 우리이고,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만 보고 사는 우리이며,

먹어야 할 것은 먹지 않고 먹지 말아야 할 것들만 먹고사는 우리들이다.

그러니 우리의 육근인들 어디 좀처럼 온전할 수 있겠는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잘 다스려야 몸도 마음도 경쾌하게 추스릴 수 있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육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육경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작고 소박한 데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자연이 가져다주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랬을 때 고요하게 앉으면 내 안에서 울려나오는 쩌렁쩌렁한 속 뜰의 메아리를 들을 수도 있고,

이 우주의 작은 한 켠에서도 전 법계의 소리 없는 거대한 울림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마음을 맑게 비우고, 속 뜰의 소리며 세상의 소리를 들어보자.


법상스님

<법보신문, 2003-04-16/702호>

19 7

목탁소리 본찰 상주 대원정사


경북 상주시 화동면 판곡2길 31 대원정사

(우) 37144 (지번) 판곡리 87-1 

전화번호 054-536-7811 | 스마트 전화 0507-1421-7839


목탁소리 부산센터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1로 25-1 더에이치빌딩 8층 목탁소리

(우)48095 (지번) 중동 1378-11

스마트 전화 0507-1481-7843


접수문의 전용 총무처폰 010-9700-7811 (문자전용)


Copyright ⓒ 2021 목탁소리 All rights reserved.

이용약관  |  개인정보방침찾아오시는 길 후원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