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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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이러고 있다가
마음이 녹녹하고 뻑뻑해지면 절옆 작은 들녘으로
또 뒷산 오솔길로 발길을 옮기곤 합니다.

그러다가 또 어떤 날은
왠지 마음이 밋밋해지고 재미가 없을 때가 있지요.
그럴 때는 산으로 가기 보다는
동네 아랫마을로 발길을 돌리곤 합니다.

우리 동네 자랑하기 좀 뭣하지만
난 이 마을을 참 좋아합니다.

따뜻하고 정감어린 풍경하며
도시에서처럼 정신없이 걷는 사람들 보다는
그래도 여유있는 마을 모습에 이끌립니다.

때로는 불쑥
이 가게 저 가게 몇 곳 아는 곳은 없지만
고개를 내밀고 들어가면
반가이 맞아주는 이웃이 있어 더 정이 갑니다.

담배가게 할머님 댁에 가면
반가이 맞아주시면서
'내가 그 절 창건 때부터 신돕니다.'
하시면서 어깨를 으쓱하시고는
항상 박카스를 우두둑 따서 주시고,

또 나나체육사에 가면
새벽 기도 때 매일 얼굴을 마주치지만
늘 반가운 수줍은 미소를 한 보살님과 거사님 내외분께서
매실음료를 한 잔 주시지요.

길에서는 마을이 좁다보니
절에서 인연 지은 많은 분들을 다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시간대에 시내에 나오면
안 보기가 어려울 만큼 적당한 동네기 때문입니다.

이 마을이 정겨운 또 다른 이유는
노오란 작은 우체국하고
그 옆길로 한 30여 미터 사이에 있는
작은 서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체국 옆을 걸을 때면
'가을 우체국앞에서' 라는 윤도현님 노래가 생각나는
그런 곳이지요.
때때로 속뜰에 생기가 축 처질 때
이따금 서점엘 들리면 책은 몇 권 없지만
그래도 책냄새를 맡을 수 있어 좋습니다.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시골 5일장의 풍경도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장사꾼들도 객기 어리고 팔아보겠다는 욕심을 가진 이들이 아니고
시골 할아버지 할머님들이 대부분이라
장날도 그리 시끌벅적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따금씩 곳곳에서 막걸리를 먹다가
흥얼거리며 취기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야 애교로 보아줄 만 하고
오히려 시골 장날을 생기롭게 하는 풍경이기만 합니다.

제가 또 좋아하는 이 마을의 모습은
새벽녘 아침이 밝아올 때의 차분하고 깨끗한 거리입니다.
새벽녘에 무얼 사고 팔 일은 거의 없겠지만
어김없이 수 십년 동안 같은 가게에서 새벽같이 문을 여는
마을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새벽 길을 걷다 보면
빗자루를 들고 가게 앞길을 쓸고 계시는 분들을
적잖이 만날 수가 있습니다.

한번은 이른 새벽부터 문을 연 빵집에서
밤빵을 몇 개 사다가 아는 집에 고개를 내밀고 들어가
빵을 올려 놓고 가려고 하는데
붙잡아서 우유 한 잔 주셔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였지요.
별일 아니지만 내겐 소박한 행복의 순간입니다.

그리 큰 마을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리 작지도 않은 마을
꼭 필요한 생필품들, 있을 건 다 있고
또 부득이 부족한 것들은 몇 일 기다렸다가 장날 살 수 있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이 마을이 참 좋습니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방에 들어가 좀 앉아 있다 보면 혼침에 빠지기 일쑤인데
요즘은 졸만 하면 마을 한 바퀴 휘휘돌아
마을의 새벽 풍경에 잠을 씻고 돌아오곤 한답니다.

마을의 어떤 보살님께
이런 마을에 대한 애틋한 제 마음을 얘기해 드렸더니
솜씨 좋게 응수를 해 오십니다.

이 작은 마을에
작지만 우뚝이 서 있는 절이 하나 있고,
따뜻한 차 한 잔에 반겨줄 스님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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