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말라야 명상순례] 에베레스트 최대의 사찰, 텡보체 곰파의 여유로운 오후 - 에베레스트 라운딩 (8)

202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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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그 어떤 부정적인 사건이나 받아들이기 싫은 불쾌한 일일지라도
사실 그것 자체는 아무런 좋거나 싫은 분별이 없다.
그것 자체는 언제나 중립이다.

그 어떤 사건도, 그 어떤 상황도, 사물도, 사람도 모두 중립일 뿐이다.


다만 거기에 우리의 생각이 공연히 좋다거나 싫다고, 옳다거나 그르다고,
불쾌하거나 부정적이라고 판단을 덧붙이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모든 상황은 우리가 그 상황 속에서 판단과 생각에 휩쓸리지 않고,
길을 잃지 않고 온전히 그 앞에서 깨어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은 언제나 나를 돕고자 찾아온 감사한 경계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좋거나 싫은 어떤 상황에 처했느냐
혹은 어떤 사건을 만났느냐,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가 아니라
그 온갖 것들과의 마주침 속에서 얼마나 깨어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즉 상황이나 사건 자체가 좋거나 나쁜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처한 의식 상태, 마음의 방향이 그것을 좋거나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 앞에는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만이 일어나야 할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나야 할 바로 그 크기로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을 진리의 세계, 법계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러니 좋거나 나쁘다고 분별함 없이,
더 큰 법계의 진리 속에서, 더 높은 차원의 질서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내 앞에 주어진 생을 전체적으로 살아갈 때
바로 그 무분별의 큰 수용 속에서 명상이라는 장엄한 흐름이 내 삶에 깃드는 것이다.

 

 한발 한발 느리게 걸어 오르는 묵직한 즐거움 속에서
몸 안에 갇혀있던 그 어떤 생기로움이
볕 좋은 오후 빨래 마르듯 새록새록 춤추며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몸을 움직이며 그 움직임을 자각하는 가운데
비로소 몸과의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은 그저 다른 이유로,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로 몸을 사용해 오면서도
이 몸 자체와의 직접적인 만남, 전체적인 자각이 드물지 않았었나 하는
미안함과 함께 비로소 진심어린 몸에 대한 감사가 뒤따른다.

 

 천천히 오르막을 걷다보니
느린 걸음에서만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 눈에 띈다.
그것은 천천히 걷는 자만이 볼 수 있는 발 아래 꽃들과 벌과 초록의 푸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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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한발 걸어오르면서 꽃들이며 풀들을 바라보고,
또 몇 발 걷고 뒤돌아 온 곳을 바라보자니,
이제부터 조금씩 수목한계선의 경계를 넘나드는구나 싶어진다.

 

멀리 앞산을 바라보니 아래쪽은 초록의 숲이고
위쪽으로 헐벗은 산세가 고스란히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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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 방향 우측의 건너 산은 이미 수목은 사라지고
앙상한 희말라야의 속살을 황량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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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또 걷는다.
나도 힘들지만 오고 가는 포터들도
이제부터는 힘에 부치는지 걸음을 멈추고 쉬는 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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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오르막에서는 야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여행자들도 몇 발자국 걷고는 잠시 잠깐 산 봉우리를 바라보며
쉬다 걷고 쉬다 걷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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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배낭과 허벅지에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
발목에서 느껴지는 찌릿찌릿한 느낌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이 한가하고 고요한 가파른 오르막길을 천천히 천천히 걷다보니
어느덧 큰 곰파와 스투파가 눈 앞에 번쩍 하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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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오늘 묵게 될 텡보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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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 넓은 텡보체의 롯지를
벌써 네 곳째 돌아보건만 모두 방이 꽉 찼다.


마지막 한 곳의 제일 허름한 롯지에 들렀을 때
비로소 몇 개 남지 않은 싱글룸을 만났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방이 없는 것을 보니 성수기는 성수기다.
특히 이 곳 대부분의 롯지는 주로가 더블룸, 트리플룸이지 싱글룸이 잘 없는 듯 싶다.


싱글룸이 없다고 해서 더블룸이라도 더블룸 값을 줄테니 달라고 하면
“없다!”고 딱 잘라 말하거나
더블룸 값을 웃도는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없는 것이 아니라 더블룸에 한 명이 머무는 것 보다
두 사람이 머물러야
방값보다 더 비싼 식사비며 때때로 목욕비, 밧데리 충전비, 군것질, 찻값 등 까지를
두 배, 세 배이상 뽑아낼 수 있다는 계산이니,
혼자라는 그 홀대를 어쩔 수 없이 받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지난 안나푸르나 순례 때는 포터까지 없어서 그랬는지
그 홀대와 툭하면 “방 없다!”는 소리를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분명 나보다 늦게 온 이들 중에도 포터와 함께 온 이들에게는 방을 내 주면서도
내게는 방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포터가 없으면 이래 저래 홀대를 받기 쉽다.

 

이 희말라야 전 지역에서 가장 큰 불교 사원인
텡보체 곰파(gompa, 티베트 사원)로 발걸음을 옮긴다.
텡보체 곰파는 가장 규모가 큰 사원이기는 해도 그리 오래된 사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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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롱북 곰파 승원장 스님의 지시에 따라
남체 옆 마을인 쿰중 출신의 라마굴루(Lama Gulu)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주요 건물은 1919년 완성되었고, 이후 1934년 지진으로 파괴되고,
1989년 다시 화재로 절을 태웠지만
많은 국제적인 도움과 세르파 들의 원력으로 불사금을 모아
1993년에 새로운 곰파의 불사가 회향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침 스님들이 큰 법당에 모여 예불을 모시고 있다.
열 댓분 남짓한 스님들이 중간에 중진스님인 듯한 한 스님을 중심으로
마주 보고 앉아 경전과 진언을 외고 때때로 법구도 연주하며
한 시간 남짓 불공을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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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서양인들이 스님들 앉으신 뒤쪽으로 차분히 들어 와 함께 법회에 동참 중이다.
법당 주변으로 켜진 촛불들까지 성스럽게 이 장엄한 법석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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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의 내부 벽에는

자비로운 부처님의 모습이 벽화에 아름답게 모셔져 있다.

나무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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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을 나와 법당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다.

마니차와 룽다들이 희말라야인들과 여행자들의 다양한 발원을 담아

바람소리에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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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켠에는 촘촘이 쌓아올린 뗄감과 삽 한 자루가

고요한 텡보체 곰파와 어우러져

오후의 여유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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텡보체와 도량 주변이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면서

짙은 구름으로 둘러쌓이고 있다.

 

끊임없이 여행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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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참배를 마치고 지는 해를 뒤로 반짝이는 도량과 텡보체 마을을 산책한다.
조금 아래쪽 롯지에 갔더니 이 깊은 산골짝에 베이커리 빵집이 있다.


배도 출출하던 차에 들어가 보았더니 빵값이 거의 밥 한 끼 값에다,
그 작은 케익 한 조각도 죄다 300루피를 넘어선다.

실망스런 표정으로 나오려다가 저 반대편 잘 보이지도 않는 쪽에
조금 더 싼 150루피 전후의 빵들이 ‘나 여기있어’ 하듯 반갑게 손짓한다.


도넛 하나를 120루피에 깨작깨작 아쉬운 듯 먹고 나오니
이 텅보체 3860고지의 높은 언덕 마을에 산그림자가 슬금슬금 기어오는 것이 보인다.

 

롯지 식당으로 들어갔더니
지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롯지에서 처음 만나
촘롱, 고라빠니, 푼힐에 이어 다시 포카라의 한 식당에서까지
몇 번을 스치며 보아왔던 중국인 한 친구가 반가운 미소로 반겨준다.

 

그 때는 친구들과 함께 4명이었는데 그 친구들 3명은 중국으로 돌아가고
혼자만 남아 EBC를 갈 예정이라는 얘기를 포카라에서 들었던 터라
잘 하면 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렇게 진짜로 이 곳에서 다시 만나고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그런데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어찌 어찌 카투만두에서 중국의 무슨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난
중국인 팀과 합류하여 7명이라는 대 식구를 이끌고 왔다.

 

롯지의 저녁시간은 시끌벅적 요란하다.


저녁을 먹고 북적대는 좁은 롯지 식당을 나오니
밤 공기는 차지만 운치는 더없이 충만하다.
곰파가 달빛을 받아 어렴풋이 반짝이고,
저 멀리 지나 온 길 위로 꽁대 봉우리가 그림으로 그린 듯 선명하게 들어 온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희말라야의 매일 매일 밤 하늘은 더 이상 설명 불가능한 침묵의 아름다움이다.


도저히 이 투명한 아름다움 앞에 내 존재를 마주 세워 두기가 서러울 만큼,
그 어떤 표현도 이 앞에서 누가 될 만큼 어둠 속에 저절로 빛이 나고
침묵 속에 연주되는 내 생애 최고의 아름다움!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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